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이라는 세계
(<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사계절, 2020)
얼마 전에 우연히 유튜브를 통해 “웃으면 복이 와요” 라는 아주 옛날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고는 까맣게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그땐 집 안에서도 삼형제가 북적거렸고, 동네 골목에도 애들이 가득했다. 그곳에서 술래잡기, 딱지치기, 구슬치기, 땅따먹기, 자치기, 편먹고 축구나 전쟁놀이 등등 벼라별 놀이를 다 했다. 동네 형이 들려주는 슬픈 동화 이야기에 심취해서 훌쩍 거리기도 하고, 티비 있는 친구 집에 가서 만화 영화 보느라 집에 가는 것도 잊어버리곤 하던 시절이 있었다. 어릴 때 그 골목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뜬금없는 생각과 함께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왔다.
그러던 차에 서점에 들렀다가 <어린이라는 세계>가 눈에 띄었다. 얼른 집어 들었더니 “어린이날이 지난 지 한 달도 넘었는데...” 라는 아내의 핀잔도 들었다. 국문학을 전공한 저자 김소영은 어린이 책 편집자로 일했고, 지금은 독서 교실을 운영하며 어린이들에게 독서 지도를 하고 있다. 저서로는 <어린이 책 읽는 법>, <말하기 독서법> 등이 있다.
<어린이라는 세계>는 독서 교실에서 만난 어린이들의 말, 그들의 마음, 그들의 꿈, 그들의 일상을 아주 따뜻한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어린이들의 현재를 지지하는 에세이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어린이에 대해 생각할수록 우리 세계가 넓어진다”고 말한다(8). 아마도 어린이들은 어른들의 과거이자 현재요 미래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이 세계>는 3부로 되어 있다. 1부 ‘곁에 있는 어린이’는 어린이를 어른만의 관점이나 관심사를 따라 보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자고 한다. 당연히 어린이들은 속성으로 자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시간과 현재를 인정해 주는 인내와 기다림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신발 끈에 얽힌 일화에서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이 “어른이 되면서 신발 끈 묶는 일도 차차 쉬워질거야” 하자 어린이가 대답했다. “그것도 맞는데, 지금도 묶을 수 있어요. 어른은 빨리 할 수 있고 어린이는 시간이 걸리는 것만 달라요.” (18)
저자는 인간으로서 품위를 지키고 싶어 하는 것은 어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들도 사회적 존재로서, 나름대로 품위를 지키고 싶어 한다면서 이를 위해 어린이들이 독서 교실을 출입할 때마다 외투를 벗고 입을 때 뒤에서 도와주는 “독서교실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했다. “내 경험으로 볼 때 정중한 대접을 받는 어린이는 점잖게 행동한다. 또 그런 어린이라면 더욱 정중한 대접을 받게 된다. 어린이가 이런 데 익숙해지면 점잖음과 정중함을 관계의 기본적인 태도와 양식으로 여길 것이다.”(41). 어린이를 단순히 어른에게 종속된 존재나 그저 어른이 되기 위한 예비적 존재가 아니라 바로 오늘 그들의 품위를 지켜주고 존중해 주는 선생님의 따듯한 눈길을 본다.
어린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면 몇 살이냐고 묻지 않고 몇 학년이냐고 묻는다. 저자는 “어린이의 학년만 중시하는 바람에 어린이가 발달시켜야 할 여러 덕목들 중에서 공부에 대한 것만 강조되는 것이 아닐까” 하면서 어린이를 학년 대신 나이로 생각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 어린이의 성장을 조금 더 넓은 의미에서 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79).
2부 “어린이와 나”는 독서교실을 통해 만난 어린이들의 모습을 통해 저자의 어릴 적 모습을 회상함으로 치유받기도 하고, 반대로 어릴 적 자신의 모습을 통해 오늘의 어린이들과 어떻게 함께 해야 하는지를 깨달은 지혜들이다.
저자는 독서 교실에서 만난 한 어머니가 아들 둘이 다투는 문제로 고민하다가 얻은 아이디어를 소개한다. 둘이 싸운 다음에 서로 안아 주게 하는 거예요. 그러면 아주 질겁을 하죠. 그냥 벽 보고 서 있겠다고도 하고요. 그래도 제가 엄청 진지하게 ‘빨리. 뭐 해? 빨리 안아’ 라고 하면 마지 못해 안아요. 있는 대로 인상을 쓰고 끌어안는데 그러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킥킥 웃고 끝나요.“(108) 우리들의 많은 분쟁도 이렇게 해결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저자는 “어린이에게는 어른들이 환경이고 세계”(146)이지만 또한 어린이도 어른에게 호의를 베풀 수 있는 존재라고 말한다. 어린이 집 “한 아기가 나를 빤히 보더니 내가 누군지 드디어 생각났다는 듯이 큰 소리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했다. 나도 비슷한 톤으로 ’네,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했다. 그것이 아기들의 어떤 부분을 자극한 모양이다...아기 군단이 갑자기 여기저기서 ’안녕하세요!‘를 외쳤다. 한 명씩 마주 보며 답하면서 겨우 빠져나가고 있는데, 마지막으로 나와 인사를 나눈 아기가 물었다. ’그런데 누구세요?‘ 누군지도 모르면서 인사를 해 주는 게 어린이인 것이다. 이런 호의가 또 있을까”(147)
3부 ‘세상 속의 어린이’는 이 세상에서 어린이가 외적으론 아무리 작아도 어른과 같은 한 명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어린이는 어른보다 작다. 그래서 어른들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큰 어른과 작은 어린이가 나란히 있다면 어른이 먼저 보일 것이다. 그런데 어린이가 어른의 반만 하다고 해서 어른의 반만큼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작아도 한 명은 한 명이다. 하지만 어떤 어른들은 그 사실을 깜빡하는 것 같다.”(197)
저자의 글을 읽으며, 뒤늦게 후회를 한다. 필자의 어린이 시절의 자녀들, 그리고 교회학교들을 통해 만났던 그 많은 어린이들(지금은 다 큰 청년들이 되어 있지만)이나 청소년들을 이런 저자의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함께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참 많은 아쉬움과 반성을 해 본다.
최근에 ‘대한 소아청소년과 의사회’가 “소아청소년과 탈출(No kids zone)을 위한 학술대회’를 열었다고 한다. 경영난 때문에 소아과 폐업을 준비하는 의사들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한다. 가정, 교회, 학교, 교육 시장, 경제 등등 어린이 인구가 줄어드는 바람에 우리 사회 다방면에서 이같은 상황들이 벌어지고 있다. 주변에서 어린이들을 보기가 진짜 쉽지 않다. 그러기에 더더욱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어린이들에 대하여 저자의 마음으로 살피고 다가가고 함께 해야 더 큰 후회를 하지 않을 것이다. 어린이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도 재촉하지 말고 “천천히 해”(252) 라고 말해주자.
김수영 목사(대영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