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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122]
 
 
 
     
 
 
 
작성일 : 23-05-24 05:51
   
기억과 계승
 글쓴이 : dangdang
조회 : 3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9526 [105]


 

기억과 계승

 

(<고양이를 버리다-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무라카미 하루키, 비채, 2020)

 

 한때 한국에는 무라카미 하루키 열풍이 불었었다. <상실의 시대>로 알려진 <노르웨이의 숲>부터 시작해서 <해변의 카프카>, <태엽 감는 새 연대기>, <1Q84>, <기사단장 죽이기> 등 그의 소설은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하지만 하루키의 소설은 꽤나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소설 속 여성 인물들을 다루는 방식을 비판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의 소설에 특별한 내용이나 메시지가 없다고 비판한다. 또 어떤 사람은 하루키가 섹스 없이는 소설을 못 쓴다고 비판한다. 

 

 만약 당신도 이러한 의견에 동의하거나 그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 중 한 명이라면, 소설 대신 에세이를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하루키의 에세이는 소설과는 다르게 다양한 이야기들을 재치있게 풀어내기 때문에 호불호가 덜 갈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에세이가 좋을까?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와 같은 에세이도 좋지만, 나는 <고양이를 버리다-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라는 책을 추천하고 싶다. 

 

 <고양이를 버리다>는 다른 에세이들과 유독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데, 아마 하루키가 돌아가신 아버지를 추억하며 쓴 책이기 때문일 것이다. 가족에 대해서 쓴다는 것, 특히 아버지에 대해 쓴다는 것은 가부장제 사회 속에서 자라온 자녀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키는 아버지에 대해 썼고, 아버지를 추억하면서 자신이 느꼈던 것을 썼다. 과연 하루키는 아버지로부터 무엇을 보았을까?

 

 어린 시절 하루키는 아버지가 매일 아침을 먹기 전에 불단 앞에서 오래도록 눈을 감고 경을 외우는 장면을 보고 자랐다. 그 일은 아버지가 ‘업무’라고 부를 정도로 중요한 습관이었다. 어린 하루키는 아버지가 왜 매일 아침 불단 앞에서 경을 외우는지 궁금해졌고, 어느 날 아버지에게 ‘누구를 위해서 독경을 하세요?’라고 물어봤다. 그러자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전쟁에서 죽은 동료 병사와 당시에는 적이었던 중국인들을 위해서” 

 

 하루키의 아버지는 어떠한 사람이었길래 전쟁에서 죽은 동료 병사와 당시에는 적이었던 중국인들을 위해 경을 외우게 된 걸까? 

 

 하루키의 아버지인 무라카미 지아키는 1917년 12월 1일 교토에 있는 ‘안요지’라는 정토종 절집의 차남으로 태어난다. 그는 교토의 산중에 있는 학교에서 승려가 되는 공부를 하다가 스무 살이 되던 1938년 8월, 학업 도중 징병 통보를 받아 군에 입대한다. 군대에서는 보급 작업을 하며 군마를 전문적으로 보살피는 치중병 보직을 받았고, 보병 제20연대와 함께 중국 전선에 보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지아키는 자신이 속한 부대가 포로로 잡은 중국 병사가 군도로 처형당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저항하지 않는 포로를 살해하는 것은 국제법에 위반되는 비인도적 행위였으나, 이 시기 일본군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당시 일본 장교들은 “병사를 전장에 적응케 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살인이다... 이에는 포로를 사용하면 된다... 이에는 총살보다 척살이 효과적이다.”(50)라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지아키는 그렇게 중국 포로가 처형당하는 장면을 보았고, 그 장면은 오래도록 그의 마음 속에 남았다. 

