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주 정상적인 아픈 사람들
(<아주 정상적인 아픈 사람들>, 폴 김, 김인종 역, 마름모, 2022)
‘건강의 시대’다. ‘건강하라’는 덕담은 항상 최고의 축복이고, 어디가 아프다면 지나칠 정도로 세심한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정신적 질병에 관한 한 쉽게 노출하지도, 인정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정신적 질병은 ‘미쳤다’거나 ‘귀신 들렸다’는 소리를 듣기 쉬워서다. 물론 요즘 와서는 인식의 개선이 많이 일어났지만, 여전히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책은 우울증과 조현병에 들려 가족들에게 칼부림까지 하며 10년 동안 온 가족이 함께 고통을 당한 여동생의 일을 겪으며 이후 목사와 상담가로 살아온 저자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저자 가족도 그동안 타일러보고, 싸워보고, 귀신을 물리친다고 기도도 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마침내 찾은 정신병원에서 “왜 이제야 오셨습니까?”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그 이후 25년 동안 저자가 정신 질환에 걸린 사람과 그 가족을 돕는 일을 하면서 가장 많이 하는 말도 역시 ‘더 방치하지 말고 서둘러 치료 받으라.’는 것이다. 일단 병을 인정하면 치료의 여정에 들어서게 되지만 한사코 본인이, 또는 가족의 부인함으로 자살과 살인 등 죽음에 이르는 경우도 적지 않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저자가 경험한 수많은 실제 사례들을 기록하고, 그 의미와 교훈을 자문자답한다. 정호는 골프 모임에 나가 라운딩을 한 후 동료들과 자식 얘기를 나눴다. 그의 고민은 둘째 아들이 별 이유도 없이 우울증에 빠져 1년째 외출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행히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딸을 둔 동료가 정신과 치료를 권했다. 집에 돌아온 정호는 아내에게 아들의 정신상담을 받게 하자 했다. 아내는 펄펄 뛰며 대학도 못 가고, 취직도 안 돼 조금 우울한 아이를 정신병자 취급한다며 한사코 반대했다. 여러 번 권했지만, 막무가내인 아내를 설득하지 못하고 차일피일 시간만 보내던 어느 날 아내는 차고 대들보에 목을 맨 아들을 발견하고 말았다(78~82쪽).
이 책을 읽으며 비로소 내가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가장이던 청소원이 교통사고를 당해 집에 들어앉으면서 온 가족이 함께 고통받았다. 생업을 위해 남편 대신 아내가 청소 일을 나갔지만, 남편은 아내의 일거수일투족을 의심했다. 그는 몸만 아니라 마음과 영혼까지 깊은 병에 들렸다. 큰아들도 군대에서 사고로 의병제대 후 정신이 온전치 못해 자주 정신병원을 들락날락했다. 반지하 집에 들어가면 한낮에도 불을 다 끄고 가족들은 서로 얼굴을 보지 않으려고 한 사람이 나왔다가 들어가면 다른 사람이 나왔다. 또, 20여 년 전 한 모임 회원이던 어느 자매를 몇 해 전 다시 만났다. 교회와 목사가 자신을 감시하고 음모를 꾸며 너무 고통스럽단다. 교회개혁 활동을 했던 나는 그녀의 말이 그것과는 상관없는 정신 질병임을 알 수 있었다. 병원을 권했지만, 본인은 한사코 부인하며 영적인 시험이라고 강변했다.
그러나 이조차 표면적일 수 있다. 서른두 살의 마이크는 습관적으로 자살을 시도한다. 그런데 저자가 마이크의 가족을 만나보니 사실 마이크의 정신병은 어머니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유독 장남 마이크에 대한 과도한 집착으로 유명 의대를 보냈지만, 그때부터 아들이 자살시도를 반복한다. 어머니는 전형적인 ‘자기애성 인격장애자’(NPD)였다. 저자는 아들보다 먼저 엄마에게 치료를 권했지만, 받아들일 그녀가 아니었다. 저자는 마이크의 어머니처럼 누가 봐도 ‘멀쩡한’ 정신질환자들이 오히려 가족을 괴롭혀, 가족은 정신병원에 입원시켜 놓고 정작 자신은 정상인처럼 살면서 또 다른 사람들을 뇌질환에 몰아넣는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은 ‘아주 정상적인 아픈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저 정신 질환 걸린 사람들과 치료에 대한 임상 정보를 주고 끝나는 책이 아니다. 세상에는 이유를 알 수 없이 몸도, 마음도, 또 영적으로도 아픈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그럴 때 우리는 나면서 소경인 사람을 보며 ‘이 사람이 이렇게 된 게 누구 죄냐?’ 따져 묻던 제자들(요 9:2)처럼 경계선상의 사람들을 판단하기보다 돌볼 것을 요구받는다. 특히 그는 인생에 행복만 있어야 할 것처럼, 또는 그게 가능한 것처럼 살다가 헤어나올 수 없는 더 큰 고통과 죄악에 빠지지 않도록 세계관을 바꿀 것을 권한다. 인생이 내 맘대로 되지 않을지라도 충분히 복될 수 있음을 인정해야 더 나은 삶도 가능하다(161~167쪽).
이 책을 읽으며 육체적인 질병에 대한 ‘치료’와 정신적 ‘상담’, 믿음을 통한 ‘목회’가 서로 연결된다면 얼마나 좋은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목사로서 아픈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도 좋지만 하나님의 일반적 치료 앞에 데려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는다. 또, 그는 ‘병(자)’과 ‘죄(인)’ ‘악(인)’에 대한 연관성도 이야기한다(239쪽). 오래전에 읽었던 정신과 의사 스콧 팩이 쓴 ‘거짓의 사람들’이라는 책도 다시 떠올랐다. 이 책을 누구에게나 꼭 권하되, 특히 목회자에게 권한다. 누가 알겠는가? 내가 뜻밖에 한 사람과 그 가정을 다시 살리는 산파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구교형 목사(성서한국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