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양화 도슨트
<동양화, 청소년을 위한 동양 미술 수업>, 장인용, 다른
간송미술관은 매년 한 번씩 소장품을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전시회를 하였다. 그러다 2014년 가을 전시를 마지막으로 문을 닫고 DDP에서 전시행사를 하고 있다. 나는 2014년 마지막 전시일 중 마지막 날에 물경 3시간을 길에서 기다려 간신히 전시품을 감상하게 되었다. 그 당시는 동양화 즉 우리나라 그림에 대하여 거의 알지 못하였던 시절이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 밀려가듯 전시품을 감상(구경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 할 듯)하였다. 지금 기억으론 신윤복의 화첩이 생각이 난다. 왜냐면 중고등학교 미술책에 등장하기도 하며 그림 자체가 호기심을 자극하는 그림이기도 하여 기억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긴송미술관의 소장품이 DDP에서 전시를 시작할 때 신윤복의 미인도를 볼 수 있었으며, 나에겐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이정의 대나무 그림이었다(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의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최근에서야 안 이야기지만 오만원권 뒤면 밑그림에 있음). 지금까지 지내오면서 서양 그림에 대한 책도 보고 직접 보기도 한 경험이 많았지만 정작 동양화, 우리나라 그림에 대하여 잘 모르는 것을 자각하고 있던 차에 정인용의 동양화(청소년을 위한 동양 미술 수업)를 보게 되었다.

이정 풍죽도(風竹圖), https://www.yna.co.kr/, 세계화폐박물관
장인용은 성균관대학교 중문과를 졸업하고, 국립대만대학교 역사연구소에서 중국미술사를 공부했다. 한국국제교류재단에 다닐 때부터 출판 일을 시작했으며, 그곳에서 해외 박물관에 소장된 한국 문화재 도록을 여러 권 만들었다. <중국미술사>를 우리말로 옮겼고 앞으로도 미술 분야에 관한 글을 쓰고자 한다고 한다. 그동안 쓴 책으로 <고전 vs 고전>, <세상이 보이는 한자>, <동양화는 왜 문인화가 되었을까>, <세상을 바꾼 씨앗>, <주나라와 조선> 등이 있다.
목차는 다음과 같다.
동양화, 이것이 궁금하다: 이 책을 보면 알게 되는 것들
동양화 : 우리의 그림, 낯설고 신비로운 세계☆아는 만큼 보이는 동양화: 동양화의 다양한 형식
인물화 : 실용적인 그림, 계급과 지위를 드러내다☆아는 만큼 보이는 동양화: 양화의 선과 채색
화조화 : 감상하는 그림, 예술의 경지에 들어서다☆아는 만큼 보이는 동양화: 화조화의 소재들
산수화 : 압도하는 그림, 동양화의 정점에 오르다☆아는 만큼 보이는 동양화: 산수화의 시점과 표현법
문인화 : 영혼이 그린 그림, 점과 선은 정신이다☆아는 만큼 보이는 동양화: 문인화 속의 글과 시, 낙관
사군자 : 교양이 흐르는 그림, 품격이 먼저다☆아는 만큼 보이는 동양화: 먹을 쓰는 여러 가지 방법
풍속화 : 평범하되 비범한 그림, 파격의 눈으로 세상을 꿰뚫다☆아는 만큼 보이는 동양화: 동양화의 제목은 누가, 어떻게 붙일까
민화 : 만인이 즐긴 그림, 가장 한국적인 것이 흐른다☆아는 만큼 보이는 동양화: 그림의 소재가 상징하는 것들
저자 후기: 동양화 도슨트를 마치며
저자 정인용은 동양화를 '낮설고 신비로운 세계'라고 표현한다. 동양은 서양과 비교하여 매우 넓은 지역을 지칭하지만 동양화라고 할 때는 그 지역이 좁아지며, 중국, 한국, 일본에 속하는 그림을 지칭한다. 세 나라가 같은 도구와 같은 재료, 그리고 같은 스타일로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며, 인도나 페르시아, 아랍의 그림을 동양화라 지칭하지 않는다. 그러면 저자가 이야기하는 동양화가 어떤 것이고 왜 우리에게 낯설은 이유에 대하여 잠깐 언급하고 더 깊이 들어 가보자.
첫째, 동양화와 서양화는 그림을 그리는 도구, 즉 화구(畵具)에 따라 구분된다. 누가 그렸는지가 아니라, 붓과 먹으로 화선지에 그리면 동양화, 연필, 유화 아크릴, 파스텔 등으로 캔버스 같은 종이에 그리면 서양화이다. 그러나 도구와 재료만이 유일한 기준이 아니라 분위기도 많이 다르다. 즉 동양화와 서양화는 그림을 그리는 시각에서 차이가 난다.
