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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123]
 
 
 
     
 
 
 
작성일 : 23-01-26 03:57
   
낙관적이고 평범한 미래를 위해
 글쓴이 : dangdang
조회 : 3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8870 [112]


 

낙관적이고 평범한 미래를 위해

 

(<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문학동네, 2022)

 

 

어린 시절 시골 장터에 가면 매번 만병통치약을 파는 약장수가 있었습니다. 천하에 다시 없을 명약을 소개하는 약장수는 늘 “한 번 잡싸봐~”라는 말로 약선전을 시작했습니다. 약의 효능에 대해 구구절절히 설명은 하겠지만 먹어보지 않고는 모른다는 뜻이었습니다. 먹어본 사람만 알 수 있는 그 맛, 그 효능.

 

김연수 작가의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소개하는 제 심정이 그렇습니다. “한 번 읽어봐!” 이야기에는 힘이 있습니다. 이야기를 읽고, 생각하고, 상상하는 그 과정에서 상처를 들여다보게 하고, 새로운 세계를 꿈꾸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어떤 서평이나 잘 요약된 줄거리를 보는 것으로는 가질 수 없는 이야기의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토록 평범한 미래>는 한 번 읽어보라는 말 이상의 어떤 설명을 하기가 조심스럽습니다. 이 소설이 가진 이야기의 힘을 해칠 것 같아서.

 

김금희 작가는 “최근 한국사회가 맞닥뜨린 공동체적 불행과 패배에 대해, 김연수는 그만의 깊숙한 언더라인들을 새롭게 긋고 있다.”고 이 책을 소개합니다. 2022년 가을, 김연수 작가가 바라보았던 한국사회의 불행과 패배는 무엇일까. 그것이 무엇인지 작가는 정확하게 언급하지 않습니다. 다만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말할 뿐입니다.

 

“한동안 괴로운 마음에서 좀체 벗어나지 못했다. 마음의 괴로움 앞에서 내가 무기력했던 이유는 그게 두번째 화살이기 때문이었다. (중략) 두번째 화살을 맞지 않기 위해서는 만족스럽지 않고 때로는 고통스러울지라도 지금 이 순간의 세상을 품에 안아야 한다. 그게 바로 첫번째 화살을 뽑는 일이다.”(작가의 말 中)

 

모든 좋은 변화는 한번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십 리 길도 한 걸음 부터라는 속담처럼, 조금씩 좋아지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바라던 좋은 결과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원하는 만큼 만족스럽지 않다고 침을 뱉고 돌아서면 조금 나아간 그마저도 빼앗깁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미래를 상상하고 기억하는 인내와 능력이 필요합니다.

 

“과거는 자신이 이미 겪은 일이기 때문에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데, 미래는 가능성으로만 존재할 뿐이라 조금도 상상할 수 없다는 것. 그런 생각에 인간의 비극이 깃들지요.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오히려 미래입니다.”(이토록 평범한 미래 中)

 

괴로움 속에 있으면 풍경이 바뀝니다. 나를 괴롭게 만드는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스스로 풍경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보고 싶은 풍경, 낮선 거리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말입니다. 나를 가볍게 하는 행복한 것들을 더 많이 생각할 수도 있고,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기로 마음 먹을 수도 있습니다. 나를 무겁게 하는 것들 속에서 가겹고 즐거운 것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비관에 침몰되지 않고 무거운 오늘을 이겨낼 힘이 생깁니다.

 

“오래전 비트겐슈타인의 책에서 ‘그러나 당신은 실제로 눈을 보지는 않는다’라는 문장을 읽고 그 혜안에 놀라서 뒤로 넘어갈 뻔한 적이 있어요. 우리는 원하는 걸 다 볼 수 있지만, 그것을 보는 눈만은 볼 수가 없죠. 보이지 않는 그 눈이 우리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보지 않을 지를 결정하지요. 그러니까 다 본다고는 하지만 사실 우리는 우리의 눈의 한계를 보고 있는 셈이예요.”

 

내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은 내 눈의 한계일 수 있습니다. 신앙의 힘은 지금 넘어를 보는 능력입니다. 지금 너머를 기억한다면 지금 좀 심하게 넘어졌다고 해서 좌절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또한 지나갈테고, 오르막길이 끝나는 곳에 내리막 길이 있습니다. 더 먼 곳을 바라보는 안목이 살아가는 풍경을 바꿉니다.

 

“글쎄. 난 세상은 점점 좋아진다고 생각해. 지금 슬퍼서 우는 사람에게도. 우리는 모든 걸 이야기로 만들 수 있으니까. 이야기 덕분에 만물은 끝없이 진화하고 있어. 하지만 난 비관주의자야. 이상한 말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세상을 좋은 곳으로 만드는 데 비관주의가 도움이 돼. 비관적이지 않으면 굳이 그걸 이야기로 남길 필요가 없을 테니까. 이야기로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인생도 바꿀 수 있지 않겠어? 누가 도와주는 게 아니야. 이걸 다 우리가 할 수 있어. 우리에게는 충분히 그럴 만한 힘이 있어. 그게 나의 믿음이야. 하지만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순간은 찾아와. 그것도 자주. 모든 믿음이 시들해지는 순간이 있어. 인간에 대한 신뢰도 접어두고 싶고,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을 것 같은 때가. 그럴 때가 바로 어쩔 수 없이 낙관주의자가 되어야 할 순간이지. 아무리 세찬 모래 폭풍이라고 할지라도 지나간다는 것을 믿는, 버스 안의 고개 숙인 인도 사람들처럼. 그건 그 책을 읽기 전부터 너무 잘 아는 이야기였어.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에게 수없이 들었던 이야기이기도 하고, 지금도 책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야기이기도 하지. 그분들은 왜 그렇게 했던 이야기를 하고 또 할까? 나는 왜 같은 이야기를 읽고 또 읽을까? 그러다가 문득 알게 된 거야. 그 이유를.”

 

“그 이유가 뭔데?”

 

“언젠가 그 이야기는 우리의 삶이 되기 때문이지.”(바얀자그에서 그가 본 것 中)

 

우리는 우리가 살아갈 평범한 미래를 기억하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머지 않아 우리의 삶이 될 낙관적이고 평범한 미래를.

 

“하지만 이제는 안다. 우리가 계속 지는 한이 있더라도 선택해야만 하는 건 이토록 평범한 미래라는 것을.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한 그 미래가 다가올 확률은 100퍼센트에 수렴한다는 것을.”(이토록 평범한 미래 中)

 

인터넷에 유행했던 짤이 있습니다. “내가 무릎을 꿇은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그것이 우리가 기억해야할 미래입니다.

 

우동혁 목사 (만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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