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울회 사건의 진실
(<한울회 사건의 진실>, 한울모임 편집위원회 엮음, 대한기독교서회, 2022)
모태신앙 덕분에 관성적으로 교회를 드나들던 필자의 중고등학교 시절을 생각해 보면 본서에 등장하는 젊은이들의 신앙에 대한 자세와 성찰은 존경할 만하다. 그들은 치열하게 신앙의 세계를 탐구했고, 공동체 생활을 통해 탐구한 신앙을 삶으로 실천하고자 했다. 그 진지함이 지나쳐서였을까? 숨 막힐 듯한 당시 사회의 숨 쉴 틈을 공동체에서 찾고자 했던 그들의 행동은 ‘국가보안법’이라는 국가의 폭력 앞에서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그 경험은 그들에게 커다란 트라우마로 남았고 아직도 여전히 불쑥불쑥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
기독교 신앙공동체 한울모임은 믿음과 진리를 찾는 순수하고 진지한 젊은이들이 모여 인격적인 관계 속에 기독교 신앙을 펼쳐보려는 꿈을 가진 공동체였다. 그러나 1981년 3월, 전두환 정권은 이들을 불법 연행하고 법과 공권력을 악용하여 반국가 단체 ‘한울회’로 조작했다. <한울회 사건의 진실>은 한울모임의 구성원들이 사건 41년 만에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그때의 경험과 생각을 기록한 책이다. 그들의 심정은, ‘국가폭력에 희생된 한 신앙모임의 꿈’이라는 책의 부제를 통해 잘 나타나고 있다.
본서는 한울모임에 참석했던 17명의 전기적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개인적으로 한울모임과 관계를 맺게 된 계기와 참여 경험, 그리고 한울회 사건이 날조되는 과정에서 체험한 국가폭력의 실체, 고난의 시간을 지나온 다음에 이어진 생활을 기술하고 증언하고 있다. 순수한 신앙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상상도 하지 못했던 낙인 속에 수형생활을 했고,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이유로 감시받으며 학교생활, 직장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이들의 아픈 고백이 진솔하게 담겨 있다.
한울회 사건으로 2년 6개월을 복역한 바 있고 집필자로 참여한 박재순 박사는 책을 펴내는 이유를 세 가지로 밝히고 있다.
"첫째, 국가폭력에 짓밟힌 한울회 사건의 진실과 진상을 밝히는 것이다. 공권력의 불법적 인권유린 행위를 확인함으로써 사법적 정의를 실현하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국가폭력에 의해 재판을 받고 옥고를 치르고 평생 반국가 단체라는 낙인을 안고 사는 형제들이 민주시민으로서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다. (...) 둘째 목적은 한울회 사건 관련자들이 서로 용서하고 화해함으로써 맘 속 깊이 맺힌 상처와 응어리를 풀어보려는 것이다. (...) 한울모임이 깊은 상처와 아픔을 겪으며 시도하고 실험한 일들이 새로운 교회, 새로운 교육, 새로운 생활철학을 형성하는 데 밑거름이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 책이 우리의 치유와 화해의 계기가 될 뿐 아니라 새 문명, 새 종교, 새 교육, 새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 (7~13쪽)
40여 년 전 젊은이들의 순수한 신앙과 열정을 산산이 무너뜨린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기세가 등등하다. 어제오늘만 해도 노동자, 농민, 평화활동가, 정당인, 종교인이 하루아침에 이적 행위자로 분류되어 압수수색은 물론 구속 수감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보수 언론은 아직도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레드콤플렉스를 한껏 부풀리기에 여념이 없다. 똑같다.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국가보안법은 1948년 제정 이래 유신독재 시절은 물론 그 이후 이어진 시대 내내 정권의 비민주적 통치를 정당화하는 기제로 작용했다. 그야말로 반정부 활동을 통제하는 가장 강력한 법률적 도구였다. 민주주의를 외치던 수많은 이들이 하루아침에 뿔 달린 ‘빨갱이’로 둔갑해 어마어마한 형량을 구형받아야 했다. 그런데 요사이 그 법이 슬금슬금 다시 작동하고 있다. 도대체 이 정권은 무엇을 가리고 숨기려고 또다시 국가보안법을 휘두르는가! 따라서 우리가 관심과 감시를 놓치는 순간 제2, 제3의 한울회 사건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진광수 목사 (바나바평화선교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