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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123]
 
 
 
     
 
 
 
작성일 : 23-02-13 00:50
   
야생 붓꽃
 글쓴이 : dangdang
조회 : 3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8962 [96]


 

야생 붓꽃

 

<야생 붓꽃> 루이즈 글릭 지음, 정은귀 옮김, 시공사, 2022

 

 지난 늦가을 어머니가 급작스런 병환으로 돌아가신 후 한동안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했다.  목회하는 중에 많은 분들의 장례를 치루며 유족들을 위로하는 일을 해 왔지만 막상 내 어머니의 갑작스런 죽음 앞에선 속수무책이었다. 마음의 준비는커녕 영정사진조차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애들 휴대폰에 고인이 교회 마당에서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이 있어 그걸로 영정 사진을 대신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렇게 경황없이, 제대로 고인을 애도할 새도 없이 장례를 치루고 난 후에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무겁고 힘들었다. 이때 서점에서 찾은 책이 바로 루이즈 글릭의 <야생 붓꽃>이었다. 

시인은 죽음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겨울 끝의 황량한 정원, 마른 풀들, 꺾여버린 꽃대 등, 죽음과 절망의 터전에서 그것들이 죽지 않고 새로운 생명으로 피어오르는 봄과 여름의 이야기, 부활의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루이즈 글릭이 여류 시인으론 드물게 2020년 노벨문학상을 탔다는 언론 보도를 보긴 했지만 그동안 그의 작품을 접해 보진 못했다. 미국의 대표적 시인이었지만, 그의 작품이 여태까지 우리나라에 번역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2022년에 시공사에서 <야생 붓꽃> <아베르노> <신실하고 고결한 밤>을 한국 외국어 대학교 영어 영문학과 정은귀 교수의 번역으로 연속 출간했다. <아베르노>는 2006년에 나온 열 번째 시집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을 때 스웨덴 한림원에서 연급한 작품이었다.  

 

 <야생 붓꽃>은 1992년에 출간한 여섯 번째 시집으로, 시인에게 퓰리처상을 안겨준 시집이었다. 뉴잉글랜드의 한 정원을 “겨울의 끝”(22)에서 “여름의 끝”(66)까지 관찰하며, 그 관찰 속에서 죽음까지 다다를 뻔했던 자신의 아픔 경험을 대입하여 54개의 연작시로 표현했다.

 시가 좀 어렵다. 그래서 별책부록으로 나온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세 개의 모놀로그 혹은 한 개의 트라이얼로그>와 옮긴이의 말 <꿀벌이 없는 시인의 정원에서>를 참조하면 시인의 정원을 산책할 때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신형철 평론가는 <야생 붓꽃>은 세 가지 목소리가 있다고 했다. 첫째 목소리는 시인의 정원에 있는 야생 붓꽃, 연령초, 광대 수염꽃, 눈풀꽃, 산사나무, 제비꽃 등 19종의 꽃과 풀들의 소리이다. 이 식물들은 인간을 향해 말한다. 

 

 “내 고통의 끝자락에/ 문이 하나 있었어.// 내 말 좀 끝까지 들어봐: 그대가 죽음이라 부르는 걸 / 나 기억하고 있다고 /... 끔찍해, 어두운 대지에 파묻힌 / 의식으로 / 살아남는다는 건 // 그러고는 끝이 났지: 네가 두려워하는 것, 영혼으로 / 있으면서 말을 하지/ 못하는 상태가 갑자가 끝나고, 딱딱한 대지가 / 살짝 휘어졌어. 키 작은 나무들 사이로 / 내가 새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빠르게 날고. // 다른 세상에서 오는 길을 / 기억하지 못하는 너, / 네게 말하네. 나 다시 말할 수 있을 거라고: 망각에서 / 돌아오는 것은 무엇이든 / 목소리를 찾으러 돌아오는 거라고://(14, 야생 붓꽃 일부)

 

