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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3-05-10 04:27
   
무의미해 보이는, 보잘 없는 인생을 향한 특별한 찬사
 글쓴이 : dangdang
조회 : 5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9458 [126]


 

무의미해 보이는, 보잘 것 없는 인생을 향한 특별한 찬사

 

(<무의미의 축제>, 밀란 쿤데라, 민음사)

 

 “만약 내가 갑자기 바퀴벌레로 변하면 어떻게 할거야?” 얼마 전에 유행했던 밈 중 하나다. 단번에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이 떠올랐다. 하루아침에 갑자기 벌레가 된 그레고르 잠자를 어째서 단번에 떠올리지 못하고 상대방의 반응을 살필까, 의아해 하다가 불현듯, 우리 모두 ‘그레고르 잠자’가 된 듯한 불안감에 잠식된 시대가 아닌가하는 섬뜩함에 휩싸였다. 내가 바퀴벌레가 되더라도 애정과 돌봄과 소중히 여김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들이 만들어 낸 밈인 것이다. 얼마나 스스로가 바퀴벌레만큼 보잘 것 없이 느껴졌으면, 우리 청년, 청소년들이 얼마나 무의미한 삶이라고 좌절하고 있으면 저런 질문을 할까 싶다.

 

 다른 한 편으로 생각해 보자면, 반드시 어린이들이, 청소년과 청년들이 대단한 의미가 있는 인생을 살아야 하는 건 아니다. 대단한 포부와 사명의식이 있거나 명예와 돈을 가지거나 세상을 위한 의미 있는 일을 해야만 사랑스러운 것은 아니다. 5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스승의 날 등, 가족과 내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릴 때 그들의 위대함과 대단히 유의미한 업적을 치하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저 무의미해 보이는 변함없고 보잘 것 없는 인생을 사는 나의 주변을 가득 채워주는 갸륵한 인생을 향해 찬사를 보내라는 뜻이다. 

 

 우리는 이제 이 세상을 뒤엎을 수도 없고 개조할 수도 없고 한심하게 굴러가는 걸 막을 도리도 없다는 걸 오래전에 깨달았어. 저항할 수 있는 길은 딱 하나, 세상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 것뿐이지. (<무의미의 축제>96p)

 

  <무의미의 축제> 속의 등장인물들은 비범하지 않고 극적인 사건을 일으키지도 않는다. 주변의 관심을 받기 위해 거짓으로 중병에 걸렸다고 말해버리는 인물이나 연기에 대한 열망으로 거짓 파키스탄인 흉내를 내며 케이터링 서비스 직원으로 일하는 애정결핍자들이다. 그러나 비참하게도 세상과 주변인들은 그들의 거짓말에 크게 관심이 없다. 그들에게만 그런 것도 아니다. 남편을 잃은 미망인에게도 데이트 상대에게도 아주 잠깐의 관심뿐이다. 등장인물들의 행위, 거짓말, 일상은 그저 아무런 의미가 없는 듯이 무심히 흘러가버린다.

 

 이 단조롭지만 기이한 등장인물들의 일상들, 생각들이 이상할만치 재미있게 그려지는 것은 밀란 쿤데라라는 작가의 소설 기법과 문장력에서 오는 것들이다. 읽고 나면 강렬하게 남는 사건이나 줄거리는 별로 없다. 그럼에도 가만히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거나 길을 걷다가 무심코 소설 속의 사건과 문장들이 문득 생각나곤 한다. 세상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 보잘 것 없는 자들의 유일한 저항을 생각하면서 스탈린에 관한 농담이나 러시아의 도시, 칼라닌그라드의 지명에 얽힌 감성적인 주장들, 배꼽과 어머니, 인류에 대한 엉뚱한 생각들이다. 

