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굴 한국 현대사 인물
(<발굴 한국 현대사 인물1>, 한겨레신문사, 1991)
신세 지고 있는 사무실 책꽂이에 눈에 들어온 책이 있었다. 한겨레신문사에 펴낸 <발굴 한국 현대사 인물1>이다. 1991년 판이니, 무려 32년 전에 나온 책이다. 표지를 펼치니 빛바랜 속지가 세월의 무게를 가늠케 한다. 본문 서체도 명조가 분명한데, 요즘 편집 레이아웃과 달라서 그런지 ‘고전’스럽다. 자간이나 행간도 보다 더 촘촘한 느낌이다. 무엇보다 오래된 책에서 풍기는 냄새가 청춘의 그 어느 날을 떠오르게 한다.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인물의 면면을 보니, 신문사의 패기가 넘쳐난다. 그동안 금기시되거나 애써 외면했던 인물을 ‘발굴’하고 있으니 말이다.
“해방과 분단 뒤 40여년 동안 쓰인 역사 교과서들에서 이처럼 누락되거나 왜곡된 인물들을 복원하기에 역점을 두다보니 자연히 식민시대에 공산주의 활동을 하거나 해방공간에 월북한 인사들에 많은 지면이 바쳐지게 됐다. 이른바 ‘민족주의 진영’의 우파 독립 운동가들은 분단 이후 남한 역사책들에서 많이 소개되었고 과대 평가된 부분도 많아 새롭게 거들지 않아도 된다는 판단이었다” (‘편집후기’ )
본서는, 1989년 10월부터 1992년 2월까지 한겨레신문에 연재된 장기 기획물을 묶은 3권의 단행본 가운데 첫 번째 책이다. <발굴 한국 현대사 인물> 시리즈는 우리 현대사를 수놓은 중요 인물 중 이념 등의 문제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인물 1백 명의 생애와 업적을 소개하고 있으며, 나중에 일본에서 번역 출간되기도 했다.
1권에서는 ◾️새로운 정신이 한국의 근대를 열다, ◾️시대가 여성의 삶을 바꿔 놓다, ◾️작은 빛이 식민의 어둠을 밀어내다, ◾️한국사에서 마르크시즘, 그 논리와 행동, ◾️계급 사회에 대한 항거, 그 긴 역사, ◾️냉전과 독재의 그늘 50~70년대, ◾️권력의 주변, 시들지 않는 양심, ◾️예술적 재능이 대중정서를 움직이다, ◾️실험실에서 세상을 바꾸다, ◾️20세기 한국 종교의 새로운 전개라는 소제목 아래 모두 34명의 인물을 발굴해 소개하고 있다.
당시 한겨레신문 송건호 회장은 1권 발간사에서, ‘<발굴 한국 현대사 인물>에서는 일제시대 민족을 위해 침략자와 싸우다 희생된 인물들이면 그의 8.15 뒤의 행적과는 상관없이 소개하기로 했다’고 밝히고 있다. 특별히 누구보다 ‘젊은 독자들의 일독을 바란다‘던 발간사가 최근 대통령의 대일 굴욕 외교 등 경거망동을 분노로 지켜보는 필자 입장에서 더욱 다가온다. 덤으로 조선희, 고종석 등 당대 글쟁이들의 재기발랄한 글솜씨를 마주하는 작은 기쁨 역시 놓칠 수 없다.
“아마 이 책에 소개되는 인물 중에는 지금까지 외면당한 채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 인물들이 많이 들어 있을 것이다. 진정 누가 민족을 위하고 누가 일신의 안전을 위해 일제에 굴종하였나, 일제에 협조했나를 후대들은 분명히 가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독자들은 이 책을 읽음으로써 많은 새로운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젊은 독자들의 일독을 바란다” (‘발간사’)
진광수 목사 (바나바평화선교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