천사는 오후 3시에 커피를 마신다
<천사는 오후 3시에 커피를 마신다>, 김겸섭 지음, 도서출판 토기장이
개인적으로 좋은 책의 기준으로 삼는 것 가운데 하나가 그 책을 통해 다른 책도 읽고 싶게 만드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 책을 통해 만나게 되는 다양한 정보, 경험, 인식을 통해 새로운 세계로 발을 들여놓게 만드는 책, 그래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책을 선호하고, 선택해서 읽게 된다. 그런 나의 기준에 딱 들어맞는 그래서 책을 읽고 나서는 서재의 다른 책을 다시 집어 만들게 되는 그런 책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천사는 오후 3시에 커피를 마신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저자 김겸섭 목사는 그리스신화와 러시아문학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회화, 역사, 신학을 넘나드는 인문학적 통찰과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이 책에 담아내고 있다.
책 표지 카피처럼 산문과 운문이 만나는 느리게 읽는 책이다. 짧은 단문 형식의 글로 산문인 듯 운문인 듯 글의 여백과 함께 생각하며 읽게 만드는, 그래서 하루 만에 후다닥 읽어 나가기보다는 한 장 한 장 커피 한 모금 음미하듯 읽어 나아갈 때 이 책의 진가를 느끼게 한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오후 3시를 가리켜 생의 갈등하는 시각이라 말한다. 오후 3시는 무엇을 새로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고, 무엇을 ‘포기’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각이다. 오후 3시의 여성은 힘을 잃어가는 아침의 화장을 다시 고쳐야 할지, 방치해야 할지를 선택해야 하는 시간이며, 오후 3시의 남성은 생동이 이완되어 탄력을 잃어가는 넥타이, 그 풀어진 것을 단단히 매듭 묶어 올려야 할지, 그냥 무시한 채 방기해야 할지를 결정해야 하는 시간이라는 것이다.
하루를 마감하며 정리하듯 퇴고하는 시간일지, 하루를 ‘옷깃 실타래’처럼 가볍게 체념하는 시간 앞에, 오후 3시를 존중하는 삶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그래서 오후 3시에 삶을 숙고하기 위해 커피를 마시러 테라스르 찾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그럼 왜 천사인가? 저자는 이런 삶을 숙고하며, 삶의 문법, 삶의 길을 찾는 모든 이들이 이 땅을 살고 있으나 이미 하늘을 소유한 천사라고 말한다.
우리가 날마다 숙고하며 걸어가야 할 삶의 문법은 무엇인가? 저자는 그리스신화 속 이야기를 통해, 문학과 회화, 지혜로운 이들의 교훈과 격언, 성경의 가르침을 통해 보화와 같은 삶의 문법을 풀어낸다. 자기희생과 배려, 절제와 관용, 자기 비움, 치유와 사랑을 비롯해 위선과 욕망, 편견과 이간질, 증오와 무지, 탐욕과 오만과 같이 채워야 할 것들과 비워야 할 것들을 제시한다.
고다이버 여인의 자기희생과 마을 사람들의 배려. 제임스 패트릭 키니의 마음의 추위. 배고픔의 형벌로 자기 살을 먹었던 에릭직톤과 하얀 코끼리 이야기가 들려주는 탐욕의 비극. 사막 교부들의 금언, 벨로로폰의 휘브리스(오만)에 의한 비극,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지옥의 통치자 루시퍼의 세 개의 얼굴, 증오, 무지, 이간질, 그리고 이간질이 낳은 비극적 희곡 세익스피어의 오셀로에 이르기까지...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가며 그 지평을 새롭게 넓혀가게 한다.
따스한 햇볕 가득한 4월의 어느 날! 늦은 오후와 이른 오후의 길목인 오후 3시에 분주하고 바쁜 일상 속 잠시 잠깐의 여유를 찾아 삶의 과속과 과적을 덜어내고 나를 비워내는, 나를 채워가는 숙고의 시간을 가져본다.
박세훈 목사 (해미제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