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의 경계에서
(<현대의 경계에서> 윤종희, 생각의힘, 2015)
나는 역사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또 좋아한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흘러간 옛이야기들이 재미있어서 위인전기와 역사책을 탐독했다. 그러다 보니 역사의 중요성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역사를 잘 모르면 현재 보이는 현상, 일어난 사건만 보며 ‘좋다, 나쁘다’ 쉽게 단정하게 된다. 그러나 역사를 알면 지금 일어난 일, 보이는 현상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여기까지 왔는지 알기에 겉모습에 잘 속지 않고 좀 더 깊은 본질, 숨겨진 진실에 집중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내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가운데 어디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있더라도,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항상 세계역사(통사)가 아닌가 싶다. 그중에서도 근현대사는 이것, 저것 곁에 두고 늘 참고하게 된다. 오늘 소개할 책은 내겐 뜻밖에 발견한 보물이다. 제목은 모호하지만 들춰보니 그런대로 괜찮아서 일단 사고, 최근에야 탐독했는데, 꽤 좋다. 가장 큰 특징은 이렇다.
예전에 우리는 모든 분야의 역사와 과정을 따로따로 배웠다. 정치사, 경제사, 철학사, 문화사, 음악사, 교회사 등등. 그러나 갈수록 모든 분야가 결코 따로 존재하지도, 별개로 발전하지도 않음을 알게 된다. 문제는 그 다양한 세계와 역사 이야기를 하나로 이해하고 묶어 서술하는 게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탁월하다. 이것, 저것 잔뜩 끌어모은 게 아니라 전후 맥락과 연관관계를 잘 이어주었고, 무엇보다 어려운 전문지식을 다양한 예를 들어 명쾌하면서도, 최대한 쉽게 설명해 놓았다. 막힘 없는 박식함과 탁월한 능력이다.
나는 요즘 자본주의의 출발부터 지금 금융 자본주의에 이르기까지의 흐름을 역사적 과정에서 이해하고 싶었다. “오늘의 자본주의는 금융을 중심으로 생명력을 이어간다. 금융의 절대규모가 커졌을 뿐만 아니라 국경을 넘어 자유로이 이동하는 금융자본의 규모도 증가했다. … 브레튼우즈 체제가 붕괴된 후, 금융자본은 민족적 통제로부터 벗어나, 세계시장에서 자유롭게 이동한다.”(위의 책, 414, 415쪽)
더구나 나는 목사이기에 한국교회에서 막스 베버의 이름을 대며 자본주의가 프로테스탄트 청교도 정신의 세례를 받았기에 기독교적이라는 말의 역사적 정당성 여부를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지금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막스 베버, 박문재 옮김, 현대지성, 2022년)을 읽고 있지만, 그것은 베버의 책만 아니라 근대사와 교회사 흐름 속에서 더 잘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또 베버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지적하듯이, 칼뱅의 예정설이 ‘자본주의 정신’을 정당화하는 교리가 된 것은 칼뱅 자신의 가르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 16~17세기 유럽에서는 가톨릭의 스페인과 프로테스탄트의 상인 세력이 서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 스페인의 무적함대에 맞섰던 북서유럽의 군주들은 상인세력을 지지하면서 프로테스탄트를 허용했다.”(57, 58쪽)
윤석열 대통령은 입만 열면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외치고 있다. 실제로 이는 현대 세계의 보편체제로 인식되어 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서 대변되는 듯이 21세기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자연스러운 상생은 이미 깊은 균열을 보이며 쉽지 않은 위기를 드러내고 있다. 이들 사이의 관계는 어떠하며, 지금의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지의 의문이 이 책 여러 곳에서 잘 설명되고 있다. 또한 저자는 위기는 있으나 분명한 대안은 아직 나타나지 않은 현대의 위기를 고민스럽게 직시하도록 권한다.
“‘민족적 성격’이 약화된 민족국가, 민족공동체의 분열 등을 배경으로 초민족자본은 이윤에 굶주린 ‘진격의 거인’처럼 세계를 휩쓸고 있다. … 초민족자본은 제도화된 노동의 권리조차 인정하지 않고, 분쟁이 발생하면 조용히 떠나건, 아니면 떠날 것이라고 협박하면서 노동자운동을 굴복시킨다. 오늘, 개인의 권리를 실현함으로써 자유·평등·풍요의 이상을 실현한다는 현대의 기획은 위기에 처했다. … 세상이 정상적인 궤도로부터 이탈하면 다양한 사상과 이념들이 출현한다. … 그러나 오늘 지적 반역이 분출하고 있지만, 사회변혁을 위한 역량은 수렴되지 않고 오히려 분산되고 있다. 한 시대에 황혼이 깃들고 어둑어둑해지면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지는 ‘개와 늑대의 시간’이 도래한다. …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늑대’가 창궐하기 마련이다. 특히 ‘적’과 ‘우리’를 나누고, ‘적’에 대한 증오를 동원하는 ‘원한의 정치’는 특별히 경계해야 한다.”(524, 525쪽)
바다 건너 트럼프를 얘기할 것도 없이, 나는 지금 한국에서 이를 통렬히 느낀다. 한국과 우리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깊이 있는 고민을 위해 이 책을 권한다.
구교형 목사 (성서한국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