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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121]
 
 
 
     
 
 
 
작성일 : 23-01-12 00:34
   
안목
 글쓴이 : dangdang
조회 : 3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8802 [119]



안목


<안목 眼目,> 유홍준, 눌와, 2017

 

'안목'은 '사물을 보고 분별하는 견식'을 뜻하고, 주로 '안목이 있다/없다, 안목이 높다/낮다, 안목이 뛰어나다, 안목을 기르다'와 같이 표현한다. 우리가 책과 미디어를 통해 잘 알고 있는 유홍준 교수의 '안목, 미를 보는 눈'이 2017년 1월에 출간되었다. 그간 유홍준 교수의 여러 책을 읽어 보아서 이 책을 읽는 순위가 뒤로 밀려 있다가, 최근에 이 책을 프로모션하는 것을 보고 읽어 보기로 작정하였다. 

 

미술사학자이자 인문학자인 유홍준은 1949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미학과, 홍익대 미술사학과(석사),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박사)를 졸업했다.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으로 등단한 뒤 미술평론가로 활동하며 민족미술협의회 공동대표와 제1회 광주비엔날레 커미셔너 등을 지냈다. 1985년부터 2000년까지 서울과 대구에서 젊은이를 위한 한국미술사 공개강좌를 개설하고, '한국문화유산답사회'를 이끌었다. 영남대 교수 및 박물관장, 문화재청장을 역임했다.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 정년퇴임 후 석좌교수로 있다. 저서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국내편 1~10, 일본편 1~4), 평론집 '다시 현실과 전통의 지평에서', 미술사 저술 '조선시대 화론 연구' '화인열전'(1․2) '완당평전'(1~3) '국보순례' '명작순례' '안목'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1~3) '추사 김정희' 등이 있다. 제18회 만해문학상(2003) 등을 수상했다.'안목'은 이미 출간된 '국보순례', 명작순례, 와 함께 '유홍준의 미를 보는 눈' 시리즈의 하나로 펴낸 책이다. 

 

저자 유홍준은 한국미술사의 대표적인 유물들을 찾아가는 답사기, 순례기를 집필하면서 독자들에게 미를 보는 눈,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 아래, '안목'이라는 주제로 이 책을 쓰게 되었다. (교보문고) 안목은 넓게는 세상을 보는 방식에 해당되는 말이다. 이 책은 예술을 보는 대안목을 지닌 인물에 대한 소개와 조선에서 현대까지의 주요 작가와 작품을 보는 안목에 대하여 저자의 안목과 함께 그의 생각을 전해주고 있다.  

 

이 책의 구성은 책을 펴내며 ◇ 미를 보는 눈을 위하여

 

안목: 미를 보는 눈

1 안목 환재 박규수 ◇ 미를 보는 눈, 세상을 보는 눈

2 건축 김부식의 《삼국사기》 ◇ 검이불루 화이불치

3 불상 절대자의 이미지 ◇ 한일 국보 반가사유상의 1,400년 만의 만남

4 청자 서긍의 《선화봉사고려도경》 ◇ 세밀해서 가히 귀하다 하겠다

5 백자 달항아리 예찬 ◇ 한국미의 영원한 아이콘

6 화론 남태응의 〈청죽화사〉 ◇ 연담·공재·허주, 세 화가를 평한다

7 평론 강세황의 《표암유고》 ◇ 단원 김홍도를 키워낸 당대 예림의 총수

8 감식 추사 김정희의 ‘금강안’ ◇ 금강역사처럼 눈을 크게 뜨고 보아라

9 서화감정 위창 오세창 ◇ 한국서화사를 집대성한 문화보국의 위인

10 한국미술사 혜곡 최순우 ◇ 한국미를 정립한 우리 시대의 대안목

 

애호가 열전

1 안평대군 이용 ◇ 그래서 안평의 빠른 죽음이 더욱 안타깝다

2 석농 김광국 ◇ 알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모으게 되나니

3 송은 이병직 ◇ 저 백지 속엔 수많은 그림이 들어 있다오

4 수정 박병래 ◇ 진정한 애호가의 ‘백자에의 향수’

5 초기 수장가들 ◇ 소장품의 최종 목적지는 다 달랐다

6 소전 손재형 ◇ 전쟁 중에 일본에 가서 〈세한도〉를 찾아오다

7 간송 전형필 ◇ 민족의 자존심을 위해 전 재산을 바치다

 

회고전 순례

1 변월룡 탄신 100주년전 ◇ 잊혔던 고려인 화가의 위대한 시대 증언

2 이중섭 탄신 100주년전 ◇ 백 년의 신화가 오늘에 환생하는 듯

3 박수근 서거 50주기전 ◇ 역사 인물로서 박수근 화백을 그리며

4 오윤 서거 30주기전 ◇ 민중미술의 전설, 오윤을 다시 만나다

5 신영복 서거 1주기전 ◇ ‘함께 여는 새날’을 그리며

 

평론

1 작가론 수화 김환기 ◇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났는가

2 평론 대가들의 종이 작업 ◇ 예술혼을 위한 또 하나의 선택

3 비평적 증언 1980년대의 미술 ◇ 리얼리즘의 복권을 위하여

 

도판목록

 

이 책은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었다. 첫째 장에서는 장르별로 역대의 대안목들이 미를 갈파한 탁견들을 소개하였고, 둘째 장에서는 뛰어난 안목을 소유한 미술 애호가들의 수집 이야기를 통해 안목의 구체적 실천 사례를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셋째, 넷째 장은 저자의 안목과 관계된 글이다. 셋째 장 회고전 순례' 는 지난 한 해 동안 있었던 대가들의 탄신과 서거에 맞추어 열린 회고전을 리뷰 하는 형식으로 쓴 것이다. 넷째 장은 대규모 기획전에 부친 전문적 평론들이다. 여기서도 학술적인 데 얽매이지 않고 작가론, 미술비평, 미술사적 증언 등 사안에 따라 다른 시각에서 그의 안목과 생각을 전개하였다.

