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누리는 모든 것들을 위한 희생을 기억하라”
(<불량직업잔혹사-문명을 만든 밑바닥 직업의 역사>, 토니 로빈슨, 데이비드 월콕, 신두석 역, 한숲, 2005)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역사란 수많은 사건의 나열이고, 그 사건들의 연대를 밟아가는 여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건은 언제나 승자에게 유리하게 기록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리라.
그동안 우리가 배우고 알고 있는 역사는 그러했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난 시간 속에 등장하는 사건과 인물은 잘 알고 있음에도 실제로 그 때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가에 대한 질문에는 답을 하기 힘들다.
물론 근래에는 미시사를 비롯해서 과거의 사람들의 삶을 연구하는 생활사 등의 분야들이 강조되고 있지만, 이 역시 대부분 학문적 영역에서 연구에 그치거나 혹은 특정 분야에 치중되는 경향이 짙다. 게다가 이마저도 대중들의 관심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오늘 소개하는 책은 역사에 대한 전혀 다른 접근을 한다. ‘불량직업잔혹사-문명을 만든 밑바닥 직업의 역사’. 책 제목 자체가 스포인 이 책은 로마시기부터 빅토리아 왕조 시기까지 영국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서 많은 사람들의 천대의 대상이었지만, 동시에 많은 이들이 역사로 기억하고 있는 문명의 근간을 이루는 많은 것을 만들거나 문명 사회를 만들어가는데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동시에 그들이 갖고 있던 직업을 통해 당시의 시대상을 유추할 수 있게 해준다. 앞서 말했듯 그들이 했던 수많은 일은 누구에게나 천대받지만 동시에 많은 이들이 문명을 누리며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충격을 받을 수도 있다. 로마의 화려한 문화,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이룩한 빅토리아 여왕시기…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명을 누리며 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힘들고, 어려운 삶을 이어갔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영국의 역사만은 아니다.역사는 현재와의 대화라는 말처럼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직업의 주인공은 지금도 여전히 이어지는 현재진행형이다.
갑질과 차별에 일상화되어가는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 그들에게 당신이 누리고 있는 문명의 이기가 누구로부터 왔는 지를 묻고 싶다. 건설노동자, 운전기사, 택배원, 농부 등등… 많은 이들이 무시하지만 동시에 그들이 없으면 당신이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은 없다.
마지막으로 홍순관님의 ‘쌀 한톨의 무게’라는 곡의 가사를 소개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쌀 한 톨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무게를 잰다
바람과 천둥과 비와 햇살과
외로운 별 빛도 그 안에 스몄네
농부의 새벽도 그 안에 숨었네
나락 한 알 속에 우주가 들었네
버려진 쌀 한 톨 우주의 무게를
쌀 한 톨의 무게를 재어본다
세상의 노래가 그 안에 울리네
쌀 한 톨의 무게는 생명의 무게
쌀 한 톨의 무게는 평화의 무게
쌀 한 톨의 무게는 농부의 무게
쌀 한 톨의 무게는 세월의 무게
쌀 한 톨의 무게는 우주의 무게
ps. 이 책은 현재 절판이고 전자책으로도 나오지 않아서 소개할까 고민했지만 다행히 중고서적으로는 구매 가능하기에 소개했습니다.
장세현 목사 (베트남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