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도에서 태어난 인도차이나
<지도에서 태어난 태국>, 통차이 위니짜꾼, 이상국 역, 진인진, 2019
책 <지도에서 태어난 태국>에는 ‘국가의 지리체 역사’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여기서 ‘지리체(Geo-Body)’라는 단어는 역사학자인 저자가 직접 만들어낸 개념인데, 자칫 자연 발생적이라 여겨지는 지리 환경(국토, 국경) 역시 누군가에 의해 구성되고 발견되는 대상의 하나라는 것을 특별히 강조하기 위하여 사용된다. 그렇기 때문에 지리체는 때론 변화하고, 구획지어지고, 확장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저자가 현대의 국민국가와 지리학을 근대적 탄생물로 바라보며, 지금 세계에서 통용되는 서구적 국가와 국경선, 지리개념을 동남아시아와 인도차이나 지역, 특히 시암(태국)에서 어떤 과정을 통하여 받아들이게 되었는지를 면밀히 고찰하고 있다. 더욱이 방대하고 어려운 내용을 ‘지도’라는 소재에 집약시켜서 독자에게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는데, 과거와 현재, 전근대와 근대, 서구와 동양 등 서로 다른 시간과 지역, 가치와 문화가 충돌했던 18-19세기를 배경으로 지도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자못 흥미진진하다.
태국은 19-20세기 아시아 국가 중 열강이었던 일본을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식민지가 되지 않은 나라로 알려져 있다. 이는 근대화에 대해 유연했고, 비교적 일찍 서구의 과학을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당시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서 외교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노력의 일환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21세기인 현재까지도 왕정국가를 유지하고 있는 태국이 서구에 대하여 유연한 태도를 가졌다는 점은 굉장히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에는 여전히 국왕과 불교를 중심으로 전통적인 가치들을 중요시 여기면서도 서구의 방법론에 관심을 가졌던 일련의 과정이 잘 나타나 있는데, 특히 영화 <왕과 나>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했던 라마4세(뭉꿋 1851-1868)는 전통적인 점성술과 서구의 천문학을 조화롭게 사용하며 이전의 전통을 지키면서도 근대로의 이행을 유연하게 추진한다. 뭉꿋왕과 쭐라롱꼰왕(라마5세)으로 이어진 이 같은 태도는 이후 열강들의 끊임없는 침탈 속에서도 태국이 자주적 주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
태국이 갖고 있는 득특한 부분은 경계지점을 점하고 있있다는 데 있다. 이는 지정학적인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문화와 가치의 측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서양과 동양의 경계지점, 전근대와 근대의 경계지점, 영국과 프랑스의 경계지점에서 자신의 가치를 정립하고 지켜온 것이다. 근대 이전 아시아 국가들이 대부분 그러했지만 주군 국가와 조공국 형태의 국제관계들이 국가들 사이의 1:1이 아니라 1:3, 1:4로 거미줄처럼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국경선 또한 애매모호했고, 여러 민족과 문화가 중첩되어 있다는 점도 태국이 경계지점으로써의 태도를 갖는데 주요했을 것이다. 여하튼 강고한 오리엔탈리즘의 시각을 장착한 서구인에게 있어서 태국은 아시아의 관문이자 대화의 창구가 되었던 것이 분명하다.
지도의 역사는 흐릿한 경계선을 더욱 선명하게 만드는 쪽으로 발전한다. 지도가 발전할수록(근대 서구의 과학적 세계관이 지구화 될수록) 국가간의 경계선은 점점 더 분명해지고, 그 경계선을 기점으로 통치력과 권력의 영향력이 그 이전과는 다른 성격을 가지게 되는데, 이는 지도를 통하여 더욱 분명해진다. 지도는 지형을 나타내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기 때문이다. ‘뜨라이품’과 같은 태국의 전통적인 세계관을 표현한 지도를 보면 종교적 열정과 도덕적 가치가 지도에 고스란히 표현되어 있다. 현대의 서구적인 지리학 개념이 담겨있는 지도일수록 국가의 경계선과 영향력 그리고 군사력의 배치가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등 지도 속에 수많은 전략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지도는 그 사회의 성격과 가치가 담겨있고, 현대의 지도를 만들어가면서 태국의 사회상과 외교전략 역시 점점 바뀌어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결국 저자가 주장하는대로 현대의 태국은 태국의 현대적 지도가 완성되는 시점과 궤를 같이 하는 셈이다.
"지도는 이제 공간을 표상하는 단순한 개념도구가 아니었다. 기획된 욕망을 지표면에 구체화하는 치명적인 기구가 되었다." 288p
19세기 후반 인도차이나반도의 식민지배에 열을 올렸던 프랑스와 지역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시암(태국)은 결국 메콩강 유역 지도 그리기 쟁탈전에 돌입한다. 지도를 정확히 그릴 수 있다는 것은 그 만큼의 국력을 입증하는 바로미터였기 때문이다. 결국 시암의 완벽한 패배로 마무리 되지만, 아마도 태국이 당시의 최강대국인 프랑스와 영국에게 귀속되지 않았던 것은 세계지도 속에서 자신의 존재가 사라지지 않도록 무던히 노력해왔던 과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며 많은 부분 동의하였지만 태국 지식인의 관점에서 쓰여서일까. 이웃 나라로서 태국과 역사의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는 이 곳 라오스에 대하여 ‘일개 지역 조공국’ 쯤으로 인식하고 있는 태도가 못내 마뜩찮았다. 책에서는 라오스의 과거 왕국 루앙프라방과 위앙짠을 그저 ‘가장자리’라는 수식어로 표현하고 있었다. 국경선이 흐릿한 시절, 태국의 일부였던 이 가장자리 지역은 태국의 지도 경계선이 선명해지는 순간 역사의 지도에서 사라져 버릴 운명에 처한다. 그나마 지도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릴 뻔했던 라오스의 국경선은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복속으로 인해 남겨지고 유지되었다고 하니 역사란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공동체의 경계는 마찬가지로 자연스럽다고 쉽게들 본다. 그러나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있다. 모든 경계는 인위적이다.“ 291p
라오스에서 이관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