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대를 읽다, 성경을 살다
(<시대를 읽다, 성경을 살다> 박영호, 복있는 사람, 2023)
<시대를 읽다, 성경을 살다> 제목 자체가 나에겐 무척 반성적이다. 아마도 이 제목의 논리대로 지난 날을 반성하자면, ‘성경을 읽기는 읽되, 시대는 외면하다’로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오랫동안 텍스트에만 집착하며 살았다. 솔직히 고백하지만 그랬던 이유는 게으름과 사람들에 대한 사랑 결핍 때문이었다. 그러니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고, 이에 대한 성경적 처방이나 대안을 제시하기엔 열정도 없고 그저 무능할 뿐이었다. 반성하며 읽었다.
이 책에서 다룬 주제들은 저자가 ‘2016년에 과천교회 삼공플러스 지체들과 함께 나누었고, 현재 담임하는 포항제일교회에서도 “현실과 말씀의 만남을 모든 세대가 갈급해 한다”(11)는 판단 아래 주일 연속 설교를 했던 것으로 2023년 5월에 출간했다. 2016년 이래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저자가 다룬 주제들은 여전히 우리 사회상을 보여주는 것들이다.
저자는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한 진리이며 어디서나 빛이지만, 우리의 시야는 우리의 걸음에 매여 있습니다. 말씀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인간의 말’인 신학은 한 걸음씩 비추는 것도 버겁습니다.” 라면서 각 시대마다 기존 신학의 갱신 혹은 그 시대를 반영하는 새로운 신학이 필요하다고 말한다(9).
1장에서 이를 상징적으로 말한다. “모든 지도”, 즉 이미 인쇄되어 나온 지도는 “낡은 지도” 라고 하면서 저자는 스티브 도나휴의 <사막을 건너는 여섯가지 방법>에서 나온 말을 인용했다. ‘지도보다는 나침반을 따라가라. 나침반을 따라가는 삶이란 목적의식을 갖고 방황하는 것’이며, 그러면 비록 방황하더라도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다‘(17). 즉 아무리 시대가 바뀌고 상황이 급변해도,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본연의 목적의식을 잃지 않으면 그 시대에 대응할 수 있는 말씀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서 저자는 이 시대의 특징을 AI 시대, 긱 경제나 비정규직 확대에 따른 고용 불안과 사회적 차별, 개인 행복과 힐링 추구 등으로 인한 사회적 거대 담론의 실종 등 열두 가지 현상을 제시하며 이같은 현상을 극복할 수 있는 성경 메시지를 제시하고자 했다.
2장 “AI 시대의 영성”에선 인공지능을 갖춘 기계보다 못한 인간이라는 열등감에 빠질 수밖에 없는 시대에 오히려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할 것을 말하면서, 선한 사마리아 사람 비유처럼 공감과 회복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영성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3장 “행복 숭배 시대의 기쁨”에선 이 시대는 숭배적 차원에서 행복을 추구하고자 하지만 정작 행복은 더 멀어져“(63) 가는 형편이라고 했다. 이런 때에 교회는 진정한 인생의 행복, 혹은 기쁨은 내가 만들거나 확보한 어떤 물질이나 삶의 조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생명을 길을 걷는 이들에게 주님이 주시는 것임을 일깨워 줄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4장은 “긱 경제 시대의 자기 경영”을 다루었다. 긱 경제(gig economy)란 프리랜서나 임시직 등 단기 계약 형태가 전체 경제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형태를 말한다. ‘고용 불안과 직장 실종 시대‘라는 것이다(81). 이런 경제 체제 속에서 살아가려면 스스로 자기 인생의 경영자가 될 수 있도록 지혜와 실용적 지식을 터득해야 하며, 자기 관리나 의사 결정, 소통 능력 인문학적 소양 등을 배양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러려면 인생 자체가 학교이며, 평생 학습으로 자신들을 빚어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5장 “비정규직 800만 시대의 직장 문화”에서 저자는 고용 형태로 인한 차별이 엄연하고 고용이 단기간 밖에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평생 직장 차원의 ‘일의 영성’을 말할 수는 없다고 본다. 이런 때일수록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차별이 철폐되었음을 믿는 신학을 강조하며, 함께 식사하는 공동체를 세워나가야 한다고 했다.
