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의 사물들
<철학자의 사물들>, 장석주, 동녘, 2013
인간은 소유하며 소비하는 존재입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소유와 소비를 멈출 수 없습니다. 사람은 갖가지 물건을 지니고 삽니다. 집이라는 공간에도 필요한 것 뿐 아니라 없어도 좋을 물건들까지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어느 집에 들어서면 그 집에 놓이거나 걸린 물건들을 보면 그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짐작하게 됩니다. 사물들은 인간의 내면을 비춰주는 거울입니다.
장석주 시인이 쓴 <철학자의 사물들>이 있습니다. 저자는 사물들을 다섯 가지로 분류했습니다.
관계: 신용카드 휴대전화 세탁기 진공청소기.
취향 : 담배 선글라스 비누 면도기.
일상 : 가죽소파 탁자 침대 변기 카메라 텔레비전.
기쁨 : 책 사과 냉장고 조간신문.
이동 : 시계 구두 여행가방 우산.
저자는 사물들을 오래 유심히 바라보고 사유하며 그것이 철학의 일부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시인이 철학적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본 그 시선이 궁금합니다.
이 책에서 가장 먼저 소개되는 사물은 <신용카드>입니다. 그 첫 문장은 ‘마법을 가진 사물, 불행을 치유하는 마법을 가진 이것을 소지한다면 자본주의의 천국으로 들어서고, 금융 낙원의 소비생활에 참여할 수 있다. 이것이 신용카드다’라고 시작합니다. 누구나 카드 한 장은 소유하고 있을 겁니다. 가로 8.5센티미터, 세로 5.4센티미터로 무게감을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로 가볍습니다.
다음으로 소개 되는 사물은 <휴대전화>입니다. 국수를 먹고 있을 때, 책을 읽고 있을 때,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고 있을 때, 지하철을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을 때, 하루 일과를 끝내고 소파에서 쉬고 있을 때, 휴대전화가 울립니다. 휴대전화는 생각을 끊고, 일을 중단시키고, 생활의 질서는 헤쳐 놓습니다. 그럼에도 휴대전화를 없애지 못하는 까닭은 타자들과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휴대전화는 점점 작아지고 가벼워지며 성능이 향상되고 있습니다. 휴대전화 안에는 보고, 듣고, 만지고, 즐길 수 있는 모든 것이 내장되어 있습니다. 전화뿐 아니라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는 등 인간의 거의 모든 욕구에 응답합니다. 저자는 휴대전화를 인류 진화의 사물적 측면이 아니라 종교적 측면으로 보아야 마땅하다고 말합니다. 휴대전화 사용자는 그것에 맹신하며 전적으로 의존하는 종교적 실존으로 달려가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서 한 가지 더 소개를 한다면 <카메라>입니다. 카메라는 놀라운 매력이 있습니다. 카메라의 셔터가 눌리는 순간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우주 역사에 단 반 번밖에 일어나지 않는 모습이 영원히 사진 속에 정지하여 기록으로 남습니다. 사진은 ‘멈춤’ ‘얼어붙음’입니다. 웃는 사람은 그 웃는 모습이 정지되고, 우는 사람은 우는 모습이 그대로 얼어붙게 됩니다. 이제는 휴대전화 하나에 카드도 들어 있고, 고성능 카메라도 들어있습니다. 휴대전화야 말로 현대인들이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사물이 되었습니다.
<신용카드>는 소지하고 있지만 ‘신용’을 잃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휴대전화>가 없으면 불안 증세를 보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정작 가장 중요한 창조주 ‘하나님’을 잃고서도 무감각하지 않은지 뒤돌아 볼 때입니다.
이기철 (응암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