둘째, 일반적으로 김정희의 <세한도, 歲寒圖>보다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그리고 이중섭의 <황소>가 더 친숙하다. 친숙하다고 하는 두 그림은 설명이 없더라도 매우 직관적으로 감상할 수 있다. 그러나 김정희의 <세한도>는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사람이 많다. 그림 속의 복잡한 이야기를 설명 들어야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이는 그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이는 근대화가 되면서 동양이 서양의 것을 급속히 받아 드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서양의 클래식을 우리의 국악보다 더 친숙하게 느끼는 것도 이런 현상 중에 하나다.
셋째, 동양화는 낯설다는 점은 둘째 치고 어렵다고 한다. 원래 낯선 것이 어렵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 동양화는 매우 관념적이다. 이는 최근에 관념적으로 바뀐(추상) 서양화와 달리 오래 전부터 문인(선비)화가 그림이 주류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동과서가 차이가 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동굴에서 벽화를 그리던 시대에는 그림의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가는 과정에서 그 차이가 생겼을 것이다. 즉 동서양화의 차이는 화구에서 오는 기법의 차이와 환경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로부터 기인된 것이다. 동양에서는 '선'을 중심으로 서양은 공간적 면에서 '인간의 위치'를 중요하게 여겼다. 한편 동양화와 서양화가 다르지만 같은 공통점이 존재한다. 모두 처음에는 사실성이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그러나 그림을 잘 그리려면 전문가 영역으로 들어가야 되고, 점차 실용성을 넘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로 바뀐 것도 동서양의 공통점이다. 그러면 동양화 영역으로 들어 가보자.
동양화의 처음은 적어도 중국이 아닐 수 있지만 적어도 문명적인 측면에서 전문적인 그림은 중국에서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문명은 빠르게 주변 국으로 퍼져 나가게 되고 우리도 중국의 문화를 빠르게 수입했다. 물론 일본도 우리나라를 통해 받아 들였다. 그런 한편 받아들이는 각 지역의 전통과 합해지면서 우리나라 일본의 차별적인 요소들이 남아 있게 되었다. 삼국시대의 고분의 벽화나 유물이 중국과 다른 요소가 보이는데, 이는 그런 연유에서다.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교류가 진행되었고 고려시대는 불교가 융성하여 불화가 성행하였고 송나라의 미술이 고려 미술 전반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지만 불행히도 구시대의 작품이 얼마 남지 않아 더 자세히 이야기 할 수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중국의 미술은 크게는 황실의 그림과 문인의 그림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 전해짐에 있어서 황실의 그림은 전해지기 어려웠고, 문인의 그림이 시대차를 두고 전해졌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 (왜냐면 그림의 운반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그림을 모범이라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며, 특히 조선 후기의 풍속화나 민화와 같은 독특한 장르는 중국 그림에선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영역이기도 하다. 일본도 마찬가지 이다. 그 예로 에도시대 때 유행한 목판화 우키요에는 유럽에 까지 전해져 빈센트 반 고호, 클로드 모네 같은 인상주의 화파에 영향을 주었다.
동양화는 형태에 따라 벽화 두루마리 족자 화첩 네 가지 형식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동양화가 서양화와 어떤 차이와 공통점이 있고, 동양화가 지역적으로 어떻게 진화되었는지 간략히 살펴보았다면, 이 책에서 인물화, 화조화, 산수화, 문인화, 사군자, 풍속화, 민화라는 구분을 통해 동양화를 고대부터 근대까지 중국의 그림과 비교하여 설명하고자 하였다. 이중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화조화, 산수화 그리고 민화에 대하여 소개하고 독후감을 끝내고자 한다.
