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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3-07-17 00:08
   
자존감, 나르시시즘, 완벽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법
 글쓴이 : dangdang
조회 : 2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9799 [77]


 

자존감, 나르시시즘, 완벽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법

 

(<셀피>, 윌 스토어 지음, 이현경 옮김, 글항아리 출판, 2021)

 

노인층에 속하는 나이의 사람들에겐 좀 생소한 “셀피(selfie)”란 말은 옥스퍼드 대학 선정 2013년 올해의 단어로 ‘자가촬영사진’의 줄임말이다. 우리나라에선 “셀카(셀프카메라)”라는 말로 일반화되어 있다. 셀피, 셀카는 스마트폰이 일반적으로 세계인의 가장 일상생활화 된 필수품이 되면서 생겨난 일이다. 

 

셀피는 평범한 일상생활을 넘어서 무수한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찍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왜 우린 목숨을 위협당하면서도 '셀카'를 찍을까? 

 

영국의 저널리스트이며 소설가인 <셀피>라는 책을 내면서 “자존감, 나르시시즘, 완벽주의를 살아가는 법”을 말한다. 셀피는 자기애를 드러내는 현대판 나르시시즘이라고들 말한다. 그는 최근 3년간 자신의 삶에서 네 건의 자살이 있었다고 밝힌다. 한 사람이 자기를 혐오하고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결과를 가져오는 실체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 그는 이 책을 썼다. 우리 자아를 침몰하게 하는 이 강력한 힘은 어디에서 오고, 왜 나타나게 된 걸까? 그 굴레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스토는 본격적으로 조사를 시작했다. 먼저 스토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결정하는 자아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자아의 표면 아래를 파고들어 인간의 자아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추적한다. 다음으로는 우리를 완벽주의자로 만드는 환경, 즉 문화를 살펴본다. 문화는 쉽게 이상적 자아를 규정하고, 영화, 책, 신문, 광고, 텔레비전과 인터넷 등 어디에서나 우리를 공격한다. 이를 통해 많은 사람이 문화적 환경이 요구하는 완벽함에 걸맞아야 한다는 압박을 느낀다. 스토는 먼저 독자들을 고대 그리스로 데려간다. 이어서 기독교의 자아를 위해 수도원으로, 자존감 운동이 한창이던 캘리포니아의 에설런 연구소로, 실리콘밸리로, 나르시시즘과 셀카 세대로 불리는 밀레니얼 세대의 기숙사로 우리를 이끈다. 오늘날 신자유주의 자아의 모습을 대표하는 셀피, 우리는 어쩌다 카메라로 내 모습을 찍게 된 걸까?

 

이 책은 자아와 자존감에 대한 책이지만, 높은 자존감을 강조하는 수많은 자기계발서와는 완전히 다르다. 어떻게 우리 사회는 이토록 자아에 사로잡히게 되었을까? 높은 자존감이 과연 바람직하기만 한 걸까? 하는 의문을 제기하며 그 과정을 밝혀가는 이 책은, 아리스토텔레스와 프로이트부터 높은 자존감을 상징하는 스티브 잡스나 도널드 트럼프 같은 당대의 인물까지 다채롭게 다루며 우리 머릿속 한구석에 자리 잡은 높은 자존감의 진실을 파헤친다. 자아와 문화를 탐구하는 여정은 독자들에게 한편으로 충격을 안겨주고 동시에 신선한 시각을 제공한다. 

 

목차를 보자.

0. 죽어가는 자아

1. 부족으로서의 자아

2. 완벽할 수 있는 자아

3. 나쁜 자아

4. 착한 자아

5. 특별한 자아

6. 디지털 자아

7. 완벽주의 시대에서 살아남는 법

 

책속으로 한걸음 더 들어가 보자.