 겨울이면 야생 붓꽃이나 눈풀꽃, 흰 백합은 지상에서 어떤 생명도 가지고 있지 않은, 그래서 죽은 것처럼 보인다. 시인은 그러나 다시 봄기운을 맞으며 땅 위로 싹을 내고 잎을 내고 꽃대를 올리는 그 과정을 설명하며, 죽음은 끝이 아니라는 희망의 목소리를 인간에게 들려주고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 

 

 둘째 목소리는 정원사이자 시인, 곧 인간의 목소리이다. <아침 기도> 7편 <저녁 기도> 10편이 바로 인간의 소리이다. 두 번째 <아침 기도>에서 기도하는 정원사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를 연상하게 한다. “닿을 수 없는 아버지, 우리가 처음 / 천국에서 추방되었을 때 당신은 모형을 / 하나 만들었지요, 어느 점에선 / 천국과 다른 장소, 교훈을 주려고 고안한 거죠...” (14, “아침 기도” 중)시인의 정원은 에덴 낙원과는 다른 장소, 곧 노동하는 공간이다. 

 

 시인은 “사랑을 되돌려 주는 것만 사랑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 아니란 것을 ”알고는 있지만 

에덴 낙원이 아닌 이 정원에선 사랑한다는 말은 용서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약자인 인간이 강자인 신에게 겁에 질려 행하는 거짓말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 당신 사랑한다 말하면 나를 용서해 줘요: 약자가 언제나 겁에 질려 내몰리니까” (24, “아침 기도” 중) 

 

 정원사, 곧 시인은 신에게 말한다. “내가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알고 싶지요? / 나는 잡초를 뽑는 척 하며 앞마당 잔디를 거닐어요. 당신은 아셔야 해요, / 무릎 꿇고, 꽃밭에서 토끼풀 뭉텅이 뜯어내면서 / 내가 잡초를 뽑고 있지 않다는 것을: 사실 / 난 용기를 찾고 있는 중이에요, 내 인생이 바뀔 거라는 어떤 증거를 찾고 있어요...”(40, “아침 기도” 중 일부), 정원사인 시인은 정원을 가꾸는 일 속에서 실상은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는 용기와 어떤 계기를 찾고 있음을 토로한다. 

 

 세 번째 소리는 바로 신의 소리이다. 여기서 신은 정원의 모든 식물들과 인간에게 영향을 끼치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순차적으로 나타나는 계절 현상”이다.”(부록 18) 이 시집에서 나오는 계절은 겨울 끝에서 구월의 황혼까지이다. 그러니까 시간 정보가 포함된 시편들, 곧 “맑은 아침”, “봄 눈”, 겨울의 끝“,  한 여름, ”구월의 황혼“ 등 17편이 바로 신의 목소리인 셈이다. 

 

 이미지를 통해서만 말해 왔던 신의 말이 자꾸 인간에게 이의 제기를 당하니까 이제 인간에게  명료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겠다고 말한다. 즉 자기만이 절망적이고, 자기의 절망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인간에게 말한다. “너는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 침묵과 어둠을 / 사랑하는 법을 사람은 배워야 해.”(89, “자장가” 일부) 라고 말한다. 

 

 신형철 평론가는 시인 한 사람이 “세 개의 목소리를 창조해 내고 그것들 사이에 이토록 팽팽한 힘의 균형을 이뤄내는”(부록, 25), 제 내면을 탐사하고 이를 건축적으로 설계해 낸 장엄한 시도“라고 했다. 

 

 사실 여러 차례 읽어도 선뜻 시어와 그 의미들이 명료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래서 출판사에서 별책 부록으로 평론집을 제공하는 친절을 베풀어 준 것 같다. 아무튼 시인의 정원을 거닐며, 꽃과 나무와 풀들을 검색하며, 자연의 소리, 인간의 기도, 신의 소리를 들어보시길 바란다. 

 

김수영목사(대영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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