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상한 취미 또는 불필요한 사치?
<정원의 쓸모> 수 스튜어트 스미스, 고정아, 윌북, 2021
땅을 가꾸는 일, 특별히 농사에 대해 우리는 양가적 감정을 갖고 있다. 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고 고마운 일이면서 고된 노동으로 피하고 싶은 마음의 양극을 오가는 농사는 에덴동산의 풍요로운 은총과 금단의 열매를 취한 결과로 땀 흘리며 경작해야만 소출을 얻을 수 있는 저주로 해석된다. 흙을 밟기는커녕 만져보기도 어려운 도시인들과 삶의 현장인 농업인에게 식물이 자라는 땅은 어떤 의미일까?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 치료사인 수 스튜어트의 <정원의 쓸모>은 자신이 만난 사람들의 정서 또는 심리적 문제가 땅을 가꾸고 흙을 만지는 원예활동(gardening-정원과 텃밭활동 아우르는 말)을 통해 어떤 영향을 주는지 이야기하는 책이다. 이 책에는 애착과 분리, 신경증, 전쟁으로 인한 트라우마, 범죄심리, 사회심리 등의 이야기를 하면서 원예를 통해 치유되고 회복되는 사례들을 담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저자의 말처럼 일반적으로 원예는 ‘고상한 취미’ 또는 ‘불필요한 사치’, ‘저급한 육체노동’으로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흙을 파고 가지를 치고 잡초를 뽑는 일은 모두 파괴를 통해 성장을 북돋는 돌봄의 형태다. 흙을 일구면 공격성과 불안을 방출하게 되고, 그에 따라 외부뿐 아니라 내부의 풍경도 바뀐다. 원예는 본질적으로 변화를 일으키는 행위다.” 원예라는 단순한 노동이 우리의 안과 밖을 가꾼다.
무엇보다 원예는 현실감각을 잃어버리지 않는 가운데 우리를 변화시킨다. “안전한 정원이라는 공간은 마치 정지된 시간처럼 우리 내면 세계와 외부 세계가 일상생활의 압력을 떨치고 공존할 수 있도록 이끈다. 그래서 정원은 가장 내면적이고 꿈이 가득한 자신과 현실의 물리적 세계가 만나는 ‘사이’공간이 된다. 정원은 집과 그 너머 세상의 ‘사이’에 있기 때문에 이행(transitional)공간을 구현한다.”
정원이란 이행공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정원 가꾸기에는 이미 진행 중인 상황을 깨닫는 일이 포함된다. 되는 일과 되지 않는 일에 대한 이해를 정교하게 만들고 발전시켜야 한다. 기후, 땅, 그 안에서 자라는 식물을 포함해서, 장소 전체와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씨름해야 하는 현실이고, 그 과정에서 어떤 꿈들은 포기해야 한다.” 할 수 없는 것에 메달려 고통받기보다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도록 ‘사이’공간은 삶의 태도를 바꾸게 하고 그 과정 중에 우리를 치유한다.
전쟁, 기후위기, 정쟁과 경제적 불안감이란 이름으로 비관주의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이런 우리에게 저자는 ‘나는 인생에서 분별 있는 일 한 가지, 즉 땅을 경작하는 일을 했을 뿐이다.’ 볼테르의 말과 함께 이렇게 조언한다.
“경작은 양방향으로 –외적 방향뿐 아니라 내적 방향으로도- 작동하고, 정원을 돌보는 것은 인생에 대한 태도가 될 수 있다. 기술과 소비의 지배력이 점점 커지는 세상에서, 원예는 생명이 태어나고 유지되는 현실, 생명의 연약함과 찰나성에 직접적으로 접촉하게 해준다. 지금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우리 자신이 다른 무엇보다 땅의 창조물임을 상기해야 한다.”
한 평의 땅을 가꿀 여력이 없다면 창가에 작은 화분을 옆에 두고 ‘우리 인생, 우리 공동체, 우리가 기거하는 환경’을 가꿔보자.
이원영 목사(예장통합총회농촌선교센터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