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강을 통한 평화
(<퓨즈만이 희망이다>, 신영전, 한겨레출판사, 2020)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과부하가 걸리는 순간 가장 먼저 망가지는 부품은 퓨즈이고, 점증하는 사회불평등과 ‘강등된 인류’의 고난이라는 요소로 구성된 폭발성 혼합물이 현 세기에 인류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확신했다. 이런 약자들이야말로 현재의 모순을 가장 농축적으로 내재하고 있는 존재이기에 그들에게 답을 물어야 한다.”(335)
비평은 중요하다. 맹목에 빠지지 않게 도와주는 까닭이다. 카프카는 예술이 내면의 얼음을 깨는 도끼라고 했는데, 때로는 예술이 곧 비평이 되기도 한다. 조지 오웰은 정치적 글쓰기로 예술을 하려 했고, 이처럼 예술과 비평의 경계는 모호해진다. 리영희의 말도 떠오른다. 우상을 타파하며 진실을 추구하는 것, 비평의 정체란 그것이고, 지식인이라면 이 책무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신영전의 <퓨즈만이 희망이다>는 저자의 단상들을 수집한 책이다. ‘사회비평에세이’이라는 부제가 붙은 만큼 신영전은 집요하게 진실을 희구한다. 의료인으로서 저자는 개인의 몸이 아니라 사회라는 신체를 진단하고 처방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특수한 재난적 상황이 역설적으로 보편적인 문제를 바라볼 수 있게 도와주었다. 저자에 따르면, 그것은 단연 의료서비스의 영리화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의료서비스의 영리화가 가속화할수록, 가난한 환자의 쾌유를 위해 밤을 지새우고, 교과서적 진료의 원칙을 지키겠다고 다짐하는 우리 시대의 선한 히포크라테스들은 그저 돈 못 버는 무능한 의사로 남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단지 특정 집단만의 손실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가진 소중한 상징 하나를 잃어버리는 일이다.”(275)
“바이러스는 우리 몸과 사회의 가장 약한 부분을 먼저 찾아간다.”(48) 감염병이 누구에게나 공평하다고들 하지만 사실은 전혀 다르다. 노인, 장애인, 외국인노동자 등 소수자들, 취약한 집단들부터 고통당하고, 가진 자들은 피해를 늦게 본다. 고 백기완의 말마따나 의료가 상품이어서는 안되는데, 안타깝지만 그게 현실이다. 늙음이 죄가 되고, 질병과 장애를 부담으로 여기는, 돈이 주인 노릇하는 세상은 그토록 위험하다.
저자는 국제보건 강의를 마칠 때, 학생들에게 손바닥을 펴서 동그라미를 그려보라고 요청한다고 하는데, 이 지점이 인상적이었다. 동그라미 정 가운데 자신이 있고, 그 옆에 가족 등 절친한 사람들을 넣는다 할 때, 사회적 약자들은 그 동그라미에 속하는지 아니면 배제되는지를 묻는다고 한다. 원은 폐쇄적이다. 피아를 구분한다. 과연 우리의 현주소는 어떠할까.
책무를 뜻하는 라틴어 Munus와 ‘함께’를 뜻하는 접두어 Cum이 결합되어 ‘공동체community’가 되었다. “서로를 돌볼 의무가 있다”는 해석은 언제나 시의적절하다. 퓨즈가 희망인 것은, 더 이상 누군가를 희생시키는 방식으로 사회가 구성되면 안 되기 때문이다. 보건복지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북유럽 국가들은 “평등한 것이 이득”이라는 믿음으로 꽤 유의미한 지표들을 만들어 냈지만, 자주 외면당한다. 그 대신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라는 오래된 경구가 아직도 통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예술과 비평 그리고 종교의 본령에 일치하는 지점이 있다. 그것은 취약한 이들의 편에 서는 것이다. 잊지 말자. 퓨즈만이 희망이다.
김민호 목사 (지음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