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자가 된다는 것
(<제자가 된다는 것 : 그리스도인 삶의 본질>, 로완 윌리엄스, 복 있는 사람, 2019)
사순절을 맞아 교우들과 함께 주님의 흔적을 찾아 묵상하고자 ‘주의 발자취를 따라’라는 주제를 가지고 복음서 가족성경필사를 하고 있다. 성경필사와 더불어 개인묵상집인 <동행하는 길>(미래교육목회연구소 송대선 목사 저)을 나누어 드려 매일 묵상하며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고 있다.
예수님의 흔적을 쫓아가면 갈수록 더욱 깊어지는 고민은 인간됨에 관한 것이다. 우리의 신앙이 인간됨을 더욱 고양시키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가식이 될 뿐이다. 주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제자도의 핵심에는 인간됨을 구현하는 것과 관계가 있다. 이러한 생각을 고민하며 붙들게 된 책이 성공회의 탁월한 신학자인 로완 윌리엄스의 <제자가 된다는 것>이다.
일찍이 로완 윌리엄스의 책을 통해 그리스도교 신앙이 우리가 사는 세상과 현실에 얼마나 잘 녹아들 수 있는지, 참 신앙의 길이 무엇인지 많은 통찰을 얻은 바 있다. 그의 책 <제자가 된다는 것>은 제자도에 관한 것이다. 제자도는 그리스도인 삶의 본질에 관한 것이다. 이 책은 여섯 꼭지로 이루어져 있는데, ‘제자가 된다는 것’에서는 제자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고 있다. 스승과 함께 묵고, 머물러 듣고, 배우는 이가 제자임을, 우리의 스승 예수의 삶이 가르쳐주는 바와 같이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초대와 사랑에 기꺼이 응하는 이가 제자임을 가르쳐준다.
‘믿음·소망·사랑’에서는 제자도의 필수덕목으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제시한다. 그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지성과 기억과 의지로 풀어낸다. ‘용서’에서는 주님의 기도에 들어 있는 일용할 양식 청원과 성찬례의 성사로 풀어 설명하고 있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는 용서를 구하는 기도로 이어지는데, 우리는 일용할 양식을 구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인정할 때, 다른 이에 대한 용서의 여지가 생기고, 용서를 통해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공동체적 경험(성만찬)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말한다.
‘거룩함’에서는 구약에서 배워온 구별되고 범접할 수 없는 무언가를 나타내는 거룩함의 의미를 벗어던지고,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새로운 의미의 거룩함, 곧 세상과 구별되는 것이 아닌 철저히 혼란과 문제투성이인 세상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거룩함을 이야기한다. 그는 세상의 어려운 일과 문제에 관여하는 일이 거룩함의 본질이라 말한다.
‘사회 속의 신앙’에서는 모든 인간은 모두 하나님께 동등한 가치가 있다는 것과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의존한다는 두 가지 원리를 제시하며 그리스도교 신앙이 세속의 공동체와 정치에 도덕적 비전을 제시해준다고 말한다. 마지막 ‘성령 안의 삶’은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삶’이라는 영성의 개념을 설명하며, 영성이 길을 걷기 위해 자기이해(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묻고 이에 대해 언제나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는 자세), 평정(참된 침묵에 거하는 것), 성장(내 안에 하나님의 자리를 넓히는 일), 기쁨(울타리를 깨뜨리고 솟구쳐 넘쳐흐르는 기쁨)가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제자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교회에 다닌다는 것이 제자도의 지표일 순 없다. 스승인 예수의 삶이 고스란히 그의 삶에 재현될 때 그를 비로소 제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로완 윌리엄스가 제시하는 거룩함의 의미를 삶 속에서 구현해내며, 언제나 하나님을 바라보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를 쉬지 않을 때, 그런 이들을 통해 세상은 새로운 세상을 맛보고 참 기쁨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주님의 제자로 자부하는 우리들로 인해 세상은 과연 기뻐하고 있을까? 그가 말했듯 하나님과 이웃에게 기쁨을 주는 존재, 그가 바로 예수의 제자들이다.
“거룩함은 세상을 확장하고 그 세상 속에 참여하는 일과 관계있습니다. 거룩한 사람은 ‘인간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문제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어려운 과제에 맞서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또 그런 문제들 한가운데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사람과 사람들을 새롭게 볼 수 있게 해주는 사람입니다. (중략) 거룩하게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탁월하심에 완전히 장악당해서 그 탁월성이 여러분의 주된 관심사가 되고, 또 여러분을 통해 빛으로 솟아나 다른 사람들을 비추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 혁 목사 (의성서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