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야만 하는 일
(<하얼빈>, 김훈 지음, 문학동네)
나는 왜 안중근에 대한 소설을 읽었을까? 애국심은 아니었다. 호기심 때문이었다. 사실 안중근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사람 정도였다. 학교 시험을 위해 외워둔 안중근이 아니라 인간 안중근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다. 역사 소설은 역사적 사건을 단편 지식 정도로 머무르지 않게 해준다. 마치 시간여행을 떠난 것처럼, 그 사건 속에서 참여하게 해준다. 당시 대한제국에서 실질적으로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있던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사람의 삶에 접근해보고 싶었다.
‘하얼빈’을 읽으며 마주했던 이미지는 충돌이었다. 엄청난 기세의 제국주의 일본과 무력해 보이는 대한제국, 강력한 일본 군대와 열악해 보이는 의병, 절대적 권력의 이토 히로부미와 평범한 한 사람, 안중근은 충돌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말이 생각났을 정도로 불가능 해 보이고, 무의미해 보이는 충돌이었다.
충돌을 결심한 자들에게 충돌은 당위적이었다. ‘그것이 가능할까, 영향력이 어느 정도 있을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에게 이 일은 마땅히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동양 평화 정책의 탈을 쓰고, 제국주의 침략을 정당화하는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온몸으로 막아서는 일은 그에겐 마땅히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이에 대해 다른 사람들은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할 수 있었겠지만, 그에겐 마땅한 일이었다.
작가는 그러한 안중근의 발걸음을 담담하게 표현했다. 당시 최고 권력이던 이토를 암살하는 일, 생각만 해도 심장이 떨릴 일이다. 그 사건 자체도 그렇지만, 그 이후에 일어날 일들, 가족이 겪을 파장, 흔들릴 수 있는 조건들이 많았다. 그러나 김훈은 안중근의 발걸음을 담담하게 표현했다. 암살 동지인 우덕순과의 대화, 침묵, 저격의 순간, 수사와 재판, 판결과 죽음을 감정적이거나, 과하게 애국적으로 표현하기보다 담백하게 서술했다. 묵묵히 거대한 충돌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안중근을 보고 있는 독자들에게 감정의 고양보다 사색의 시간을 주기 위해서는 아니었을까.
안중근이 이토를 암살했지만, 대한제국의 운명은 변화되지 않았다. 수많은 의병들이 자신을 던졌지만, 일본의 제국주의의 야욕은 흔들리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일어난 독립운동들은 무력해 보였다. 미국이 개입하고 나서야 나라는 독립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동안의 충돌은 허무한 일이었을까? 어리석은 일이었을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어떻게 되었든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물론 그 당시에는 그러한 일들이 실효적이진 못했다. 그러나 그 날의 충돌이 시대를 넘어 역사 속에 해야만 일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무언가 말을 걸고 있지 않은가. 뿐만 아니라 해야만 하는 일들을 하고 나서 고통을 감내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지 않은가. 시간을 건너, 오늘 사는 우리에게도 전해주는 소리가 있지 않은가.
살다 보니, 해야만 하는 일이 있는 것 같다. 안중근이 행했던 거사와 같은 것은 아닐지라도 사람에겐 해야만 하는 각자의 일들이 있다. 작가 김훈은 다양한 사람들의 소리 속에서도 묵묵히 뜻을 세우고 걸어가는 사람들의 곁에 안중근도 있음을 담담히 전해주었다.
소설 속 안중근의 말과 행동은 복잡하지 않다. 간결하다. 그 말 속에 단단함이 느껴졌다. 정한 뜻을 부정하게 만드는 외부의 소리도 있었고, 내면의 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뜻을 정하고 묵묵히 걷는 사람에겐 그 뜻을 따르게 하는 단단함이 있다. 그 단단한 무엇이 뜻을 따르는 발걸음을 인도한다. 소설 속 안중근 안에 있던 단단한 그 무엇이 오늘도 해야만 하는 일들을 묵묵히 감내하며 걷는 이들 속에도 자리 잡기를, 그 무엇이 그들의 발걸음도 지켜주길 기도 한다.
정승환 목사 (한우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