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애하는 고독한 현존들에게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라이너 마리아 릴케, 고려대학교출판부)
요즈음은 아이돌, 연예인들과 채팅을 할 수 있는 구독 서비스가 있다고 한다. 청소년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들을 위해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기쁨을 누린다. 동경하는 대상과의 대화는 아주 짧아도 큰 영향력을 미치니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프란츠 카푸스라는 독일 작가도 1900년대 초반에 자신이 존경하는 작가 릴케에게 서신과 함께 습작을 보낸다. 그리고 위대한 작가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진심을 다해 문학에 대한 열정에 불타는 젊은 시인에게 진지한 태도로 갖은 주제에 대하여 10편의 답장을 해줬다. 카푸스는 고맙게도 이 진귀한 편지들을 묶어 한 권의 책으로 내 주었다.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는 작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편지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인생과 사물과 예술에 대한 철학이 부드러운 어조로 조언의 형태로 적혀 있기 때문에 훌륭한 책으로 손꼽힌다. 시작은 카푸스라는 젊은이의 습작과 시창작에 대한 조언이지만 실은 예비 문학가나 예술가가 아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조언들로 꽉 차 있다.
당신의 삶을 이 필연성에 의거하여 만들어 가십시오. 당신의 삶은 당신의 정말 무심하고 하찮은 시간까지도 이 같은 열망에 대한 표시요, 증거가 되어야 합니다. (14p)
우리는 우리의 현존재를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되도록 폭넓게 생각해야 합니다. (85p)
릴케가 건네는 ‘삶과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조언은 애정이 가득하지만 동시에 단호해서 읽을 때마다 진심으로 수긍하게 된다. 여러 번 밑줄 치고 또 치게 되어 책이 너덜너덜하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또 읽을 때마다 새로운 관점에 감탄하고 진심으로 수용하게 된다.
무엇보다 릴케가 강조한 것은 ‘현존’이다. 열 번의 편지 내내 반복한 조언은 ‘고독을 버거워하지 말 것’과 ‘다른 관심사와 주제보다 우리의 존재 주변에 산재하는 일상을 바라보는 중요성’이다. 그 두 가지가 ‘현존’을 성장시키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말테의 수기>의 명문장 “나는 보는 법을 배우고 있다. 왜 그런지 모르겠으나, 모든 게 지금까지보다 더 내면 깊숙이 파고들어 과거에는 항상 끝났던 곳에 이제 머물러 있지 않는다. 예전에는 알지 못했던 깊은 내면이 생겼다. 이제 모든 게 그곳으로 간다. 거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나는 모르겠다.(<말테의 수기>, 라이너 마리아 릴케)”에도 드러나듯이 릴케는 젊은이에게 또 우리에게 끊임없이 관점과 내면의 상관성을 이야기한다.
당신의 일상생활이 제공하는 주제들을 구하십시오. 당신의 슬픔이나 소망, 스쳐지나가는 생각의 편린들과 아름다움에 대한 당신 나름의 믿음 따위를 묘사해 보십시오. (중략) 진정한 창조자에게는 이 세상의 그 무엇도 보잘것없어 보이지 않으며 감흥을 주지 않는 장소란 없기 때문입니다. (14p)
“사물들은 당신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아직도 당신을 위한 숱한 밤들과 나무들 사이로 그리고 수많은 땅 위로 부는 바람이 있습니다. 아직도 사물들과 동물들은 당신이 관여할 만한 것들로 가득합니다.(60p)라며 일상 주변의 ‘봐야할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한다. 또 한편으로는
“당신은 당신의 내면에서 무슨 일인가가 일어났으며 삶이 당신을 잊지 않았을 뿐더러 당신을 손에 꼭 쥐고 있음을 생각해야 합니다.(88P)” 라며 인내심을 가지고 내면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권고가 몇 번이나 강조되어 있다.
실은 당연한 이야기다. 우리는 바깥세계와 내면세계 두 사이에 걸쳐진 존재다. ‘영육간의’ 라는 표현을 자주하는 크리스천으로서 영적인 세계와 육적인 세계의 밸런스가 흔히 이야기 하는 워라밸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많은 기독교 작가들의 세계관이 그러하다. 하지만 어리석게도 우리는 그들의 작품을 진지하게 고찰하거나 직접적으로 내면과 관찰에 대한 조언을 듣지 않으면 외적 세계에 대한 탐구와 동시에 내면을 관찰할 것을 쉽게 잊어버리곤 한다. 이번 기회에 이 책을 추천하며 이 책은 빌려 읽지 말고 반드시 구입해 두고두고 반복해서 읽으라고 권유하고픈 이유도 같은 이유다.
그리고 그가 강조한 작업은 반드시 고독을 전제로 한다. 릴케는 ‘고독’의 중요성을 잘 알았다. 여러 번 편지로 강조한 ‘고독’은 현존에 집중하는 시간이며 “가슴속에 삶을 특별히 행복하고 순수하게 짓고 만들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배태하고 있는”(40p) 것이고 또한 “(고독은) 근본적으로 우리가 택하거나 버릴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님”(83p)이며 “당신의 가슴 가장 깊은 곳에서 벌어지는”,“당신의 모든 사랑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58p) 이기 때문이다.
고독을 얼마나 견딜 수 있는가? 이 책을 읽을 때마다 자문해 본다. 사순절 기간동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독을 상기한다. 내면과 세상, 영육을 모두 갖추었으면서도 예수님 또한 고독을 견뎌내기 위해 제자들에게 함께 기도해 줄 것을 부탁하시기도 했다.
현대인에게 고독이란 단어는 낯설고 유행이 지난, 이제는 더 이상 효용가치가 없는 단어로 느껴지기도 한다. 외로움과는 결이 다른 훨씬 더 내밀하고 심연에 기여하는 고독을 잊은 삶은 제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고까지 릴케는 말한다.
다만, 어쩌면 릴케와 카푸스처럼 편지를 쓴다는 것은, 고독을 견디는 수단이자 동시에 성장시키며 고독과 마주하는 순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흰 백지에 한 사람의 대상에게 진심과 존중을 담은 내용을 적어 내려갈 때, 인간 대 인간의, 개인의 고독과 개인의 고독으로 쓰고 읽는 글이 바로 편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편지로 전달된 릴케의 조언들이 더욱 더 진지하고 사려 깊으며 동시에 내면의 현존으로 읽혀지는 것들이 아닌가 싶다.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책과 함께 편지지를 꼭 사서 편지를 써보기를 권한다. 릴케의 편지를 읽고 난 뒤에 누군가에게든 편지를 써 보내며 내면의 고독을 관찰하고 서술하고 누군가의 ‘보는 방법’이 되어 주기를 당부한다. 마지막으로 부활절을 맞아 릴케의 여섯 번째 편지에 적힌 글을 인용한다.
그렇다면 카푸스씨, 당신은 정말로 신을 잃어버렸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오히려 지금까지 신을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다는 말이 더 맞지 않을까요? (중략) 왜 당신은 신이란 다가오는 자, 영원으로부터 그 도래가 임박한 자, 미래의 존재, 우리가 그 이파리인 한 나무에 열릴 마지막 열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중략) 모든 것을 자기 안에 품으려면 그는 마지막에 오는 존재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바라는 존재가 이미 과거에 존재했다면, 우리의 존재는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겠습니까? (중략) 그리고 우리가 그 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대지가 찾아올 봄을 위해 준비하듯 그 분의 도래를 조금이라도 도와드리는 데 있음을 명심하십시오.(60-63P) 당신의, 라이너 마리아 릴케
Leben Sie wohl.
박창수 목사 (인천 성은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