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질문하는 그리스도인
(<질문하는 믿음>, 김석년, 샘솟는기쁨, 2017)
<질문하는 믿음>은 김석년 목사의 ‘질문하는’ 시리즈 세 권 중 첫 번째 책이다. 믿음, 교회, 행복 앞에는 공통적으로 ‘질문하는’이란 수식어가 붙었다. 저자는 질문이 없는 시대에 노골적으로 ‘질문하는’ 레파토리를 앞세워 말을 건네고 있었다. 사실 우리 사회에는 숱한 논쟁거리와 물음이 있지만, 유독 교회를 향해서 입을 꾹 다물고 있는 현실에서 그냥 침묵하고 있기는 어려웠던 모양이다.
교회 안팎에서 우리 자신을 향한 질문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잘 정리된 모범답안처럼 은행적금식, 문제해답식 질문과 대답은 있을지언정, 한국교회의 신앙풍토는 물음을 금기시 해 왔다. 오히려 당돌한 질문은 불신앙적 태도처럼 백안시당하게 마련이다. 한국교회는 유대인들의 교육방식인 ‘하브루타’를 모범처럼 인용하면서도, 우리에게 적용하는 데에는 아예 봉쇄로 일관하였다.
우리 시대의 문제는, 우리 교육의 문제는, 우리 교회의 문제는 질문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묻지 않는다. 만약 ‘산 위의 교회’(마 5:14)라면 뭇사람들에게 관심의 대상일 것이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더 이상 교회를 향해 묻지 않는다. 물음이 없는 까닭은 그 대답이 너무나 뻔할 줄 알기 때문이다. 질문이 없는 교회, 물을 것이 없는 교회에는 희망이 없다.
저자가 시리즈의 이름을 ‘질문하는’으로 정한 까닭이 있다. 첫 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영국의 대설교가 마틴 로이드 존스는 당시 교회를 향해 이렇게 질타했습니다. ‘지금껏 기독교는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다.’ 여기서 시도되지 않는 기독교란 바로 그 예수 신앙, 본질적인 기독교를 말합니다. 불행하게도 오랫동안 우리는 변질된 기독교, 사이비 기독교, 미신적 기독교를 보아왔고 믿어왔으며 흉내냈습니다.”
도발적인 질문을 던져놓고 그 내용에 어울리는 대답을 담아냈는지 여부는 독자들이 판단할 몫이지만, 적어도 질문이 매워서 의미가 있다. 그동안 종교를 제 입맛에 맞게 쇼핑해온 사람들을 향해 저자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불편한 ‘잔소리’를 계속하고 있었다. 아직 묻지도 않았는데, 거듭 대답할 거리를 요구하였다. 실은 저자는 질문 없는 사람들에게 묻고, 자기가 생각하는 답을 전하려고 한다.
<질문하는 믿음>의 경우를 보면 ‘원리-적용’이란 틀을 갖추고 그리스도교 신앙 매뉴얼을 구성한다. ‘주님을 닮아가는 기쁨에 대한 고백’(원리)과 ‘그렇게 살도록 권면하는 자신의 영성 일기의 속살을 공개’(적용)하는 구조라고 볼 수 있다. ‘믿음에 대한 열 가지 질문’은 믿음에 대한 열 가지 원리이고,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그 믿음을 적용하기 위한 선택지이다. 열 가지 질문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물음이지만, 대답으로 이끄는 것은 김석년 식이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 타령으로 가득하다. 그렇다고 뻔한 이야기가 아니다. 신학자라면, 목사라면, 누구나 ‘예수 전(傳)’을 쓰고 싶어 한다. 네 복음서가 각각 자신의 특별함이 있듯이, 이 책 역시 김석년의 복음서처럼 고유하고, 개성이 넘친다. 김석년 목사만의 예수 사랑 이야기를 듬뿍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안 해도 그만인 이야기는 전혀 아니다.
사실 김석년 식 문답집은 객관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자신의 고백을 앞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런 주관적인 대답 때문에 그래서 더욱 신뢰감이 든다. 바늘로 찌르듯 따끔하지만 진실한 본질을 보여줘서 더 감동적이다. 늘 신앙에 따른 옵션만을 찾으려는 우리를 향해 저자는 말한다. “옵션보다 본질을, 일보다 관계를, 경건보다 은혜를” 구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자주 신앙의 본질을 잃는다. 더더욱 그리스도인의 생활 속에서 ‘예수, 복음, 하나님 나라’라는 본질을 찾아보기 힘들다. 바라기는 이 책이 그리스도인의 갈증 난 질문을 통해 우리 시대와 현실교회의 목마름을 해갈하는 생수가 되고, 단비를 불러오는 기상예보가 되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송병구 목사 (색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