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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122]
 
 
 
     
 
 
 
작성일 : 23-02-23 00:10
   
속솜하라!
 글쓴이 : dangdang
조회 : 1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9028 [112]


 

속솜하라!

 

(<미끄러지는 말들>, 백승주, 타인의사유, 2022)

 

“건설업 종사자들이 점점 자신의 하는 일에 숙련되어 갈수록 이들은 점점 더 많은 일본어투의 말들을 능숙하게 사용하게 될 것이다. 개인적 차원에서 이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자랑스러워해야 하는 일이다. 이 말들은 땀을 흘리며 그들의 몸으로 익힌 언어, 직업인으로서 자신의 능력이 얼마만큼 성장했는지 보여주는 언어이기 때문이다.”(48)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하이데거의 유명한 명제가 있다. 언어가 사용자의 존재를 규정한다는 의미라 하던가. 부정확한 풀이일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말과 사람의 관계는 그토록 긴밀하다. 어휘력이 좋을수록 감정의 농도가 깊고, 또 감정의 폭이 넓을수록 어휘력이 풍부할 것이다. 어떤 언어를 쓰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성품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존비어 체계로 존대말과 반말 사이의 비대칭적 권력, 위계질서에 길들여지기도 하고, 수평어를 통해 누구와도 동일한 눈높이로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 절로 함양되기도 할 것이다.

 

<미끄러지는 말들>은 국문학과 교수 백승주가 쓴 책으로, 우리 사회를 비판하는 이야기가 담겼다. 관광객들로 붐비긴 하나 우리나라에서는 변방에 해당하는 제주도, 지방 출신으로 겪었던 차별을 예민하게 감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의 시선은 확장되어 이방인들을 향하곤 했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예의가 없는지, 한국어를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을 어떤 방법으로 억압하는지 등등을 설명하는데, 저자의 신랄한 비판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텔레비전 예능프로그램에 경상도 억양과 사투리를 쓰는 남자들은 꽤 인기가 많다. 매스컴 속 여성들이 방언을 쓰는 경우는 드물다. 전라도보다 경상도가 힘이 더 세기 때문에, 비표준어를 쓰는 여성의 목소리를 잘 듣지 않기 때문 아니겠는가. 이런 맥락도 있다. 긴급재난 문자 서비스는 오로지 한글로만 전해진다. 전염병 재난의 교훈이 ‘국적, 인종, 성별, 사용 언어 등등의 여부를 떠나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인데, 어리석게도 우리는 그 진실을 적극적으로 망각한다. 한국 땅에서 살고있는 외국인들이 200만 명이 훌쩍 넘는데, 그들을 이웃으로 대하기를 한사코 거부한 꼴이다. 타자화하고, 억압하는 게 일상화되어 있다.

 

언어에 우생학을 대입하기도 한다. 우리말을 못하는 유색인종을 얕잡아보고,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백인을 우러러 본다. 대중매체는 집요하게 대비시킨다. 부자 나라에서 온 백인들은 집중조명을 받으며 한국 사회에 대해 비판적이고 진지한 이야기를, 고급 관용구와 낱말을 동원하면서 유려한 한국말로 내뱉는다. 반면, 가난한 나라에서 온 육체노동을 하는 이들은 어떤가. 어눌한 말투의 사람들만이 방송을 탄다. 영화 <완득이>의 ‘완득모’ 역할의 이자스민이 낡아빠진 신발을 신고 잔뜩 웅크린 채 “미안해요”라고만 발화할 때 열광했던 이들은, 제19대 국회의원 비례대표로 한국의 다문화정책을 비판하는 이자스민을 차갑게 외면했다. 그게 왜 그리 권태롭게 느껴지는지 알 수 없다.

  

“분노는 극장의 감정이다. 분노는 동조해줄 관객이나 동료를 필요로 한다. … 분노할 때 사람들은 자신들이 진실의 편에 서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 분노 상품의 거간꾼들이 이용하는 게 바로 이 지점이다. … 혐오를 분노로 가공해 판매하는 한국의 분노 산업은 여전히 활황이다.”(91~94)

 

1970년대 어느 해 6월, 독일 광산 노조는 한국어로 쓴 파업 독려문을 뿌린 바 있다. 이는 한국어가 독일 사회를 작동하는 언어였음을, 또한 파독 광부들도 그 사회의 구성원이자 소통의 대상으로 간주되었음을 입증한다. 제주 4.3사건 때 가장 많이 발화된 말은 “속솜하라”였을 것이다. 이는 “조용히 하라”는 경고의 말이다. 국가로부터 강요당하고, 스스로에게 또 서로에게 던졌으리라 추정된다. 보이지 않는 존재가 있어서는 안 된다. 목소리를 빼앗아서는 안된다. 모두가 동등한 인간이다. 

 

“우리의 왕국은 보르헤스의 왕국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이제 우리는 모든 것을 시험이라는 틀로 포획하고 평가하며 통제할 수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 이 시험의 제작목표는 관리자에게 자신이 노동자들을 통제하고 있다는 감각을 선사하고, 시험에 의해 분류당한 노동자들에게 무기력과 굴욕감을 부여해 관리자의 통제에 굴종하게 하는 데 있었다.”(151)

 

김민호 목사 (지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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