 

 이후 1939년 8월 20일, 보병 제20연대가 중국에서 일본으로 철수하면서 지아키도 일본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1941년 9월 말에 다시 임시 소집 명령을 받아 10월 3일부터 치중병 제53연대로 편입된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소집 통지를 받은 지 불과 두 달 후인 11월 30일에 소집 해제 대상이 되어 민간으로 돌아갔다. 일본의 진주만 기습 공격 여드레 전이었다. 

 

 지아키는 소집 해제되어 부대를 떠났지만, 이후 태평양 전쟁이 발발했다. 태평양 전쟁 전에는 일만팔천 명에 이르던 부대원들이 전쟁 후에는 오백팔십 명만 생존하였다. 전사율 96퍼센트가 넘는 괴멸에 이른 것이다. 비록 지아키는 살아남았지만, 전쟁은 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그래서 그는 전쟁 이후에도 끊임없이 경을 외우며 그들을 기억하였던 것이다.

 

 하루키는 아버지의 과거를 떠올리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쨌거나 아버지의 그 회상은, 군도로 인간을 내려치는 잔인한 광경은, 말할 필요도 없이 내 어린 마음에 강렬하게 각인되었다...아버지 마음을 오래 짓누르고 있던 것을 -현대 용어로 하면 트라우마를- 아들인 내가 부분적으로 계승한 셈이 되리라.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이어지는 것이고, 또 역사라는 것도 그렇다. 본질은 ‘계승’이라는 행위 또는 의식 속에 있다. 그 내용이 아무리 불쾌하고 외면하고 싶은 것이라 해도, 사람은 그것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역사의 의미가 어디에 있겠는가?”(51)

 

 그렇다면 하루키는 불쾌하고 외면하고 싶은 역사를 어떻게 계승했을까? 그는 <기사단장 죽이기>라는 소설을 통해 일본군이 자행했던 난징 대학살을 비판했다. 또한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무리 우리에 맞게 역사를 다시 써도 결국 다치는 것은 우리일 뿐이다. 벗어날 방법, 숨길 방법, 그런 건 없다. 만약 방법이 있다면 ‘상대조차 인정할 만큼의 사죄’ 그것 하나뿐이다.” 

 

 이러한 하루키의 글을 보니 평론가 황현산의 글 <윤리는 기억이다>의 한 대목이 떠오른다. “기억만이 현재의 폭을 두껍게 만들어준다. 어떤 사람에게 현재는 눈앞의 보자기만한 시간이겠지만, 또다른 사람에게는 연쇄살인의 그 참혹함이, 유신시대의 압제가, 한국동란의 비극이, 식민지 시대의 몸부림이, 제 양심과 희망 때문에 고통당했던 모든 사람의 이력이, 모두 현재에 속한다. 미학적이건 사회적이건 일체의 감수성과 통찰력은 한 인간이 지닌 현재의 폭이 얼마나 넓은가에 의해 가름된다... 당신이 잊고 있는 것은 무엇이며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하루키와 황현산은 말한다. 역사란 단지 과거의 일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의 일이라고. 따라서 역사를 끊임없이 기억하고 계승해야 한다고 말이다.

 

 근래 들어 가해자를 두둔하면서 ‘과거사가 정리되지 않으면 한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요하는 이야기가 자주 들린다. 미래를 위한 협력을 잘 해내가면 과거에 대한 갈등과 반목은 많이 치유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하지만 정작 피해자들에게는 최소한의 추모나 사죄조차 하지 않는다. 피해자들을 보면 자신들의 만행이 떠오르기에 아예 외면하여 잊으려는 것이리라.

 

 그러나 우리에게는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일들이, 여전히 기억되어야 할 일들이 남아있다. 그 일들을 기억하지 않는다는 것은 비윤리적인 것이다. 망각은 미래를 향한 발걸음이 아니다, 오히려 현재를 왜곡하여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게 가로막는 족쇄이다. 그러므로 누군가 그 일들을 지우고 왜곡하려 해도 우리는 끊임없이 그 일을 기억하고 계승해 나가야 할 것이다.

 

김윤형(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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