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둠이 빛을 이기는 때
(<전설의 밤>, 아이작 아시모프)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둠이 빛을 이기는 때가 있습니다. 빛이 어둠을 두려워 할 때입니다. 빛이 어둠을 이길 수 없다고 믿으며 어둠을 닮아갈 때, 어둠은 빛을 이깁니다. 어둠이 강해서가 아닙니다. 빛이 빛이기를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SF 소설 <전설의 밤>은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전설의 밤은> SF 소설의 전설로 불립니다. SFWA(미국과학소설작가협회)가 회원 투표로 선정한 <SF 명예의 전당>(고호관 역, 오멜라스)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한 작품입니다.
이 소설은 특이하게도 미래나 과학에 대한 내용이 거의 없습니다. 늘 그렇듯 아이작 아시모프는 과학소설이라는 장르를 통해 인간과 사회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것도 수술용 칼로 해부하듯이 말입니다.
은하계 중심부에 여섯 개의 태양을 가진 라가시라는 행성이 있습니다. 태양이 여섯 개나 되기 때문에 라가시에는 밤이 없습니다. 더 뜨거운 낮과 덜 뜨거운 낮이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 행성은 2050년 주기로 모든 문명이 멸망합니다. 멸망의 때가 오면 절정에 달했던 문명은 일순간에 소멸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0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벌써 9번의 멸망이 있었고 10번째 멸망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저명한 천문학자 아톤 77 교수가 그 비밀을 밝혀냅니다. 밤이 없는 행성 라가시에 2050년에 한 번씩 전설의 밤이 찾아오고, 그 밤에 모든 것이 소멸합니다. 밤이 없는 행성에서는 별도 달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행성에는 달이 있었고, 2050년 마다 달이 해를 가리는 개기 일식이 일어납니다. 태양이 가장 멀리 있고, 달이 가장 가까이 있을 때 일어나기 때문에 하루 동안 행성 전체에 완벽한 밤이 옵니다. 그러면 빛의 자녀로 살아 온 사람들이 하룻밤의 어둠을 견디지 못하고 공포에 사로잡혀 폭도로 변합니다.
이 사실을 발견한 아톤 77 교수는 어둠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자신이 발견한 과학적 진실을 발표합니다. 그러나 테레몬이라는 유명 언론인이 아톤 교수의 주장을 조롱하고 나섭니다. 사람들은 진실보다 조롱과 비난에 열렬히 반응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테레몬은 아톤의 보고서를 단 한 줄도 읽어보지 않았으면서, 아톤을 비난하고 조롱하는 기사를 쉴 새 없이 쏟아냅니다. 그 결과 아톤은 손가락질 당하는 과학자가 되었고, 어둠을 준비했어야 할 두 달의 시간이 안개처럼 사라졌습니다.
낮의 행성 라가시에는 인공 조명이 없었습니다. 여러개의 태양이 다양한 각도에서 빛을 주었기 때문에 커튼을 여닫는 것이면 충분했습니다. 아톤 교수가 어설프게 만든 횃불 여섯 개가 라가시가 가진 조명의 전부였습니다.
드디어 전설의 밤이 시작되자 사람들은 어둠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늘 빛 속에서 살던 사람들은 어둠이 빛을 이겼다고 생각했습니다. 폐소공포증에 빠진 사람처럼, 어둠이 영원하리라는 착각에 빠졌습니다. 난생처음 무한대로 떠 있는 별을 본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별빛에 영혼을 빼앗긴 사람처럼 행동했습니다. 그들은 빛을 얻기 위해 탈 수 있는 모든 것에 불을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 그렇게 전설의 밤은 시작되었습니다.
모든 변화는 어둡게 느껴집니다. 익숙하던 것에서 미지의 세계로 나가는 일은 불편합니다. 그것은 변화를 원하던 이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변화의 때가 오면 변화를 반대하는 사람이건 찬성하는 사람이건 못마땅하기 마련입니다. 이 원초적인 어둠으로부터, 그 형이하학적이고 급진적인 성급함으로부터 퇴행의 문이 열립니다.
개인적이든, 역사적이든 어둠은 빛으로 나아가는 문입니다. 더 나은 삶, 더 나은 세상은 어둠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오는 법입니다. 어둠 속에서는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걸어야 합니다. 변화 앞에서, 그것이 좋건 나쁘건, 조급하지 말 것, 먼저 촛불 하나를 밝힐 것. 때로는 어둠이 빛을 이기는 듯 보일 때도 있지만, 최후에는 빛이 어두움을 이깁니다.
우동혁 목사 (만남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