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해의 사역
(<화해의 사역>, 로버트J. 슈라이터, 임상필 역, 한국장로교출판사, 2004)
사순절이 다가왔다. 40일간 이어지는 이 기간에 그리스도인들은 기도 혹은 금식으로 예수의 고난과 죽음에 동참한다. 그러나 사순절의 진정한 의미는 부활에서 완성된다. 부활은 세상의 악과 불의를 이긴 하나님의 능력이기에 과거의 상처와 아픔을 딛고 새로운 미래의 꿈을 꾸게 한다.
<화해의 사역>의 저자 로버트 슈라이터는 사복음서의 예수의 부활 이야기들을 화해의 이야기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읽고 있다. 혼동과 두려움으로 빈 무덤을 찾은 여인들, 실망과 좌절을 품고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 두려움에 떨며 다락방에 숨은 제자들, 의심하는 도마 이들 모두 부활한 예수를 만난 후 더이상 이전의 사람에 머물러 있지 않고 부활의 증인이 되었다. 이러한 복음서의 부활이야기 중 슈라이터는 티베리아 호숫가에서 부활한 예수가 제자들과 나눈 조반 이야기(요한복음 21:1-17)를 화해 사역의 가장 모범적인 모델임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화해 사역의 첫 번째 단계는 고난받는 피해자들의 아픔의 현장에 동참하는 것이다. 예수의 죽음 이후 제자들은 이전의 삶의 자리인 갈릴리 어부로 돌아간다. 온밤을 꼬박 지새웠지만 그들의 그물은 텅 비어 있다. 이는 폭력과 불의의 피해자들이 경험하는 것과 유사하다. 그들이 듣고 보고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과거의 트라우마가 다시 기억되기 때문이다. 바로 그 아픔의 현장에 피해자와 함께 있는 행위는 유대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화해의 두 번째 단계는 환대다. “자 이리 와서 아침을 먹어라!” 예수는 제자들에게 친숙한 음식을 요리하고 식사 자리로 그들을 초대한다. 화해는 과거를 잊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기억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환대는 화해 사역의 핵심이다.
화해 사역의 세 번째 단계는 피해자의 온전한 관계 회복이다. 아침 식사 후 예수는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고 질문한다. 예수의 질문은 베드로를 단절 되어졌던 공동체로 다시 이어 준다. 피해자는 종종 공동체와 단절되거나 심지어 고립된다. 왜냐하면 그곳이 바로 폭력을 경험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공동체와의 재 연결은 진실을 확인하는 일이고, 피해자 자신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진정으로 회복하는 행위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배신과 자신에게 행해진 폭력에 대한 옳은 판결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사랑에 대해 말씀하신다. 이렇게 부활의 은총은 죽임을 당하신 예수의 인성과 신성이 회복된 하늘의 은총이다. 참으로 화해는 부활의 경험이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화해 사역에 참여하는 것이다.
화해 사역의 마지막 네 번째 단계는 파송이다. 예수는 베드로에게 양을 먹이라고 사명을 부여하신다. 예수는 제자들을 공동체에 다시 연결시켜 주셨을 뿐만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책임과 임무를 부여하신다.
오늘날 우리는 전 세계에 수많은 내전 및 인종간의 분쟁과 갈등을 목격한다. 슈라이터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화해의 사역에 헌신한 교회의 12가지 사례를 모은 <화해의 사람들: 교회가 직면한 도전들>을 소개하면서 21세기 교회 선교의 사명이 화해의 사역임을 강조한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한국교회와 세계교회협의회의 에큐메니칼 화해 사역을 12가지 사례 중 하나의 사례로 들고 있다. 슈라이터는 화해 사역을 그리스도 안에서 화해를 이루신 하나님이 교회에 부여하신 막중한 사명(고린도후서 5:18)임을 일깨워 주고 있다.
김진양 (연합감리교회 세계선교사, 세계교회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