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본에 충실한 나라
(<기본에 충실한 나라, 독일에서 배운다>, 양돈선, 미래의 창, 2018)
‘이게 나라냐?’ 정부와 당국이 집단 위험에 빠진 국민을 구조하지 않고, 국가 시스템이 사적 용도로 전용되는 참담한 경험들을 겪으며, 우리 국민들이 내뱉는 탄식이다. 그럴 때마다 이런, 저런 나라들을 나열하며 우리가 따라갈 모델로 제시하곤 한다. 그러나 중요한 건 부럽다고 무조건 따라가야 하는 게 아니라 우리 상황과 실정, 수준에 맞느냐다.
내가 독일을 생각할 때 가장 우수한 강점은 허위와 거품을 최대한 거둬낸 ‘명실상부’(名實相符)함일 것이다. 이는 모든 것을 서열로 정해 오직 1등만을 목표로 하지만, 그 목표도 이루지 못할뿐더러 정작 중요한 가치들은 다 놓치는 우리의 허구에 대한 반성이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 ‘독일’은 자동차를 비롯한 기계부품을 잘 만드는 나라, 맥주의 나라, 축구 좀 하는 나라쯤으로 알려졌다.…경제적·사회적 측면에서 사실 독일은 1등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별로 없다.…하지만 독일은 전형적인 외유내강의 나라다.…내면적으로는 현재 거의 모든 면에서 세계 최고를 달리고 있다.”(책 15, 16쪽)
우선 우리가 가장 골머리 썩고 있는 정치다. 당장 독일정치 하면 16년 동안 재임하면서 독일을 넘어 실추된 미국을 대신하는 서방세계 대표 지도자로 이름을 떨친 메르켈 전 총리가 떠오른다. 그런데 그저 메르켈의 탁월함을 칭송하고 끝날 일이 아니다. 이 책을 읽으면 독일정치가 메르켈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독일정당은 정책 정당으로의 역사가 길고, 연정과 비례대표를 충실하게 반영하여 독불장군식 정치가 차단되며 다른 정당과 국민들을 설득하는 정책중심, 실력중심의 정치를 구현한다. 독일정치는 한국 등과 달리 안철수, 윤석열처럼 ‘엉뚱한 일’(?) 하다가 갑작스레 인기를 얻으면 벼락출세하여 정당 대표가 되고, 대통령이 되는 일이 없다. 메르켈은 물론 역대 총리들은 어려서 또는 일찍부터 정치에 입문해 착실히 행정과 정치의 경험을 쌓은 전문정치인들이다(18~61쪽 참조).
독일경제는 1949년 서독 건국 이후 지금까지 ‘사회적 시장경제’라는 독특한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의 개념에서는 항상 ‘사회(적)’과 ‘시장경제’는 모순이며 대립이다. 자유와 평등, 남한과 북한, 무신(無信)과 유신(有信), 인본주의와 신본주의를 전혀 별개로 엄격히 나누는 것과 같다. 사회적 시장경제는 개인의 자유와 선택이라는 효율성과 사회적 보호라는 형평성, 실천적 도구(경제)와 무형적 가치(존엄, 사회정의, 연대)가 결합 되어 있는 모델이다(66쪽 참조).
말은 좋지만 그게 어디 가능한 일인가? 그게 바로 독일경제다. 그러나 하루 아침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 오랜 세월 단계를 거쳐가며 더욱 더 개선되고, 성숙해져 온 체제다. 건국 이후 1980년대까지 동서냉전 시대에 서독은 소위 ‘라인강의 기적’으로 알려진 시장경제 원리에 충실한 발전으로 눈부신 성장을 이뤄냈다. 1990년 통일을 거치면서 이질적인 사회, 경제시스템과 만나면서 적지 않은 시기 동안 후유증을 겪었다. 그러나 독일은 오히려 ‘승자’(강자) 서독 일원적 병합이 아닌 사회적 경제를 흡수함으로써 영미식 모델을 대체하는 독일식 모델을 만들어 낸 것이다. 서로 대립되는 체제, 분단의 비극과 아픔이 오히려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새롭고 창의적인 혁신체제로 전환되는 기회로 만들었다. 우리라고 안 될 일인가? 눈에 띄는 수출 챔피언 독일경제의 특징을 몇 개 더 소개하자면, 독일은 수출 품목별 비중이 안정적이고 대기업 의존도가 낮다. 독일은 세계 **대 기업에 드는 (초)대형기업이 의외로 적으나, 규모가 아닌 기술로 그 분야의 최고 수준을 달리는 중소기업들이 즐비하다. 또 소비재와 자본재의 혼합형 구조를 이루고 있다. 이 말은 웬만한 경제위기나 변동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사회경제라는 말이다.
지면 관계상 줄이지만, 이 책에는 그 외에도 각종 사회제도, 신뢰와 법치의 균형, 국격과 문화브랜드 등 풍성하고 깊다. 독일 외교관 출신이 쓴 책으로 읽다 보면 너무 장점만 강조한 것 아닌가 싶지만, 거의 정확히 우리에게 부족한 면들만 보완한 것 같아 울림이 크다. 독일을 다녀온 사람들이 하는 고백처럼 ‘우리나라에 비해 모든 게 늦고, 후졌’을지 모르나, 그 불편함까지 포함해 독일은 참으로 사람을 우선한 사회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 사회를 진정으로 고민하는 분들이라면 필독을 권한다.
구교형 목사 (성서한국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