화조화(花鳥畵)는 본래 왕과 귀족의 조상을 모시는 묘당(廟堂)에서 벽면을 장식하던 그림이다. 갑갑한 묘당 안에 머무는 조상의 영혼들에게 아름다운 자연의 그림을 보여 주려 한 것이다. 그러나 산 사람도 아름다움을 즐기고 싶어 한다. 이때 오로지 아름다움을 감상한다는 것은 순수 미술의 길로 들어섰다는 뜻이기도 하였다. 중국 송나라에서는 산수화를 비롯한 여러 장르가 활짝 꽃을 피우는데, 화조화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화조화는 격식과 문법을 갖춘 장르가 되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부드러운 시정(詩情, 시적인 정취)을 표현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래서 그림과 시가 직접 만나기 시작했고 그림이 시의 뜻을 표현하며, 그림을 보고 시를 짓게 된다. 더하여 그림 위에 직접 시를 적게 된다. 또한 정교한 붓질에서 정감 있는 먹의 표현으로 옮겨 가게 되었다. 화조화는 원나라 때 맥이 끊어졌다가, 명나라 때에 문인화가들이 새로이 참여하면서 부활하였다. 이때의 화조화는 그윽한 먹의 향기가 가득한 새로운 모습이었다. 수묵의 화조화는 자연에서 맞닥뜨리는 꽃, 포도, 석류, 물고기, 게, 새우와 온갖 집짐승을 생기 있게 묘사해 낸 것이다. 그리하여 화조화는 늘 새로움을 더하며 예술 애호가들이 좋아하는 장르가 된 것이다. 궁극적으론 화조화의 소재가 그림의 대상을 넘어서 화가의 마음을 투영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도 조선 초에 이미 화조화가 고유한 영역으로 존재하였다. 여러 화가들이 중국의 것을 뛰어넘는 고유한 화풍의 화조화를 만들어 낸 것이다. 화조도의 대표 작품으로 김홍도의 <황묘농접도 (黃猫弄蝶圖: 노란 고양이가 나비를 놀리다)>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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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화에서 산수화(山水畵)는 서양의 풍경화에 해당한다. 서양화에서 풍경화가 늦게 태어난 편이듯이 동양화에서도 산수화는 등장 시기가 늦다. 게다가 산수화는 병풍의 장식이라는 하찮은 영역에서 시작했다. 그러나 훗날 동양화를 대표하는 영역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산수화가 빛을 보게 된 이유는 세상이 혼란해져서 이다. 전쟁과 정치적 불안은 자연의 평화와 아름다움에 눈을 돌리게 하였다. 그리고 송나라 초기에 다른 장르의 그림 위에 우뚝 서게 된다. 산수화의 시대를 화려하게 연 송나라는 200년이 채 되지 못해 금나라에 쫓겨 남쪽으로 옮겨 간다. 그런데 이때부터 산수화의 분위기가 바뀌게 된다. 새로이 자리 잡은 지역은 따뜻한 강남으로 강과 호수가 많아 풍광이 다르고, 산도 험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원의 화풍도 달라져 산수화 구도에도 변화가 오며, 먹이 점점 흥건해지고 부드러운 느낌으로 바뀐다. 이렇게 송나라에서 이루어진 산수화의 기초는 중국과 일본, 우리나라에서 약 1,000년 동안 명맥을 이어 가게 된다. 문인화가들이 이후의 산수화를 주도하기는 했어도 그 기초는 모두 이 시기에 닦은 것이다. 화조도와 마찬가지로 그림을 그리는 작가의 마음을 풍경에 투영하게 되었다. 그리고 동양화에서는 실제 세상에서의 물리적인 크기나 관점이 중요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마음이 먼저였다. 동양화는 보이는 그대로를 그리려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을 마음에 담아 다시 조합하여 그리는 것이다. 동양화에서 여백은 이제 주제를 강조하는 도구가 되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고 근대 회화가 시작되기 전까지 동양 회화의 가장 중요한 장르가 되었다. 산수화에서는 풍경을 바라보는 눈의 위치에 따라 세 가지로 구분이 되는데, 아래의 세 시점을 통해 자연과 작가의 마음을 표현하였다. 이 세 가지 관점이 한 그림에 모두 나타나게 된다(서양화는 원근법을 기초로 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은 후기 인상파 이후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예가 입체파이다).
고원법(高遠法): 산아래에서 높은 산을 올려다보는 시점
심원법(深遠法): 산의 앞쪽에서 뒤쪽을 굽어보는 시점
평원법(平遠法): 가까운 곳에서 먼 산을 바라보는 시점
안견의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를 통해 조선의 산수화의 느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안견 몽유도원도 https://ko.wikipedia.org
(현재 몽유도원도는 일본의 덴리 대학 부속 덴리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어떤 경로로, 어떻게 반출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임진왜란당시 제4진으로 조선에 출병한 시마즈 요시히로가 경기도 고양현에 있는 절 대자암(大慈庵)에서 이 그림을 약탈해 일본의 손에 들어갔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추정만 할 뿐 확인된 사실은 아니다. 몽유도원도를 소장했던 일본소장가 중에서 도진구징(島津久徵)의 생애나 활동을 미루어 볼 때,1893년 이전에 이미 일본에 있었다는 사실이 추정되고 있으며, 1955년경부터 덴리 대학이 소장하고 있다. 학계에선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이나 이 작품의 가치 등을 미루어 보았을 때 사실상 약탈당한 문화재라고 추정하고는 있지만 아직 명확한 증명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정선(鄭敾, 1676-1759), 산수화, 국립중앙박물관
“최근 '물멍'이 인기였습니다. 물을 보며 멍때리다 보면 걱정이 사라져서인데요. 조상님도 이를 알고 계셨던 걸까요? 커다란 소나무 아래, 한 선비가 쏟아지는 폭포를 바라봅니다. 그림은 소리를 담지 않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폭포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솔향기가 그윽하고, 떨어지는 물방울에 소매가 젖는 듯합니다. 오늘 하루 어땠나요? 바쁘고 힘든 일상에서도 여유를 잃지 말아요. 인생도 산과 물을 벗 삼아 살아가는 한 폭의 산수화니까요.”