 

- 자살이란 참 불가사의한데, 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인간 본성에 대한 모든 사실과 어떤 본질적인 면에서 어긋나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은 진화하는 동물이다. 목표가 좋든 나쁘든, 우리는 계속해서 목표를 밀어붙여 대도시를 건설하고 거대한 광산을 파고, 위대한 제국을 세우고 기후와 환경을 파괴하고, 과거 속 환상의 한계를 파괴하며 우주의 힘을 정복하고는 마법과도 같은 일을 우리 일상 속으로 들여온다. 어떤 것을 원하면 반드시 그것을 얻어내고야 만다. 우리는 탐욕스럽고 야심차며 영리하고 끈질기다. 자기 파괴는 이 도식에 들어설 자리가 없다. 

 

- “저는 소셜미디어가 대중적으로 아주 인기 있는 시대에 자라났어요. 메신저에 몇 명의 친구가 있는지로 잘나가는지 아닌지가 결정되곤 했어요. 그러고 나서는 페이스북이 인기 있어졌고, 이는 고역이었어요. 거기에 올라오는 게시물들을 보는 일이 힘들었거든요.” 그녀는 말했다.

“뭐가 힘들었는데요?” 내가 물었다.

“그냥 사람들이 정말 행복해하는 것을 보는 것이요. 뭐랄까, 노골적인 사진들이었어요. ‘오, 난 내 인생을 사랑해’라고 말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나도 그런 감정을 느끼고 싶은데 난 그러지 못해서 힘들었어요. 그렇지만 저도 그렇게 보이고자 그런 게시물을 올렸어요.” 

 

- 인간 자아의 가장 핵심적인 활동은 남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깊은 관심을 갖고 이를 통제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 어느 정도는 절실하고 과민한 자기 홍보 전문가다. 자신의 명성이 보잘것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자아는 고통, 분노, 절망의 상태로 접어든다. 심하면 자신을 부정하기까지 한다.

 

-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완벽함을 위한 전쟁을 막는 것은 단지 첫걸음일 뿐이다. 일단 스스로 내가 아닌 누군가가 되고자 노력하는 것을 그만두고 나면, 당신의 삶 속에서 당신이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 평가를 내려볼 수 있다.

 

-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 사람은 타고난 잠재력을 지녔으며 자연스럽게 완벽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에게는 사람은 죄인으로 태어나 지옥에 떨어지는 존재이다. 완벽은 개인이 아니라 신에게 깃들어 있었다. 더욱 완벽해지길 원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과 끊임없는 전잰을 벌여야 했다. 세상 밖의 힘이 아니라 자신의 영혼과 양심, 마음 그리고 생각과의 전쟁이다. 기독교인들은 서구의 자아에 영혼을 주고 나서 그 영혼을 고문하기 시작했다. 

 

- 나는 내 안에 있는 낮은 자존감 때문에 여러모로 수년간 갈들을 겪어왔다. 우리는 실패를 우리의 ‘악마’라고 했는데, 이는 우리의 일부이자 싸워야만 하는 대상이다. 내 탓이요, 내 탓이요... 이렇게 말이다... 이는 분명 분노에 차서 부모님의 기독교주의에 저항했던 나의 십대 시절에 내 목을 조르기도 했다. 

 

- 진정한 자아는 신과 같다. 우리의 참된 생각과 감정은 ‘예절’이라는 구태의연한 커튼 뒤에 억압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진짜가 되어야’하고 ‘가짜’인 사람들을 비난해야 한다. 우리 자아는 나름의 정당성을 갖는다. 자아가 원하는 것을 자아는 말해야만 한다. 인간의 ‘동물적인 본성’의 바탕이자 인간 성격의 가장 깊은 층인 인간 본성의 가장 내밀한 핵심은 본질적으로 긍정적이다. 

 

성서적 진정한 자아, 나의 성서적 셀피는 무엇일까? 한국교회에선 한때, “당신은 하나님의 명품”, “하나님의 최고의 걸작품”이란 말이 유행어처럼 사용되어 졌다. 이 유행어가 진정한 나의 성서적 자아, 성서적 셀피일까? 

 

디도서는 우리의 성서적 자아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 신중하고 바르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딛 2:12).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자기 자신을 주셨습니다...  우리를 ... 선한 일을 하기에 힘쓰는 그의 백성이 되게 하시려고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셨던 것입니다”(딛 2:14)..

 

홍기석 목사(로마연합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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