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자, 성서 밖으로 나오다
<여자, 성서 밖으로 나오다>, 김호경, 대한기독교서회, 2006
살아오면서 여성이라는 정체성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시대의 변화로 가정의 문화나 학창시절의 경험에서 개인적으로는 큰 불편함을 겪지 않았었기 때문이리라. 내가 여성이라는 것을 예민하게 인식하고, 그 의미에 대해 묻기 시작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교회 안에서였다. 신학을 공부하며, 광의(廣義)의 하나님 나라 지평에 대해 깨닫기 시작하면서 교회 안에서 가르쳐지는 내용들, 특별히 성서를 기반으로 어렸을 적부터 익숙하게 들어왔던 이야기들에 대해서 되묻게 되었다. 진실로 성서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가 알고자 하는 열망이 성서를 다시 읽게 하고, 특별히 여성과 관련된 본문들과 씨름하게 했다.
<여자, 성서 밖으로 나오다>는 바로 그러한 성실한 씨름의 흔적을 잘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을 처음 만났을 때, 그리고 이 책을 그리스도인 여성들과 함께 읽었을 때의 놀라움을 기억한다. 교회에서 각기 다른 경험을 가진 여성들, 남성들이 함께 읽어 봄 직하다. 이 책은 총 3부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각 ‘동상이몽(同床異夢): 세상에 서다’, ‘불인시대(不仁時代): 담을 넘다’, ‘변동천하(變動天下): 빛을 보다’라는 문학적 흐름과 방향성, 명징한 주제를 갖는다. 저자는 “성서 속 여자들을 우리의 삶 속으로 불러내려는 의도”를 가지고 총 13명의 성서 속 여성-간음하다 잡혀온 여인, 레위인의 이름 없는 첩, 입다의 딸, 다말, 하갈, 기생 라합, 유다의 며느리 다말, 마리아, 뵈뵈, 사마리아 여인, 마리아와 마르다, 향유 부은 여인, 리브가- 의 이야기를 재해석한다. 성서가 여성들에게 부여하는 자유와 구원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충분히 드러내려는 한 사람의 성서신학자의 열정을 엿볼 수 있다.
한 가지 이야기만 예를 들어보자면, 두 번째 이야기인 ‘레위인의 이름 없는 첩이야기(삿 19:1-30)’는 누가 읽어도 거슬리고 피하고 싶은 본문(집단 성폭행과 학살)으로 고대 가부장 사회에서 이름 없이 사라져간 수많은 여성들, 희생자들을 다룬다. 이러한 ‘아무도 애도하지 않는 죽음들’에 오랜 시간 관심이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 저자는 우리가 성서에 묻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성서는 묻지 않는 것에 답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성서 속에 숨겨진 답을 찾지 않는 이상, 성서는 우리에게 진실을 알려주지 않는다는 저자의 단언은 오늘 성서를 읽는 우리에게 두려운 경고이다. 우리가 성서를 어떻게 읽고 무엇을 질문하느냐가 곧 우리 존재를 드러낸다. 우리가 성서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성서가 우리를 해석하고 비춘다. 감히 하나님의 이름을 빌어 치러지는 소위 ‘야웨의 전쟁’에서 하나님의 이름과 불의를 분리시키고 이 시대에도 여전히 들리는 수많은 희생자들의 통곡소리를 듣고, 그 의미에 대해 묻고, 기도하고, 행동하는 삶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저자인 김호경 교수는 이 책의 에필로그 ‘나의 여성 신학 이야기’에서 상대적으로 평온하게, 평탄하게 여성으로 살다가 어느 순간 ‘여성이라는 태생성이 준 불평등과 억압의 경험들’을 공유하고 고통에 공감하면서 여성 신학자로서의 정체성과 소명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 중심에는 그 어떤 이념과 사상보다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 소외되고 버림받고 무시당하고 억압받는 자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좋은 소식, 복음을 전해주신 예수의 모습이 놓여 있다. “아마도 새로움을 경험하는 것과 새로움을 실천하는 것은 일치하지 않는 것 같다... 예수와 더불어 우리가 경험한 그것을 실천할 수 있었다면, 우리는 이 땅에 이렇게 많은 소외자들을 만들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138쪽)라는 저자의 탄식은 한국교회에 물음을 던지고 있다. 한국교회는 과연 성서 안에서 예수께서 열고 싶어 하셨던 새로운 시대, 새로운 질서를 발견하고 있는가, 경험하고 있는가, 더 나아가 그러한 경험이 새로운 실천으로 이어지고 있는가.
최규희 목사 (시냇가에심은나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