 

 이 여자는 의지 그 자체다.(49p) 삶이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지.(57p) 왜냐면, 내 의지가 지쳤거든. 가여운 내 의지. 바야흐로 온 세상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그 꿈에 내 의지를 모두 쏟아 부었는데, 그걸 위해 나는 내 모든 힘을 다 바쳤어. 나 자신까지도. (118p) 

 

 소설의 맥울 잇는 두 가지의 주요 이야기 중 하나인 스탈린의 일화는 역사적인 인물임에도 그 의지와 삶이 지나치게 의미의 세계에 집중되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스탈린의 농담을 아무도 알아듣지 못했기 때문에 시작된 비극과 스탈린의 유일한 농담이었던 칼라닌에 대한 애정을 특히 강조하는 등장인물들의 토론은 <농담>의 저자인 밀란 쿤데라의 관점을 드러내주는 대목이다. 

 

 또 하나의 맥은 '배꼽‘이다. 모체에서 이어진 탯줄의 흔적인 배꼽, 천사는 아마도 없을 배꼽, 최초의 여자인 하와에게는 아마도 없을 배꼽, 출산을 통해 인류를 주렁 주렁 매달고 연결시키는 여자의 배꼽에 대한 끊임없는 대화는 아주 사소하고 무의미해 보이는 배꼽이라는 신체 부위를 통해 안상깊은 주제를 구현한다. 여자의 배꼽에서 출발해 경험하지 못한 모성과 어머니에 대한 허구적 애정을 탐구하는 사고과정은 무심한 듯, 별 게 아닌 듯 띄엄띄엄 서술되지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너는 무슨 권리에 근거해서 존재하는 게 아니야.(132p)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권리들이란 그저 아무 쓸데없는 것들에만 관련되어 있어. 그걸 얻겠다고 발버둥치거나 거창한 인권선언문 같은 걸 쓸 이유가 전혀 없거든.(133p) 

 

 자신을 버리고 간 어머니와의 강렬한 상실감을 이겨내기 위해 어머니를 살인자로, 냉혈한으로 상상해 가던 등장인물은 배꼽에 안착한다. 모성이나 대단한 사명, 강렬한 기대감, 아이라는, 성인이라는 권리들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배꼽에 의해 존재한다. 모든 인류에게 공통으로 주어진 배꼽을 드러낼 권리에 의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예전에 사랑은 개인적인 것, 모방할 수 없는 것의 축제였고, 유일한 것, 그 어떤 반복도 허용하지 않는 것의 영예였어. 그런데 배꼽은 단지 반복을 거부하지 않는 데서 그치지 않고, 반복을 불러. 이제 우리는 우리의 천년 안에서, 배꼽의 징후 아래 살아갈 거야.(138p)

 

 한 무리의 어린아이가 합창단처럼 배열하고 권리를 주장하는 직업인들이 모인 공원에서, 어린아이인 마부가 마차를 몰고 연인과 기타 등등의 별 의미 없이 치부되는 것들이 모인 곳에서 등장인물은 말한다. “하찮고 의미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심지어 아무도 그걸 보려 하지 않는 곳에도, 그러니까 공포 속에도, 참혹한 전투 속에도, 최악의 불행 속에도 말이에요. 그렇게 극적인 상황에서 그걸 인정하려면, 그리고 그걸 무의미라는 이름 그대로 부르려면 대체로 용기가 필요하죠. 하지만 단지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사랑해야 해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147p)

 

 이 세상은 ‘무의미의 축제’다. 우리 중 대다수는 바퀴벌레가 된 듯한 기분을 가끔 느끼면서 누군가게에 좀 더 특별한 존재가 되기 위해, 좀 더 유의미한 삶을 살기위해 노력하고 투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흙에서 빚어져 흙으로 돌아가는, 먼지와도 같은 존재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배꼽이라는 작은 원형 홈으로 이어지는 종이라는 점도 변함없다. 작가는 우리의 이 무의미함이, 아무런 권리와 대단한 목적없이 천진하게 농담처럼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유도 모른 채 꺄르르 웃는  아이들...... 아름답지 않나요?(147p)” 하잘 것 없는 농담으로 배꼽이 찢어져라 웃는 사람들, 아름답지 않나요?

 

박창수 목사 (인천 성은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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