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노하라
스테판 에셀(임희근역), 돌베개, 2011.
요즘 '어른이 없다‘라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주변에 나이 많은 이가 왜 없겠냐마는 존경할만한 선배가 흔치 않다는 항변 아니겠는가! 필자 역시 이만큼 나이를 먹으니 수긍이 간다. 나이 들어서도 젊은 시절 지녔던 뜻을 변함없이 지켜나가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다. 적당히 타협하고 몸 사리는 게 일상이 되곤 한다. 어느 유행가 가사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다’라고 노래했지만, 그조차 마뜩잖다. 비겁한 변명처럼 들려서 말이다. 그런데 여기 구순이 넘어서도 여전히 세상을 향해 청년의 기백으로 분노하는 이가 있다. 스테판 에셀이 바로 그 사람이다.
에셀은 프랑스의 레지스탕스이자 사회운동가로, 1917년 독일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1939년 프랑스로 귀화했다. 2차세계대전 당시 레지스탕스로 활동하다 체포되어 처형될 위기에 처했지만, 유창한 독일어 실력 덕분에 극적으로 살아남았다. 전쟁이 끝나고 외교관으로 일했다. 특별히 1948년 유엔 세계인권선언문 초안 작성에 참여했고, 유엔 주재 프랑스대사, 유엔 인권위원회 프랑스 대표를 지냈다.
<분노하라>는 스테판 에셀이 92세가 되던 2010년 출판된 표지 포함 34쪽의 소책자이다. 에셀은 전 해인 2009년 ‘레지스탕스의 발언’이라는 연례 모임에서 젊은이들에게 ‘분노할 의무가 있다’라는 즉흥 연설을 했는데, 그것이 이 책의 주 내용이다. <분노하라>가 프랑스 사회에 던진 충격은 대단했다. 2010년 10월 초판 8,000부가 일찌감치 완판되고, 불과 7개월 만에 200만 부가 팔렸다. 언론은 100년 전 드레퓌스 사건을 통해 프랑스의 인권 문제를 제기한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에 버금가는 ‘사건’이 일어났다고 대서특필했다. <분노하라>는 세계 35개국에서 번역되어 3,500만 권 이상이 팔렸다. 스테판 에셀은 2013년 2월 27일 숨졌다. 그의 장례식에는 프랑스의 올랑드 대통령을 비롯해 수많은 시민이 참여해 한 세기를 살아낸 투사의 죽음을 추모했다.
에셀이 <분노하라>에서 젊은이들에게 던지는 화두는 ‘분노’이다. 그는 전후 프랑스 민주주의의 토대가 된 레지스탕스 정신이 반세기 만에 무너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프랑스가 처한 작금의 현실에 대해 ‘분노하라!’고 외친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사회 양극화, 외국 이민자에 대한 차별,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계 금융자본의 횡포에 저항할 것을 주문한다. 무관심이야말로 최악의 태도이며, 인권을 위협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찾아가 기꺼이 힘을 보태라고 뜨겁게 호소한다.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만연한 정치적 무관심과 체념을 떨쳐버리고 더 나은 세상을 꿈꾸라고 호소한 그의 외침은 전 세계적으로 분노 신드롬을 불러일으켰으며, 미국 뉴욕의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과 스페인의 ‘분노한 사람들’ 운동 등을 촉발시켰다.
“레지스탕스의 기본 동기는 분노였다. 레지스탕스 운동의 백전노장이며 ‘자유 프랑스’의 투쟁 동력이었던 우리는 젊은 세대들에게 호소한다. 레지스탕스의 유산과 그 이상(理想)들을 부디 되살려달라고, 전파하라고. 그대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제 총대를 넘겨받아라. 분노하라!”고. 정치계·경제계·지성계의 책임자들과 사회 구성원 전체는 맡은 바 사명을 나 몰라라 해서도 안 되며, 우리 사회의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국제 금융시장의 독재에 휘둘려서도 안 된다.” (15쪽)
진광수 목사 (바나바평화선교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