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의 경계에 놓인 한 아이에 관한 기록
(<리아의 나라>, 앤 패디먼 지음, 이한중 옮김, 반비)
"몽족 말 중에 '하이 촤 추 코 추(hais cuaj txub kaum txub)'라는 말이 있다. '온갖 것들에 대해 다 말하자면'이란 뜻이다. 이 표현은 이야기를 시작할 때 흔히 쓴다. 이것은 세상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지 않지만 어떤 사건도 개별적으로 일어날 수 없으며 요점에만 주목하면 많은 것을 잃을 수 있고 이야기가 꽤 지루할 수도 있다는 점을 일깨워주기 위한 표현이다." - 2장 <(Hmong) 생선국> 중
그래서 나도 '하이 촤 추 코 추(hais cuaj txub kaum txub)'로 글을 시작하고 싶다. 이 책에 대해 말할 때 이보다 좋은 도입은 없는 것 같다. 우리는 흔히 이야기의 요점이나 주제를 빨리 파악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요점이 무엇인지,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아내고자 한다면 금세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이야기의 한복판으로 들어오기를 요청하며 그 안에서 '판단'하기보다는 '질문'하도록 안내한다.
<리아의 나라>라는 제목에 등장하는 '리아'를 설명하려면 길다. 그는 혁명 시기 라오스 출신의 부모를 둔, 그러나 라오스 땅이 아닌 미국 캘리포니아 소재의 병원 <MCMC>에서 태어난, 최소 13명의 형제자매가 있는(혹은 있었던) 여자아이다. 그의 이름 '리아'는 라오스의 소수민족 중 하나인 몽족의 전통적인 이름으로, 그 사실에서 알 수 있듯 리아와 그의 가족은 '몽(Hmong)족'이다. 그의 가족들이 해왔던 것처럼 리아 역시 태어났을 때 몽족 전통의 '혼을 부르는 의식'을 치렀다. 한편 그의 생후 3개월 때에 '뇌전증' 발작이 시작되었다. 이 일로 인해 미국 병원의 의료진들은 리아를 치료해야 할 환자로 다시 만나게 되었고, 리아의 부모는 그를 다른 사람을 치유할 '샤먼'이 될 아이라 여기게 되었다.
뇌전증을 앓고 있는 몽족 아이와 그의 가족, 그리고 미국인 의료진 및 공무원들과 그들을 둘러싼 사회, 그 안에서 벌어지는 문화적 충돌과 다양한 시선이 교차하는 이야기. 어쩌면 책의 내용을 이렇게 요약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책을 펼쳐 읽어내려가다 보면, 그러니까 '리아'라는 한 사람에게서 시작하여 그 가족과 민족의 역사를 쫓아, 몽족이라는 소수민족이 왜 주로 중국과 베트남과 라오스 일대 산간지역에 거주해왔는지를 알아가다보면, 또한 라오스 땅에 살아가던 몽족이 어떤 이유로 한 달 동안 걸어서 태국 국경을 넘고, 또 미국에까지 건너와 정착하게 되었는지를 묻다보면, 그리고 리아의 가족을 포함한 몽족들과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미국의 지역사회가 겪는 갈등을 지켜보고, 언어의 몰이해와 문화적 간극 사이에서 답답해하는 등장인물들에게 공감하다보면, 이 책이 담고 있는 이야기를 한 줄로 요약한다는 것이 꽤나 버거운 일이라는 것을 이내 깨닫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읽는 데에서 끝나지 않고 뛰어들어 질문하게 만든다. 이야기는 아주 길게 이어지고(책이 꽤 두껍다.) 문화적 상대편에 선 이들의 목소리가 교차해서 등장하는데, 그때마다 나는 멈추어서 내가 가진 생각과 입장을 되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내가 처한 상황이 특별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나는 지금 '라오스'에 거주하고 있고, 한국에 있을 때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었던 '몽족' 사람과 같이 일하고 있다. 나는 한국과 라오스 사이에, 혹은 한국인과 몽족사람 사이 경계선에 서 있다고 느낄 때가 많은데, 내가 옳다고 믿어왔던 행동이 상대방에게 강한 거부감을 갖게 할 때라던지 차별적이지 않은 언행을 하려고 노력하다가 도리어 차별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던지 할 때 특히 그렇다. 나는 "(리아의 부모와 의사) 양쪽 모두에게 필요했던 것은 '문화적' 통역자였으니까요."라는 저자의 말에 강하게 동의했다. 라오스에서 몽족 사람과 함께 지내는 나에게도 '문화적' 통역자가 절실하게 필요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비단 나의 특별한 경우에만 그러할까? 같은 나라 안에 살아도 세대 간에, 지역 간에, 종교 간에 혹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그 모든 차이로 인한 문화적 간극이 심하다는 것은 모두 느끼고 있지 않을까. 아예 다른 문화권에서 온 이주민이나 난민은 어떠한가. 그들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 더이상 특별한 상황도 아니다. 그때 우리는 '저 사람들은 이상해'라며 선을 긋는 손쉬운 방법을 택할 수도 있고, 선을 넘어 이해의 자리로 나아가는 용기를 낼 수도 있다.
싫든 좋은 문화적 간극을 경험하며 살아가야 하는 우리 모두에게 오늘의 책 <리아의 나라>를 추천한다. 책을 읽으며 떠오른 수많은 질문들과 씨름하고 고민하다보면 어느새 하나의 선을 넘은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정유은 (라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