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이길 포기하면 편안해지지
<좋은 사람이길 포기하면 편안해지지>, 소노 아야코, 오경순 역, 책읽는 고양이
사람들이 겪는 스트레스의 많은 부분이 사람과의 관계로부터 온다는 말에 나는 동의한다. 과거엔 혈액형이, 요즘은 MBTI가 사람들의 다양한 성격들을 설명해준다. 같은 성격 유형이라 할지라도 살아온 배경, 경험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여주는 것 같다. “나처럼 사는 건 나밖에 없지”라는 홍순관의 노래 제목처럼, 이 세상에 “나”처럼 사는 건 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나”들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고 살다 보니 심심할 만하면 서로 부딪치는 것은 어쩌면 중력의 법칙처럼 당연한 것은 아닐까. 나 역시도 미국에서 목회를 하면서 관계로부터 오는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할 때가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좋은 사람이길 포기하면 편안해지지”라는 책이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그 중 겉표지의 “사람으로부터 편안해지는 법”이라는 문구에 매료되었다.
처음엔 사람관계를 현명하게 하는 방법론에 대한 내용들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소노 아야코의 글들을 읽을수록 그녀와 나의 생각의 차이를 느끼게 되었고, 한편으론 “이래서 사회생활 할 수 있나?”, “현실적으로 이게 가능한가?”와 같은 질문들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예를 들자면, 아래와 같은 부분들이다.
“부탁받으면 거절하지 못하는 여린 마음이 내겐 예전부터 없었다. 마땅히 있어야 할 감정이 결여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나는 어떤 상대이건 이치에 맞지 않으면 거절한다. 서운하게 생각하더라도 할 수 없는 일이다.” p63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부탁을 거절하는 것은 나에게는 늘 쉽지 않은 일이었고, 마지못해 거절을 하게 되더라도 서운해할 상대를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지 않았던 것 같다.
우유부단한 나와는 달리 아야코의 관계에 대한 신념은 경조사에 대해서도 찾아볼 수 있다. 우선, 우리 말에는 “기쁨은 나눌 수록 커지고, 슬픔은 나눌수록 작아진다”라는 말이 있다. 때문에 경조사에 관해서 축하해주는 사람도, 위로해주는 사람도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나였다. 그러나, 나와는 달리 그녀의 신념은 이러했다.
“특별한 사람을 제외하고 죽음은 가족의 일이다. 장례식은 가족의 행사다. 더군다나 오래 사시고 사회에서 은퇴한 사람의 죽음은 아무도 모르게 조용한 것이 나는 좋다.” p82
그녀와 나의 생각 중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따질 수는 없으나, 고인의 장례를 위해 조화는 많을수록, 북적이는 조문객실일수록 더 고인을 위한 것이라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목회를 하면서 여러 장례를 치른 경험들이 기존의 생각들에 조금은 변화를 갖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장례를 치를 때, 가족 장례로 치르는 경우들이 많다. 고인과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는 가족들만 장례에 참여가 허용된다. 목사의 특권 중 하나는 가족들과 함께 있도록 허락되며, 그들이 고인과 이별을 잘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때문에 한국인의 기준에서 미국식 장례는 소소하게 느껴질 수 있다. 꽃과 화분들, 그리고 장례 후 함께 하는 식사도 간단한 샌드위치와 우유 한 컵으로 가족들이 준비한다. 거창한 조화와 육개장을 비롯해 절편, 편육, 후식으로의 진미채와 땅콩과 과일과 같이 푸짐한 식사는 미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쉽지 않다.
북적이는 경조사도 좋지만, 진정으로 기쁨과 슬픔을 함께해 줄 이들과 함께하는 경조사도 의미가 깊은 것 같다. 경조사뿐만 아니라 인간관계 그리고 삶에 대해서 아야코가 지향하는 바는 명확하다. 만약 관계에 대해서 고민이 된다면, 삶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아야코의 생각들이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내키지 않는 일에는 더 이상 구애받고 싶지 않다. 단 일 분이라도 한 시간이라도, 아름다운 것, 감동할만 한 것, 존경과 경이로 바라볼 수 있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 사람을 두려워하거나, 추하다고 느끼거나, 때로는 업신여기고 싶은 마음으로 내 인생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p44
“남들이 혹시 자기를 좋아하지 않을 거라 생각되면 경계하게 된다…(중략)…그러나 딱히 나에게 특별한 악의가 없는 한, 타인으로부터 미움을 받아도 달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한 사람에게 미움받더라도, 다른 한 사람에게 호감을 사는 경우도 세상에는 흔한 일이니까.” p64
“우리들은 죽음이 들이닥친 순간에서야 비로소 이 세상에서 무엇이 정말로 필요한지 깨닫게 된다…(중략)…돈, 지위, 명예, 그리고 온갖 물건, 이 모두가 인간 최후의 날에는 아무런 의미도 갖지 않는다. 최후의 날에 있었으면 하는 것은 ‘마지막 만찬용’으로 쓸 늘 먹어왔던 검소한 식사와 마음을 온화와 감사로 가득 차게 해줄 수 있는 좋아하는 술이나 커피, 혹은 꽃이나 음악 정도가 아닐까…” p130
앞서 말했듯, 아야코의 에세이를 처음 펼쳐 읽을 때에는 많은 생각들과 질문들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러나, 이 책을 덮을 때쯤 한 가지 질문이 내 마음 속에 다가왔다. “(타인들에게) 좋은 사람이길 포기하고 나를 위한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타인들을 의식하는 삶을 살 것인가” 글쎄, 선택하고자 하는 것은 전자이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부터 내 안에 무언가 변화는 조금이라도 시작된 것 같다.
민학기(윌로우리버 연합감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