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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3-03-24 00:39
   
그날 밤 김수영이 내게 말한 것
 글쓴이 : dangdang
조회 : 1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9194 [112]



그날 밤 김수영이 내게 말한 것


(<인생의 역사-‘공무도하가’에서 ‘사랑의 발명’까지>, 신형철, 난다, 2022)

 

2019년 <밤의 서점>에서 김연수 작가님이 백석 시인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을 낭독해주신 뒤로 나는 마음이 어려울 때마다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을 읽는다. 그 시 속에 나오는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라는 문장을 새기며 나는 다음과 같이 마음을 다잡는다. ‘백석 시인이 자신의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다고 느꼈음에도 다시 한번 고개를 들고 살아간 것처럼 나도 그런 삶을 살아야지’. 그렇게 나는 몇 번의 개인적인 좌절 속에서도 다시 고개를 들고 살아갔다.

 

하지만 작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를 겪었을 때는 도저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개인적인 슬픔과 괴로움 속에서는 몇 번이고 다시 고개를 들 수 있었지만, 사회적인 비극과 참사 앞에서는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2022년에 이런 참사가 발생하였다는 것이, 한순간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 너무나 허망했다. 그 허망함 앞에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태원 참사보다 더 견딜 수 없던 건 참사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였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모습, 사람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정치권의 반응, 아무렇지 않게 막말을 내뱉는 뉴스나 인터넷 의견들, 참사 유가족들을 대하는 폭력적인 태도와 방식.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참을 수 없이 역겨웠다. 2022년 한국 사회가 보여줬던 모습은 2014년 세월호 참사 때와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괴로웠던 건 사회적 참사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자신의 무력함이었다. 무엇하나 바꿀 수 없고 막을 수 없는 내 모습은 너무나도 초라하고 무력하였다. 이런 현실 속에서 시를 읽는다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신학을 한다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사역을 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좌절 앞에 굴하지 않고 다시 고개를 들어도 현실은 변하지 않고 나 자신도 그대로인데, 고개를 들수록 현실은 자꾸만 내 고개를 짓누르는데 고개를 드는 것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마음 속에 이러한 생각들이 가득하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모든 걸 제쳐두고 신형철 평론가의 신작 <인생의 역사>를 읽었다. 이 책 안에 나를 위로해줄 시가 한 편이라도 있기를 기대하며.

 

밤을 새워 가며 페이지를 넘기다가 김수영 시인이 쓴 <봄밤>이 나왔다. 그리고 <봄밤>을 읽는 순간, 둑이 터지는 것같이 내 감정이 터져 나왔다.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

눈을 뜨지 않은 땅속의 벌레같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그날 밤 김수영이 내게 말했다.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고.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일지라도,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이라도. 신형철 평론가는 이 시를 평론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빨리 무언가를 보여주려는 마음에 지면 나를 잃고 꿈은 왜곡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무력함에 절망할지라도 서둘지 말 것.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차분하게 마음을 다잡고 꿋꿋하게 나아갈 것. 김수영의 <봄밤>과 신형철 평론가의 글은 내게 이런 깨달음을 주었고, 나는 그제서야 비로소 다시 고개를 들 수 있었다.

 

고개를 들자 백석의 시 한 구절이 나를 스치듯 지나갔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세상은 언제나 넘치는 슬픔으로 가득했다. 백석의 시대에도, 김수영의 시대에도, 내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도. 그리고 인간이 지구를 떠나 우주에 살더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백석은 말한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여워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언제나 넘치는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들었지만, 그러한 슬픔 속에도 넘치도록 사랑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그날 이후 나는 다음과 같이 마음을 다잡았다.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의 비극을 맞이하더라도, 그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의 무력함을 보더라도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 것. 슬픔이 내 고개를 짓눌러도 굴하지 않고 다시 고개를 들 것. 그리하여 슬픔이 넘치는 세상 속에서도 넘치도록 사랑을 하며 살 것. 

 

김윤형(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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