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은 우리 집이올시다
(<조선은 우리 집이올시다>, 권지영 지음, 이덕주/전병식 감수, 신앙과지성사, 2023)
이 책은 조세핀 캠벨 선교사의 평전(評傳), 즉 비평을 곁들인 전기(傳記)이다. 캠벨의 조선 선교 사역지는 주로 학교와 교회, 그리고 병원이었다. 학교로서는 배화학당(현 배화학원), 교회는 종교교회/자교교회/수표교교회/광희문교회/석교교회가 있고, 의료기관으로는 세브란스 병원이 있다. 2020년 소천 100주기를 기념하는 추모회를 시작으로 발족된 ‘캠벨 기념사업회’가 캠벨 선교사의 전기를 평전 형식으로 출판하기로 하여 저자에게 집필을 맡겨서 출간된 책이다.
이 책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선교사가 되기까지, 1853-1887
2. 중국 선교 – 상하이, 1887-1888
3. 중국 선교 – 쑤저우, 1888-1895
4. 한국 선교 - 결정과 개척, 1895-1897
5. 한국 선교 – 시작, 1897-1898
6. 한국 선교 – 발전, 1898-1905
7. 한국 선교 – 부흥, 1905-1910
8. 한국 선교 – 달려갈 길, 1910-1920
1853년 4월 1일 미국 남부 텍사스에서 목사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1878년 남감리회 목사이자 교육가인 알론조 캠벨(Alonzo M. Campbell)과 결혼하여 딸과 아들 두 자녀를 낳았으나, 수년 내에 남편과 자녀 모두 잃어 홀로 남는다. 가족을 모두 잃은 뒤 “하나님께서 자신의 빈손을 주님을 위해 일하는 것으로 채워주시기를” 기도했다. 가족을 잃은 빈손을 한탄하며 자책하거나 주저앉지 않고, 그 빈손으로 넘어진 다른 사람들의 손을 잡아 일으켜주기 시작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1887년 4월 남감리회 해외여선교부에서 파송을 받아 중국 상하이에 도착하여 선교활동을 하던 중, 1888년 5월 쑤저우로 파송되어 쑤저우 여선교부를 담당하였다. 그러다가 10년간 지냈던 중국을 떠나, 1897년 10월 8일 중국인 수양딸 도라 유(Dora Yu)와 함께 제물포항에 도착하였다.
1898년 8월 1일 자골(지금의 내자동)로 남감리회의 여선교부 본부를 이전하고, 1898년 10월 2일 여섯 명의 학생으로 ‘캐롤라이나학당’, 즉 ‘배화학당(培花學堂)’의 문을 열었다. 1900년 4월 15일 부활주일에 기숙사 기도실에서 예배를 드린 것이 종교교회와 자교교회의 모체인 자골교회의 시작이었다.
1917년 1월부터는 세브란스 병원 간호학교 교사, 기숙사 사감으로 봉직하였다. 1917년 10월, 한국 교인들이 준비한 ‘내한 선교 20주년 기념식’이 거행되었으며, 이와 관련한 매일신보와의 인터뷰에서 “여기(한국)가 우리 집이니까 언제까지든 여기서 지내겠습니다.”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1918년 안식년 휴가를 떠났고 디프테리아를 앓으면서 쇠약해졌으나,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1920년 8월 한국으로 돌아왔다. 내한 4개월만인 1920년 11월 12일 67세의 일기로 별세하여 양화진에 묻혔다.
저자는 한국을 사랑한 파란 눈의 어머니, 캠벨이라는 고귀한 유산을 발견하는 과정은 놀라움과 기쁨, 경이로움의 연속이었다고 고백한다. 선교지 한국이 ‘우리 집’이라는 표현과 “죽어도 한국에 가서 죽는 것이 마땅하다”라는 고백은 어떤 마음에서 나온 것인지를 헤아려보려고 노력했다고 말한다. 캠벨의 그리스도적 삶은 어두운 시대 속에서도 많은 이에게 소망을 품게 했고, 다시 일어날 힘을 실어주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캠벨이 걸어갔던 그 길을 걷고 있는 오늘의 우리들에게, 캠벨의 삶이 주는 위로와 격려가 전해지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조선의 여성 교육과 선교에 있어서 미(북)감리회의 스크랜톤 대부인(스크랜톤의 어머니)이 있다면, 남감리회의 여성 교육과 선교에는 캠벨 선교사가 있다. 이 책은 이화학당 설립자 스크랜톤 대부인에 가려 별로 학계에 별로 알려지지 못했던 배화학당 설립자 캠벨 부인의 삶과 선교 사역의 전모를 소상하게 드러내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자료를 찾아서 캠벨의 전부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여성 사학자에 의해서 여성 선교사의 삶이 조명되었다는 점도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선교현장에서 무엇보다도 캠벨의 ‘매력’을 돋보이게 한 것은 바로 ‘사람됨’, 인격 혹은 인품과 관련된 부분이었다고 말한다. 그녀를 만나는 사람들은 강한 지도력을 넘어서 공감하며 품어주는 그녀의 모습에서 어떤 이들은 ‘언니’의 모습을 보았고, 어떤 이들은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다고 말한다. 어머니 캠벨의 섬세한 감정을 찾아내 기술한 점은 여성 사학자의 강점이라고 이덕주교수는 말한다(출판기념회에서).
전병식목사(배화여자대학교 교목실장)는 “조선은 우리 집이올시다”가 캠벨 선교사를 더욱 친근하게 기억하는 대표적인 지칭어(指稱語)가 되었다고 하면서, 이 평전이 캠벨 선교사의 헌신을 기념하면서 선교사의 선교활동을 계승하여 세상 곳곳에 또다시 펼쳐지는 캠벨 후예(後裔)의 선교에 활력을 제공하는 기적의 기록이 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저자가 돌아가신 형님(故 권종호 목사)의 딸이자, 필자의 조카인 것이 자랑스럽다. 수고에 박수를 보내며 목회자로서, 학자로서 잘 걸어가기를 기도한다. 개인적으로는 한국교회 초기 선교역사를 공부할 수 있어서 좋았고,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들이 캠벨의 삶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통해서 새로운 힘과 소망을 얻기를 기대한다.
권종철 목사 (예수마을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