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
(<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웬디 미첼, 조진경 번역, 문예춘추사, 2022)
당장 무슨 큰 어려움이 없는 사람들도 앞날을 생각하면 한순간 불안에 떨게 된다. 특히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 가운데 중요한 염려가 아마 병일 것이다. 20세기 중반 이후 가장 큰 두려운 병은 각종 암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지만 21세기 들어 수명이 급격히 늘어나면서는 치매에 대한 두려움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더구나 치매에 대한 지식과 이해는 여전히 부족해 더욱 큰 두려움과 막연한 염려를 벗어내기 힘들다.
그런 가운데 저자는 2014년 58세의 ‘아직 이른’ 나이에 치매 진단을 받고 8년이 흐른 지금 두 번째 책을 내게 되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스스로 치매 환자로서 자신을 기록한 것이다. 책에서 발견하는 그의 삶은 모든 게 끝난 것도 아니고, 죽는 게 사는 것보다 나은 처참한 매일도 아니다. 오히려 주어진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게 된 복을 누리고 있음을 말한다. 심지어 그는 다른 사람들이 갖기 쉬운 중압감을 덜어내고 사는 삶을 만족스럽게 느낀다고 한다.
“이상하게 들리지만, 나는 가끔씩 치매 덕분에 다른 사람들이 받는 부담감을 털어내고, 사람들이 여전히 필사적으로 돌리고 있는 다람쥐 쳇바퀴에서 벗어나게 되어 순간적으로 만족감을 느낀다. 그리고 이 병에서 얻을 수 있는 최선의 것을 찾아내는 내 능력 때문에 죄책감을 느낀다.” 물론 치매에도 다양한 증상과 정도의 차이가 있기에 그의 경험과 증언이 치매의 모든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치매가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
그것은 내게도 벌써 6년째 치매를 앓고 계신 90세 어머니가 계시기 때문이다. '치매 걸려 자식들 고생시키는 일만은 하지 않겠다'며 성경책, 신문 등 닥치는 대로 읽으시던 어머니다. 그러나 몇 년 전 결국 치매가 찾아오셨고 빠르게 변해갔다. 5남매가 한 달씩 돌아가며 모시다 결국 시설에 들어가셨고, 코로나 2년은 정말 길었다. 작년 안쓰러울 정도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최악이었다. 보다 못한 한 누나가 집에서 모시며 빠르게 회복되었고, 나도 3달 정도 모시다 부득이 최근 다시 시설로 모셨다.
그러나 막상 우리가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계속 변해가는 어머니를 보면서 더는 치매를 오직 비극만 남은 슬픔으로 보지 않게 되었다. 익숙한 사랑하는 가족이 치매에 걸리면 가장 먼저 당황스럽고, 무섭고, 부정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그걸 내려놓으니 치매 어머니의 다른 세계가 보였다. 치매인은 자주 다른 세계로 들어간다. 특히 과거의 기억 속에 자주 머문다. 우리 어머니도 다섯 자식은 물론 40년 전 사별한 남편도 아니고 '문 밖에' 와 계신 엄마,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자주 출타 준비를 하신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슬금슬금 엄마, 아빠를 만나러 나가신다. 처음에는 정신 차리라며 큰 소리를 냈지만, 점차 그 이야기에 나도 참여하였다. "맞다. 그런데 지금은 밤이다. 아침되면 같이가자." 그러면 알았다는 듯 주무신다.
나는 치매가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정말 느꼈다. 사람의 기억이라는 게 꼭 모든 것을 다 알고, 기억해야 하는 것만은 아니다. 치매 엄마는 감사하게도 알건 알고 모를 건 모른다. 우리처럼 잊어도 될 것까지 다 기억하며 미움과 증오에 빠져 살지 않고 스스로 생각할 때 필요한 것들만 선별해서 갖고 계신 것 같다. 그러므로 치매인을 바보로 보고 함부로 대하지 말아야 한다. 대하다가 힘들어서 당장 악다구니를 쓰게 되는 일이 있어도 나중에 사과하면 다 풀린다. 그런데 나만 정상적 사고를 하고 있다는 판단과 말의 논리를 벗어나 그 세계를 인정하면 다툴 일이 거의 없어진다. 사람답게 산다는 게 뭔지 자꾸 생각하게 해준다. 치매 엄마를 통해 눈앞의 현실과 다른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훨씬 많이 실감하게 되었다. 내 경험과 미첼의 책을 읽으며 내가 이해한 치매의 작은 교훈은 이렇다.
-어떻게 하면 치매 걸린다, 안 걸린다 꼭 말할 수 없다. 그러니 자책하거나 원망하지 말라.
-치매 걸리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식으로 생각지 말라. 쉽지 않을 뿐이지 살만하다.
구교형 목사 (성서한국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