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평등의 세대
<불평등의 세대>, 이철승, 문학과지성사, 2019
세대론의 여진이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어쩌면 세대론의 시작은 2007년 우석훈, 박권일이 함께 쓴 ‘88만원 세대’(레디앙)였다. 당시는 신자유주의가 본격화되면서 양극화가 심화 되고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도래할 무렵이었기에 특히 청년층들의 무력감이 극에 달해 소위 삼포 세대라는 말이 퍼져가던 때였다. 그때로부터 10여년이 지난 지금 세대논쟁이 어느 때보다 뜨겁다. 그 불씨를 지피는 역할을 한 책이 바로 ‘불평등의 세대’다.
지금도 뜨거운 논쟁의 중심에 있는 (5)86세대에 대한 아주 냉혹한 비평서다. 이 이야기는 1966년생인 내 인생이력과도 겹치는 게 많아 더욱 관심이 많이 갔다. 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성인(대학생)이 되어 20세기 후반기의 정점이 되는 민주화운동을 통해 부각된 소위 586(386, 486)세대의 목소리와 역할, 지분은 꾸준히 커져왔고, 지금도 그 정점에 올라 있다.
그런데 이제 돌아보면 386은 참 '운'(?)이 좋았다.
고도성장시기에 청소년 시기를 보내고, 갑자기 대학 정원이 크게 늘어났을 때 대학을 다녔고, 졸업후에도 어렵지 않게 취직하여, 기업에서는 90년대 세계화 이후 전자정보혁명의 첫세대가 되었고 그후 벤처 창업과 IT혁명의 국가적 지원도 먼저 받았다. 또 민주화세대라는 이름값으로 노동 및 시민운동의 주축을 형성할 수 있었고,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빠르게 정치인으로 성장할 기회도 얻었다.
반면, 세계적, 국가적 위기는 피하거나 오히려 기회로 삼을 수 있었다. 97~98년 IMF 위기 때 ´386은 아직 너무 어려서 칼날을 피했고, 2008년 금융위기 때 486은 이미 '시민운동-정치권-대기업-정규직'으로 굳은 연대망을 구축해, 다양한 비정규직 사슬망에 묶여 꼼짝 못한 후배 세대에게 어려움이 전가되며 살아남았다.
“386세대는 근 20년에 걸쳐 한국의 국가와 시장의 수뇌부를 완벽하게 장악했고, 아랫세대의 성장을 억압하며 정치권과 노동시장에서 최고위직을 장기 독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109쪽) “다른 세대를 압도하는 고위직 장악률과 상층 노동시장 점유율, 최장의 근속연수, 최고 수준의 임금과 소득점유율, 꺾일 줄 모르는 최고의 소득상승률, 세대 간 최고의 소득격차, 이 모든 것이 어떻게, 성장이 둔화되어 가는 경제에서 가능했을까?~바로 386세대의 상층 리더들이 다른 세대에게 돌아가야할 몫을 더 가져갔기 때문이다.”(130쪽)
이제 586이 된 이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오랫동안 사회지도층을 넘어 기득권층이 되어 있음에도 젊은 시절의 민주화만 되뇌이며 여전히 사회진보와 개혁을 수호자인 줄 생각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다같은 586이 아니다. 특히 '세대'라는 말에 주의해야 한다. 이 범주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살았고, 누려온 기득권층이라는 말이 아니다. 무엇보다 여성들이 그렇다. “386세대의 여성들은 동 세대 남성들과 달리, 애초부터 소수만 상층 노동시장에 진입했거나 진입한 자들도 장기간 생존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세대의 여성들은 육아를 어느 정도 완료한 다음인 40대에 노동시장에 돌아오더라도 상층으로 재진입하지 못하고, 중하층 노동시장-비정규직이나 파트타임-으로 진입했다. 따라서 386세대가 정치권과 시장에서 구축하고 향유한 상층 권력 네트워크는 철저히 남성 중심적인 것이었다.”(246쪽)
이 책이 나온후 586세대를 빗대 민주화세력을 공격하려는 보수세력의 교묘한 역공이라는 비판도 들려온다. 그러나 저자는 일부 586세대로 대표되는 중상위 기득권층의 수익과 이익대변 구조를 속히 줄이지 않으면 최고의 노인빈곤율과 최악의 출산율, 부모보다 가난한 대한민국 첫 세대로 구축된 우리나라의 미래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책 후반부에도 썼지만 586세대는 결코 하나로 묶을 수 없는 다양한 층위가 존재하고 문제는 세대와 세대 사이가 아니라 오히려 같은 (기성, 젊은) 세대 안에도 ‘꿀만 빠는’ 사람들이 있고 ‘흙만 파먹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방금 소개한 ‘불평등의 세대’에 대한 냉혹한 비판을 담은 책이 바로 ‘그런 세대는 없다’(신진욱, 개마고원, 2022년)이다. 그리고 이들보다는 아래로 요즘 뜨겁게 이야기되는 MZ 세대인 1980년대생들이 쓴 ‘추월의 시대’(김시우, 백승호 등 공저, 메디치, 2021년)도 있다. 더구나 이대남이니 이대녀니, 세대에 대한 이야기들은 끝이 없다.
그 중 어느 하나만 진실 또는 사실이고 나머지는 거짓이 아닐 것이다. 분명히 존재하나, 언제나 존재해 온 갈등인 만큼 우리는 또 극복해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도 세대론에 대한 다양한 시선들을 이번 기회에 한번 정리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구교형 목사 (성서한국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