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게시판
바이블25
크리스천라이프
커뮤니티
갤러리
성경/찬송가
지역정보
로중
전도
뉴스
QT
전도모음
Cristian YouTube
     
커뮤니티
칼럼
명언묵상이미지
하늘양식
오늘의책
십자가
명상
영상
설교
말씀
독자편지
독자편지 [122]
 
 
 
     
 
 
 
작성일 : 23-04-25 22:59
   
대답 없는 하나님
 글쓴이 : dangdang
조회 : 7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9386 [101]



대답 없는 하나님


(<침묵> 엔도 슈사쿠 저, 공문혜 역, 홍성사, 2003)

 

하나님은 살아 역사하시며,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는 분이시다. 이것은 우리의 고백이자 신앙의 선포이다. 그러나 당신! 언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는가? 사실, 좀 더 냉정하게 따져보자면 하나님의 음성이란 늘 침묵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지 않은가? 텅 빈 공간, 아무 소리도 없는 적막 속에서 인간의 내면은 심하게 요동친다.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분은 나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나?’ 수많은 생각을 떠올리고 되뇌인다. 우리는 이 반복 속에서 “하나님이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어!”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소리는 내면으로부터 생성되는 것일까? 외부로부터 들려오는 것일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 속에서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엔도 슈사쿠의 『침묵』은 ‘고통의 순간 가운데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 그리고 ‘그분은 뭐라고 말씀하실까?’ 라는 질문에 정면으로 마주하는 소설이다. 

 

<순교 VS 배교>

로드리고와 가르페 신부는 일본 선교에 열정을 품고 떠난다. 이들에게는 또 한 가지 목적이 있었으니, 먼저 일본에 선교를 떠난 스승 페레이라 신부의 소식을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이들은 페레이라 신부가 박해를 견디지 못하고 이미 배교했다는 헛소문을 바로잡고 싶었다. 그분은 그럴 리 없다고 단언했다.

로드리고가 만나게 되는 일본 기독교인의 현실은 생각보다 더 처절했다. 과거 일본은 기독교를 인정했으나, 서양 사상이 나라를 위험하게 한다고 판단하여 철저하게 색출하여 박해하고 있었다. 신앙인들은 자신들끼리 숨어 지내며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마저도 발각되는 날에는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로드리고는 간절한 마음으로 신앙을 지켜오던 일본 기독교인들에게 고해성사를 해주고, 성찬과 세례를 베푼다. 

어느 날 당국의 포위망은 이 마을까지 좁혀 들어왔다. “성화를 밟아라!”, “십자가에 침을 뱉어라!”, “숨이 거칠어지는 이유는 무엇이냐?”, “왜 머뭇거리느냐!” 신념을 저버리고 목숨을 부지한 이들도 있었지만, 정직하게 그 상황을 마주한 신앙인들도 있었다. 지금 그들은 로드리고 신부의 눈앞에서 죽어가고 있다. 로드리고는 그동안 신앙에 대해 막연하게 품어왔던 낭만적인 생각이 처참하게 깨어져 나간다. ‘혹시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고귀하게 죽는 것이 악착같이 살아남는 것보다 귀한 일일까?’, ‘그런데 지금 하나님은 어디 있는가?’ 순교한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응답 VS 침묵>

순교의 순간, 신앙인이 원하는 건 기적이 아니다. 하나님의 한마디이다. “잘하고 있다. 내가 너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힌 것처럼, 너도 흔들려서는 안 된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침묵뿐이다. 너무 아름답고 평화로운 바다는, 인간의 아픔과 슬픔을 계속해서 외면하고 있었다. 이것이 순교란 말인가?

예수께서 죽으시던 날, 그분도 하나님의 침묵 가운데 큰 충격에 빠진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예수님에게 죽음보다 더 무서운 일은 하나님의 침묵이었을 것이다. 뭐라도 한 말씀만 해주시면 좋으련만. 

역시, 하나님의 침묵 앞에서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매정한 현실 속에서 인간은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한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존재 VS 쓸모>

일본 당국은 계속해서 순교의 상황을 보여주며 로드리고에게 배교를 강요한다. 자신이 신앙을 지키는 것이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는 현실은 깊은 고민을 만들어낸다. 더구나 고통의 순간을 번번이 외면하신 하나님이 아니던가? 그 때, 로드리고는 그토록 찾고 싶었던 페레이라 신부를 만난다. 페레이라는 이미 30년 전, 로드리고와 같은 상황에서 배교를 선택했다. 

페레이라는 선교를 향한 과거의 마음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이었는지를 설명한다. 일본 사람들은 자신의 방식으로 하나님을 믿을 뿐이고, 복음은 계속해서 훼손되었다는 것. 신앙을 끝까지 지킨다고 현실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 무엇보다 침묵뿐인 하나님을 붙드느니 훨씬 쓸모 있고 가치 있는 일을 해보자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라도 신앙인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보다 현실적인 일을 해야 할까? 여기에서 또다시 질문하게 된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 신앙인이라는 정체성이 그토록 중요한 것일까? 신앙인이라는 타이틀이 무슨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오히려 그 끝은 죽음으로 귀결되는 것 아닌가? 

 

책을 읽는 내내, 생각을 정돈하기가 쉽지 않았다. 필자의 마음도 순교자였다가, 배교자였다가 갈팡질팡했다. 그러나 양자택일의 결정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침묵하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 내가 어떻게 설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하나님은 쉽사리 대답하지 않으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침묵 속에서 응답을 구해야 한다. 그리고 그 말씀을 가지고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순교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야한다. 

 

로드리고는 후미에 앞에 섰을 때 다음과 같은 음성을 듣는다. 

“밟아도 좋다. 네 발의 아픔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밟아도 좋다.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너희의 아픔을 나누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진 것이다.” (267쪽)

 

침묵 속에 세미하게 들려지는 그분의 음성을 찾아가는 우리가 되길 바란다. 

 

산동훈 목사 (마포 꿈의 교회)​ 


 
   
 

 
Copyright(c) 2012 http://bible25.bible25.com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