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이야기
<사랑하는 습관>, 도리스 레싱

<파운데이션>, 아이작 아시모프

오늘은 1950년대 발표된 두 권의 작품을 만나보려 합니다. 한 권은 노벨문학상 수상자 도리스 레싱의 단편집 <사랑하는 습관>이고, 다른 한 권은 SF 3대장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입니다. 두 작품은 원폭투하로 2차세계대전이 종식된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습관>은 2차세계대전 직후 영국과 독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파운데이션>은 1950년대 과학자가 상상한 인류의 미래를 이야기합니다. 1950년대를 기준으로 했을 때, 도리스 레싱의 작품은 현재를 이야기하고, 아이작 아시모프의 작품은 먼 미래를 이야기합니다.
<파운데이션>이 이야기하는 인류의 미래는 100년, 200년의 미래가 아닙니다. 상상하기도 어려운 수 만년, 혹은 수십 만년의 미래입니다. 그때가 되면 인류의 과학기술은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까. 수만 광년 거리를 며칠이면 이동할 수 있는 초광속 기술이 개발되고, 은하계 곳곳으로 인류가 퍼져나가 정착하고, 영토국가 시대가 막을 내리고 행성국가 시대가 열리고, 은하계 행성국가들을 중앙집권적으로 통치하는 은하제국이 열리리라!
2022년 애플TV에서는 이 소설을 원작으로 동명의 드라마 시리즈를 제작했습니다. 이 드라마와 원작 소설을 비교하면 지난 70년 간 이뤄낸 과학발전의 성과가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2022년에 발표된 드라마는 양자역학의 비밀이 완전히 해석된 미래를 그리는 반면, 1950년대에 발표된 소설은 원자력이 인류의 미래라는 이미 폐기된 관념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메가 울트라 슈퍼 사이즈 핵 발전소를 건설해 행성 단위의 전력을 공급하고, 그것으로도 부족해 가정마다 마이크로 원자로가 부착된 냉장고나 세탁기를 사용하게 되라고 말입니다. 심지어 원자력 엔진을 장착한 비행기와 우주선들이 하늘 위를 날아다닙니다. 1950년대, 방사능 걱정은 1도 없이 육상이나 태평양 한 가운데서 핵실험을 하던 분위기가 그대로 녹아있습니다.
그렇다고 <파운데이션>의 문학적 가치가 훼손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과 정치-사회에 대한 아이작 아시모프의 통찰은 SF 소설의 고전으로 군림하기에 손색이 없습니다. 원래 SF의 본질이 과학적 상상력을 이용해 현실을 비판적으로 고찰하는 것이니까요. 다만, 아무리 뛰어난 상상력도 시대적 한계 안에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든 택스트가 마찬가지입니다. 시대적 한계를 고려하지 않고 텍스트를 절대화하는 것은 텍스트를 오용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귀 있는 자는 들을 지어다!
단편집 <사랑하는 습관>은 2차세계대전 직후 영국과 독일의 상황을 비춥니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가족을 잃은 사람들, 전쟁 후유증 속에서 살아가는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 전쟁이 끝나고 다시 이웃이 되어야 했던 영국과 독일의 미묘한 신경전 같은 것 말입니다.
그 중에서도 <낙원에 뜬 신의 눈>이라는 단편은 우리가 알던 독일과 다른 전후 독일의 현실을 비춥니다. 우리가 아는 독일은 반성하는 독일,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독일입니다. 우리의 뇌리에는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가 유대인 위령탑 앞에서 무릎꿇고 사죄하는 모습이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도리스 레싱이 그리는 전후 독일의 모습은 우리가 아는 것과 전혀 다릅니다. 전쟁에 패배한 후에도 독일인들은 히틀러 총통과 나치를 그리워합니다. 나치 학살의 철학적 기반이 되었던 사회진화론은 여전히 독일 사회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특히, 독일의 기득권층은 미군의 감시가 느슨한 휴양지 호텔 고급 바에 모여 히틀러의 연설과 나치 군가를 교묘하게 조합해서 만든 노래를 부르며 나치 독일의 영광을 추억합니다. 독일 지식인은 유대인들인 영국과 미국을 이간질 해 전쟁을 일으켰다고 자기 합리화를 합니다. 결국은 모든 게 유대인 탓이라고 말입니다.
도리스 레싱이 들려주는 전후 독일 정신에 대한 리포트를 읽어내려가다보면, 독일이 현재의 독일, 반성하는 독일이 되기까지 얼마나 끈질기고 격한 노력을 기울였을 지 짐작이 갑니다. 히틀러가 독일 수상에 당선되고 나치 정권이 시작된 해가 1933년 입니다. 독일은 13년 나치의 적폐를 반성하고 청산하는 일에 70년 이상 노력을 쏟고 있습니다. 잘못 길들어버린 시대 정신을 바로잡는 일이 그만큼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35년의 식민지배와 50년 가까운 독재를 겪은 우리가 그 적폐에서 벗어나는 데는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까요.
70년의 시간은 도리스 레싱의 절망도 아이작 아시모프의 희망도 모두 바꿔놓았습니다. 물론, 좋은 쪽으로! 실망이 가로막을 때, 두 가지만 기억합시다. 그래도 오늘 하루를 즐겁게 사는 것.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것.
우동혁 목사 (만남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