6장은 “힐링 시대의 신앙”이다. 저자는 이 시대는 ‘고지 점령’이 아니라 힐링을 갈망하는 시대라고 보았다. 그러나 그 힐링은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대로 상처에 반창고 정도를 붙여주는 차원의 힐링이 아니라 세계와 역사의 차원까지 바라보며 근본적으로 삶의 태도와 세계관, 삶의 목표를 바르게 정립시키는 힐링으로 끌어 올려야 한다고 했다.
7장 “혼밥 시대의 품위”에서 저자는 혼밥은 경쟁 시대에 시간과 정열을 아끼는 효율성도 있지만 관계의 단절과 여유 없는 삶의 한 단면을 보여 준다고 했다. 이런 시대에 오병이어 잔치같이 한 사람 한 사람을 존중하며 타인들과 관계를 엮는 하나님의 나라 잔치를 제안한다.
8장은 “엔터테인먼트 시대의 예배”를 다룬다. 일을 예배처럼 하고, 놀이를 일처럼 하고 예배를 놀이처럼 하는 시대에 저자는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따라 일은 일로, 놀이는 놀이로, 예배는 예배로 회복할 것을 제안한다.
9장은 “피로 시대의 쉼”에 대해 말한다. “심심할 틈, 어색할 틈”조차 주지 않는 이 시대의 또 하나의 특징은 피로 사회이다. 주님이 주시는 진정한 쉼을 일깨워주어야 할 시대이다.
10장은 “불안 시대의 위안”에 대해 말한다. 저자는 알랭 드 보통이 말하는 불안의 원인(사랑 결핍, 속물 근성,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과 이에 대한 해법(철학, 예술, 기독교)을 통해 바울이 전하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가져다주는 위로와 평안을 원리로 제시한다.
11장 “시민 주권 시대의 참여”에서 저자는 교회는 사적이면서도 늘 공적인 성격을 띠고 있기에 사회적 책임을 지니고 있다면서, 정치적 극단주의를 경계한다. 교회가 ‘정치적 극단주의에서 벗어나는 길은 교회가 직접 정치적이 되는 것도, 정치적 무관심으로 개인의 일에만 관심 갖는 것도 아니고, 사회 전체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기도하면서 우리 삶의 자리에서 건강한 코이노니아를 이루어 가는 것’이라고 했다(283).
12장 “포스트크리스텐덤 시대의 선교”에서 저자는 먼저 기존 기독교 국가적 차원의 선교 형태를 반성하면서, “교회는 그 자체가 세상에 보냄받은 것이고, 세상 전체가 선교지”(287)라는 “선교적 교회”로의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그 형태로 마을 목회“를 제안하였다.
13장 “냉소 시대의 열정”을 다룬다. 저자는 오랫동안 겪은 상처와 실망으로 인해 생긴 냉소주의가 한국 사회에서 가장 오랜 기간 질긴 싸움을 벌여야 할 대상이라고 했다. 사회적으로는 거대 담론을 상실하고, 개인들은 자신들의 삶에 있어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시대이다. 저자는 이같은 냉소를 극복한 인물로 요셉의 눈물과 바울의 열정을 예로 들고 있다.
텍스트와 컨텍스트, 평생 붙잡고 씨름할 화두이다. 한편으론 성경을 정언적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거기에 맞추어 시대의 변화를 위해 살기도 해야 하지만, 현재 한국 교회 상황에선 동시대에 대한 애정과 함께 시대를 바르게 파악하고, 적절하게 성경적 대안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고 시급한 일임을 저자를 통해 배운다.
김수영 목사(대영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