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구의 선물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나탈리 골드버그, 권진욱 옮김, 한문화)
책을 선물 받는 것이 좋다. 책 읽는 것 자체가 좋기도 하지만 선물한 사람과 나와의 관계를 가늠해볼 수 있는 또 다른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선물 받은 책을 살피며 그 사람이 얼마나 나를 생각하고, 직관하고, 책을 골랐는지를 짐작하는 일은 항상 흥미롭다. 물론 선물 받은 책을 훑어본 뒤 늘상 기분이 좋은 것은 아니다. "어떻게 나에게 이런 책을 보라고 할 수 있지?", "나를 이 정도로 생각하는 건가?" 등 묘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반대로 내게 꼭 맞는 책을 선물 받았을 때의 기분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선물한 사람과 내가 깊은 부분에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은 것만으로도 책이 전달하는 감동의 몇 배를 이미 경험하게 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친구에게 선물 받은,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는 그런 책이다. 책 자체로는 호기심이 일지 않았다. 책 표지에 "전세계 독자들을 사로잡은 혁명적인 글쓰기 방법론"이라고 쓰여 있지만, 그 '방법론'이라는 것 자체가 내게 별로 흥미로운 부분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점차 지금의 나에게 이 책이 필요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필요한 책’. 그래, 바로 이 부분이었다. 나 자신도 정확히 알지 못했던 나의 필요를 채워주려는 친구의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자세를 잡고 책을 손에 들었다.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궁금하지 않았지만, ‘글을 쓴다는 행위’가 나에게 무엇일지는 궁금했으므로. 그리고 이 책을 먼저 읽고 나에게 선물해준 친구처럼 나도 그렇게 글을 쓰고 싶었으니까.
머리말에 나오는 저자와 카타기리 선사의 대화는 책을 선물해준 친구의 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는 구절이었다.
"뭣 하러 굳이 명상 모임에 찾아오는 겁니까? 당신은 왜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단련하지 않죠? 만약 당신이 글쓰기 안으로 깊이 몰입할 수 있다면, 글쓰기가 당신을 필요한 모든 곳으로 데려다 줄 것입니다."(12)
저자는 세상의 보이지 않는 부분에 관심하며 그 속에 자리한 깊은 고뇌 가운데 동참하고자 하는 나에게 글쓰기를 권하고 있었다. 저자에게 글쓰기는 비단 글을 쓰는 행위 뿐 아니라 삶의 태도 전반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많은 부분이 어떤 일을 시도할 때 대면하기 보다는 그 주위를 빙빙 돌기만 했던 내게, 무력감의 바다에서 허우적대기 좋아하는 나에게 꼭 필요한 조언으로 다가왔다.
'글쓰기 속에 몰입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세상으로부터 차단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언제나 세상의 실체를 보여 주기 위한 몰입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 균형을 잡는 데는 상당한 기술이 필요하다. (125)'
'진실은 아주 간단하다. 글쓰기는 글쓰기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바깥에서는 어떤 배움의 길도 없다.(64)'
'바로 이 강박증의 변두리에서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들을 창조해 낼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하라. 그리고 이번에는 당신을 괴롭히던 강박증에 일부러 에너지를 쏟아 부어 보라. (중략) 글쓰기에 대한 강박증은 직접 글을 써서 풀어내야 한다. 쓸데없이 술에 취하는 엉뚱한 방식으로 풀려고 하지 말라. (79, 81)'
'사물의 이름을 알고 있을 때 우리는 근원에 훨씬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우리 마음속 흐릿한 부분이 선명해지면서 이 지상의 삶에 더 튼튼한 줄을 이어 주기 때문이다. (121)'
'비록 우리 인생이 언제나 선명한 것은 아닐지라도, 명확하게 인생을 표현해 보는 것이 좋다. (146)'
내게 있어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는 단순한 글쓰기 방법론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애틋함과 삶의 진중함이 담겨있는 철학서로 다가왔다. 쉽지 않는 내용이었지만 책을 읽는 동안 마음이 따뜻했다. 아마도 이 책을 읽는 시간은 세상을 애틋하게 살아가자며 따뜻한 손을 내민 친구에게, 나 역시 미소로 화답하며 두 손을 마주 잡아주었던 시간이 아니었을까.
진중하면서도 너무 무겁지 않아야 하며, 선명하지 않지만 내 방식으로 명확하게 표현해야 하는 우리의 글과 인생이 더욱 기대된다.
정유은 목사 (꿈이있는교회, L국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