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은 지금 무엇을 하려는가?
(<일상에서 만나는 생태교육과 영성> 김진희, 좋은땅, 2020)
옳고 바른말, 게다가 정곡을 관통하는 말은 여차하면 잔소리가 된다. 나무라거나 채근하는 어조를 견디지 못하고 누군가 무엇이라도 주장하는 꼴이 보기 싫다. ‘꼰대’라는 질환의 증상이 심각하다.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이 증상을 들킬까봐 피곤하게 지내왔다. 설교를 듣는 일도 삐끗하면 불편해지는 마당에 자기계발 서적이 눈에 찰까? 마음속 가장 깊은 서랍에서 서로 같은 물건을 꺼내 들고 마주 선 것처럼 크게 공감했던 게 언제이던가? 애먼 숫자가 꼭 나이를 말할 때면 어감이 꼴사나워지는 것처럼 문득문득 사람 꼴이 형편없어진다. 언젠가 치료제가 나올지도 모르니, 그게 비쌀 수도 있으니 지금부터라도 돈을 모아야 하겠다. 은혜가 아니면 소통을 할 수가 없다.
<일상에서 만나는 생태교육과 영성>은 새어나오는 ‘아멘’을 참으며 읽어야만 했다. 나는 짜장 저자처럼 이렇게 말했어야 했고, 이렇게 말하고 싶다. 딱 한 가지 공감하지 못한 것은 제목이다. 내가 만약 이렇게 좋은 글을 썼다면 좀 더 ‘그럴싸한’ 제목을 달기 위해서 골머리를 앓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 제목은 나 같은 대안학교 교목 정도만 혹할, 딱 그 정도이지 않은가? 제목에도 표지에도 음흉한 꾀를 찾아볼 수 없다. 책을 다 읽은 이후에는 이도 저자의 어떠함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아서 좋아졌다. 책에 줄을 그으며 읽다가 그만두었다. 색연필에 온통 짓눌린 책장들이 덮이면 책이 뚱뚱해질 것 같아서다. 책마저 그리 될 필요는 없다.
책의 내용은 고등학교에 사표를 내고 충남 예산 안골마을에 내려가 사는 사람 이야기이다. 그 사람의 생각, 신앙, 교회, 마을, 하늘숨학교를 둘러싼 이야기다. 저자라고 쓰지 않고 사람이라고 적은 이유는 책을 읽은 사람들만 알게끔, 설명하지 않을 테다. 이렇게 얄미운 짓을 해서라도, 뉘라도 이 책을 읽으면 좋겠다. 책을 읽으며 설교가, 수업이, 방향과 활동이 떠오르다가 사는 이유를 떠올리고 누군가가 그것을 긍정해주는 ‘그냥 좋은’ 경험을 했던 나처럼 누군가가 그랬으면 좋겠다. 자녀를 낳아 기르고 가르치는 일상에 켜켜이 내려앉은 숭고와 거룩 위에서 뛰놀았으면 좋겠다. 하얗게 내린 눈 위에 처음 발자국을 찍는 아이처럼 다시 설렜으면 좋겠다.
처음부터 끝까지 글을 몰라서는 참여할 수 없는 예배. 예배가 그 누군가에게 절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40)
어른들이 사랑하기를 포기하고 경쟁을 부추기는 그 순간 아이들은 돈을 벌기 위한 체제의 부속품으로 전락하고 만다.(43)
왜 예수를 믿는가? 왜 예수를 따르는가?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묻는다면 나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멋있기 때문에!” 거창한 답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짧지 않은 세월을 살면서 예수처럼 멋있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삶 자체로 나를 그렇게 설득한 존재를 만나지 못했다.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나는 예수를 따른다. 한 번 사는 인생이라면 예수처럼 살다 가고 싶다.(150)
기독교 영성 수업은 산돌학교의 학생들이 졸업하기 전에 반드시 들어야 하는 필수 수업이다. 그 수업에서 복음서에 나온 예수님 이야기를 듣고 자기 생각을 나눌 때 ‘멋있다’라고 말하는 학생들이 종종 있다. 그렇게 말하는 학생은 전부 비신자 학생이다. 그게 예수님에 대한 솔직한 첫 느낌인 것은 놀랍지 않은 일이다. 예수님은 멋있기 때문이다. 믿고 따르는 자가 결코 간과할 수 없을 만큼. 교리의 예수님만 기억하고 예수님의 멋짐을 잊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어쩌면 지리멸렬하게 느껴질 수 있는 우리네 일상이 의미를 입고 멋져지게.
김국진 목사 (산돌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