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징, 성경을 보는 눈을 뜨다
<상징>, 송병구 지음, kmc, 2021
“하나님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이 부족한 것이 아니다. 그분을 표현할 수 있는 말 자체가 없다.” 어느 신학자의 말이다. 성경이 그토록 많은 상징을 사용하고 있는 이유다.
“성경에서 무심코 보았던 상징에는 복음의 풍성함이 녹아 있다.” 세계 곳곳에서 십자가를 수집해 십자가 목사로도 알려진 저자 송병구 목사는 그의 책 ‘상징’에서 성경 표제어 5천개 중 가장 일상적으로 접하는 32개를 뽑아 그 의미를 풀었다. 사랑의 앙가주망 ‘손’, 지극히 낮은 자리 ‘구유’, 하나님의 빛깔 ‘무지개’처럼 말이다. 사실 ‘십자가’는 기독교 상징의 정수 아니던가? 평생 십자가를 수집하고 연구하던 그가 ‘상징’이라는 주제에 다다른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인생 경로 아니었겠나 싶다.
“성경에서 상징의 사용방식은 시대와 민족, 언어와 문화를 초월해 여전히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이야기 방식이다.” 저자는 상징이라는 언어를 통해 시대와 문화를 넘어서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네고 계시는 하나님을 소개한다. 다채로운 그림과 조각, 스테인드글라스, 건축물은 그 매개체가 된다. 천상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해 땅의 언어로 말씀하시는 분이, 포기하지 않고 쉼없이 우리에게 사랑의 말을 걸어오시는 분이 우리의 하늘 아버지이신 것이다. 하기사 우리가 참 스승으로 따르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의 하늘 아버지를 제자들에게 소개하기 위해 얼마나 다채로운 상징들을 사용하셨던가? 들에 핀 꽃, 공중의 새, 물고기 잡는 그물, 무화과 열매, 그 모든 것이 그분과 우리의 아버지, 그분과 우리의 나라를 설명하기 위해 주님이 선택한 상징들 아닌가? 참으로 상징 언어의 대가가 아니셨던가?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 “일용할 빵을 주시옵고” ‘빵’을 통해 우리는 ‘일용할 사랑’, ‘일용할 평화’를 구하고 있는가 물음으로 시작한 책 <상징>은 가장 대표적이고 고귀한 상징을 우리에게 드러내줌으로 그 끝을 맺는다. 바로 우리 자신이다.
“무명의 풀에 이름을 불러주어 꽃으로 거듭나듯, 추상적 진리조차 상징화함으로써 생명으로 꽃피운다. 가장 소중한 작업은 나를 상징화하는 일이다. 상징 중의 하나가 아닌 대표상징으로 살아가는 일은 그리스도인다운 내 이름값을 얻는 일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우리를 향해 “너희는 그리스도께서 쓰신 편지”라 했는가? 시대와 문화를 뛰어넘어 표현할 수 없는 하늘 아버지를 지금 이곳에서 표현해 낼 수 있는 살아있는 언어로서 말이다.
<상징>은 단숨에 읽어버린 후 책장에 꽂아 놓을 책이 아닌 듯 싶다. 나의 눈길이 자주 닿는 그 한 편에 언제라도 펼쳐, “아, 오늘을 살고 있는 내가 그분의 상징이로구나” 각인하게 도와주는 영혼의 길잡이가 되기에 충분하다. 가장 위대한 분이 가장 미약한 아기로 오신 아름다운 계절 자체가 우리 존재와 삶의 본질을 상징해주고 있으며 우리는 바로 그 시간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에밀리 디킨스의 시가 떠올랐다. 연설의 지식은 많으나 침묵의 지식은 없고 말의 지식은 많으나 참 진리는 설명하지 못하는 이 시대에!
모든 진리를 말하되 빗대어 말하라.
전기회로처럼 불 밝힌 성공은
너무 밝아 우리의 연약함으로는
진리의 눈부신 광채를 기뻐할 수 없으니
번개에 놀란 아이의 마음을
자상한 설명으로 가라앉히듯
진리는 서서히 광채를 발해야 하리.
안 그러면
모든 이의 눈이 멀 것이니.
백광흠 목사 (한무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