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 나라를 응시하다
(<하나님 나라를 응시하다>, 구교형, 대장간, 2019)
올해 초부터 시작한 서평 연재 반년 만에 자기 책을 소개하는 것이 너무한가? 여간해선 나 자신을 홍보하지 않지만, 지금 이 책은 소개해야겠다. 이 책은 ‘한국복음주의 사회선교운동 30년사’라는 부제를 붙였듯이 한국 현대사와 교회사의 엄연한 한 축을 정식으로 소개하려는 마음으로 썼다. 그리고 그것은 부끄럽지만 나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회고해 보자. 10.26.사태와 12.12.사태(1979년), 그리고 광주의 무참한 학살(1980년)을 통해 집권한 신군부 세력의 폭압 통치는 전두환(1980~1988년)과 노태우(1988~1993년) 정권을 거치며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한편 그 와중에 유신 시대만 해도 소수의 선각자, 지식인들의 저항활동에 그쳤던 반독재 및 민주화운동이 훨씬 대중화, 다양화하여 시민사회가 형성되는 발전을 낳았다. 물론 6.29선언과 노태우 후보 당선으로 군부정권은 연장되었지만 1987년 민주화 대항쟁은 한국 사회를 엄청난 변화로 이끌었다. 그 와중에 한국기독교(교회)에도 전무후무한 변화가 일어났다.
단순화하자면 그동안 한국교회의 지형은 아주 단순했다. 오직 개인 구원, 전도와 선교만 복음의 가치로 굳게 믿던 대다수 보수, 전통 기독교(회)와 1948년 출범 이후 인간화의 과제를 복음과 선교의 중심가치로 삼은 WCC와 NCC 운동에 참여한 진보 기독교(회)의 선명한 대비였다. 그런데 20세기 중반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보수교회가 가장 중요하게 지켜온 전통적, 역사적 기독교의 뿌리와 고백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불의하고 부패한 사회구조로 인해 고통받는 인류의 외침에 응답하는 것을 당연한 복음의 과제로 믿는 사람들이 나타난 것이다. 소위 ‘복음주의자’들이다. 이들은 미국 빌리 그래이엄, 영국 존 스토트, 그리고 남미의 사회적 제자도 그룹을 중심으로 1974년 스위스 로잔에서 모여 복음의 총체성에 기반한 로잔 운동을 시작할 것을 천명했다.
이 일이 일어난 후 돌고 돌아 1980년대부터 한국에도 상륙했다. 소수의 해외유학파 학자들이 로잔운동을 번역하여 소개하고, 젊은 목회자 및 신학생, 선교단체 학생과 청년들은 이를 우리의 민주화운동 상황에 연계하여 한국복음주의 사회선교운동을 함께 시작하게 된 것이다. 1987년 직선제 개헌의 대선을 앞두고 만든 공정선거운동의 경험을 토대로 잇따라 연합조직운동이 만들어졌다. 복음주의청년학생협의회(복협)-복음주의청년연합(복청)-복음주의청년학생연합(복청학련)을 결성하여 사회참여운동을 시작했다. 그러한 연합조직 전후에도 초기 기독교시민단체 창립(1984년 헨리죠지협회, 1989년 기윤실 창립), 기독교세계관운동, 선교단체의 통전적 복음 수용, 언론운동(1991년 복상 창간)으로 이어졌다.
2000년대 들어서는 더 다양한 각 영역의 기독시민운동단체들이 잇따라 창립되었다. 기독법률가회(CLF/1999년) 뉴스앤조이(2000년), 교회개혁실천연대(2002년), (사)좋은교사(2004년), 청어람 아카데미(2005년), 평화누리(2007년), 하나누리(2007년), 기독연구원 느헤미야(2010년), 평통연대(2010년), 한국복음주의교회연합(2014년), 기독교반성폭력센터(2018년) 등이다. 또 이러한 과정 중에 복음주의 사회선교운동의 연합과 기반구축을 위해 2005년 성서한국운동이 출범과 동시에 성서한국대회를 시작했다. 성서한국은 그 이후 18년 동안 전국대회와 지역대회 개최, 사회선교현장 적극 참여, 사회선교단체 연대기반 마련에 힘써왔다.
이제부터 내 얘기다. 중학교 때부터 자의반 타의반으로 교회에 출석했지만 소위 ‘순수 복음’보다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대학생 때인 1987년 겨자씨 형제단(대표: 박철수 목사)을 통해 로잔적 소명을 발견했고, 그때부터 위에 적은 한국복음주의 사회선교운동의 과정을 함께 밟아왔다. 1993년 총신 신대원을 졸업하며 경실련(당시 사무총장 서경석 목사)의 기청협 간사를 시작으로 2014년 성서한국 사무총장을 그만둘 때까지 이쪽 운동의 실무를 두루 맡아왔다. 그러나 성서한국 사무총장을 사임할 무렵부터 스스로 큰 숙제를 떠안기 시작했다. 한국 현대사와 교회사의 중요한 과정을 거쳐 지금도 엄연히 활동하고 있는 우리 복음주의운동의 실제 이야기들이 점점 잊힌 채 다음 시대 후배들에게 전혀 계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조건 책을 쓰기로 결심했고, 자료와 증언들을 모으고 정리해 2019년 말 출판한 것이다. 책은 역시 잘 안 팔린다. 그래도 나는 하나님과 나 자신에게 한 약속을 지킨 것 같아 홀가분하다. 올해(2023년)는 잠깐 쉬었던 성서한국대회(7월 27~29일/서울여대)를 4년 만에 재개한다. 그리고 내년(2024년)에는 한국에서 네 번째 국제로잔대회를 개최한다. 후년(2025년)은 성서한국운동 20주년이 된다. 우리는 잠시 멈춰 하나님이 한국사회와 교회, 그리고 우리 자신을 이끌어가시는 섭리를 조망하기 위해서도 이번 6월 이 책을 일독해 주기를 감히 권한다.
“역사를 살펴보는 이유는 자화자찬이 아니라, 우리가 걸어온 길을 통해 지금 서 있는 자리를 확인하고, 계속되는 시대의 과제를 제대로 다짐해 보려는 마음일 것이다. (중략) 그러므로 사회선교의 이름으로 행한 30년도 마땅히 그 맥락 안에서 우리 스스로 재평가되고, 앞으로의 활동도 그렇게 구상되어야 할 것이다.”(본문, 219쪽)
구교형 목사 (성서한국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