국립중앙박물관, “아침 한류가 똑 똑" 공모 수상작으로 박미연(서울 상계동)의 ‘인생도 한 폭의 산수화’ 따온 내용입니다.
민화(民畵)는 조선 말기에 유행한 장식용 그림으로 백성 민民에 그림 화畵, 즉 '백성의 그'림'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를 백성의 그림이라 하기에는 문제가 있다. 백성은 사대부가 아닌 일반 평민을 이르는 말인데, 평민들은 이 그림을 그리는 화가도 감상자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민화라는 표현을 한 사람이 일본의 조선 미술 애호가(야나기 무시요네)인데, 그가 역사적 배경을 잘 몰라서 그런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민화는 아마추어가 취미로 그린 그림이 아니다. 특별한 형태로 몇몇 주제가 되풀이되긴 했지만 대개 숙련된 화가들이 그렸다. 민화는 장식은 물론 소원을 빌거나 액운을 막는 역할까지 했다. 워낙 남아 있는 그림이 많아 그 가운데 초보 화가의 작품이 섞여 있을지언정 아마추어의 그림이라 할 수는 없다. 민화는 다른 장르의 그림과 달리 주제와 형태가 너무 특이하다. 또 오직 우리나라에서만 이런 유행이 있었기에 이를 둘러싼 여러 이야기가 오고 있다. 오늘날 민화로 분류되는 그림 가운데 대표적으로 <해와 달과 다섯 봉오리 알월오봉도日月五峯圖>를 꼽을 수 있다. 서울 궁궐에 가면 임금이 앉는 자리 뒤편에 병품처럼 서이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중국, 일본에 없는 우리만의 그림이므로 우리나라의 고유의 상징이 되는 그림이며 결코 백성의 그림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즉 민화는 어느 정도 여유가 있고 권력이 있는 사람이 장식을 위해, 또는 염원을 위해 그린 그림이다. 이런 그림을 그리기 위해 도화서의 화가들이 오랫동안 상징적으로 그려왔던 상징적인 그림을 바탕으로 그린 그림이다. 그래서 가장 한국적인 그림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대표적으로 작호도(鵲虎圖)를 꼽기도 한다.

작호도(鵲虎圖), https://brunch.co.kr/
이상과 같이 동양화/서양화 기원의 차이 그리고 그중 우리나라의 화조화, 산수화 그리고 민화의 각각 한 작품을 소개하였다. 이 책은 중국으로 부터의 동양화를 시작으로 우리나라의 동양화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설명하고 있다. 중국으로부터 우리나라의 그림의 발전 상황을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우리나라 그림 자체를 이해함에 있어서 지면이 너무 적었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의한 글로 초보자 즉 청소년도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어 일반인 보기에는 아주 좋은 책이라 권하고 싶다. 물론 동양화에 대한 관심이 있다면 말이다. 끝으로 김정희 세한도를 보고 동양화에 어떤 것을 주의 깊게 보아야 하는지 이 책 첫 페이지에 소개된 내용으로 독후감을 끝내고자 한다.

① 글 반, 그림 반! 이것은 미술 작품인가, 문학 작품인가?
② 글을 먼저 썼을까, 그림을 먼저 그렸을까? 그림 속에 글을 적는 이유가 뭘까?
③ 대충 그린 그림 같은데 어째서 국보일까?
④ 여백은 무엇을 강조할까?
⑤ 동양화에는 소나무가 왜 자주 나올까?
⑥ 언제부터 그림 속에 제목을 적었을까?
⑦ 낙관[도장]을 찍는 이유는 뭘까?
⑧ 낙관이 왜 여러 개 있을까?
김종일 대표 ((주) 비앤에이치웍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