 

미를 보는 안목으로 책은 시작한다. 저자는 박규수(연암 박지원의 손자로 19세기 말 조국의 장래를 위하여 가화동 집에서 김옥균, 서광범, 홍영식 등 젊은 양반 자제들을 모아 놓고 개화사상을 가르쳤던 안목이 깊은 인물)에 대하여 저자의 친구인 안병욱과 이이화 역사학자와 함께 박규수의 안목이 높은지, 넓은지, 깊은지 논하였다고 한다. 그들의 결론은 ‘박규수의 안목은 보기에 따라 높고, 깊고 넓었다’였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같은 안목이라도 분야마다 그 뉘앙스는 조금 다른 것 같다고 했다. 예술을 보는 안목은 높아야 하고, 역사를 보는 안목은 깊어야 하고, 현실정치,경제, 사회를 보는 안목은 넓어야 하고, 미래를 보는 안목은 멀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우리 사회 각 분야에 굴지의 안목들이 버티고 있어야 역사가 올바로 잡히고, 정치가 원만히 돌아가고, 경제가 잘 굴러가고, 문화와 예술이 꽃핀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당대에 안목 높은 이가 없다면 그것은 시대의 비극이다. 천하의 명작도 묻혀버린다. 많은 예술 작품이 작가의 사후에야 높이 평가받은 것은 당대에 이를 알아보는 대안목이 없었기 때문이다. 미를 보는 눈이든 세상을 보는 눈이든 당대의 대안목을 기리는 뜻이 이 책을 저술한 목적이라 했다.   

 

대안목을 가진 인물로 한국미술사 혜곡 최순우(1916-1984)을 소개해 보자. 저자는 그를 '한국미를 정립한 우리 시대의 대안목'을 가진 인물로 소개한다. 혜곡 선생의 안목은 한국 미술의 축복이었다. 그는 1974년  립중앙박물관장으로 취임하였다. 평생을 박물관에서 살면서 구체적인 유물을 통하여 한국미의 특징 나아가서는 한국미학의 방향을 제시한 당대의 대안목으로 <한국미술 5천년전 <조선시대 회화>, <한국민예미술>전 등 수많은 특별전을 기획하면서 한국미 술사의 대맥을 세운 미술사가이자 미학자이다. 

 

혜곡 선생은 미술품을 '학'으로 보기 이전에 감상하는 자세로 멋을 관찰하였다. 예를 들어 보면 부석사의 무량수전에 대한 그 안목이다. 소백산 기슭 부석사의 한낮, 스님도 마을 사람도 인기척이 끊어진 마당에는 오색 낙엽이 그림처럼 깔려 초겨울 안개비에 촉촉이 젖고 있다. 무량수전, 안양문, 조사당, 응향각들이 마치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하고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 … 

 

저자는 학고재에서 혜곡의 전집의 편집을 맡았을 때 책 제목으로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라는 제목을 사용했다고 한다. 제목으로 보고 이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혜곡은 우리나라의 민예의 예술을 발견한 것으로부터 또 다른 대안목을 찾을 수 있다. 

 

혜곡은 <민예라는 것>이라는 글에서 궁정이나 양반 등 상류사회를 떠받치는 권위예술 작품이 아니라 민중 속에서 민중을 위해서 자라난 무명의 공장, 또는 민중 스스로의 뜨내기들이 만들어낸 민중 속의 일상 용기, 용구, 민화 등에 나타난 민중적인 조형예술을 가리키는 것이 된다. -중략- 한국의 민예품은 매우 솔직하고도 순정적이며 억지가 없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 그리고 너그럽고도 익살스러운 우리 민족의 마음씨가 어느 민족의 경우보다도 주저 없이 드러나 있는 점으로 공예의 본질적인 미의 원천으로서 높이 평가되어왔다. 혜곡 선생은 이처럼 밝은 눈과 뜨거운 가슴으로 한국미술의 영역을 넓히면서 한국미의 특질을 정립하여 주눅든 문화적 열등감을 후련히 씻어주었다. 

 

혜곡 최순우 선생은 희대의 대안목으로 한국미를 정립한 미술사가이며, 영원한 우리들의 박물관장이며 문화재를 통한 국민 계몽과 문화 외교를 몸소 실현한 문화보국의 애국자였다고 저자는 평가하고 있다. 혜곡을 좀더 이해하려면 그가 살았던 그리고 한국적인 멋을 구현한 '최순우 옛집'을 찾아 가보 길 권하고 싶다. 이 한옥은 지금은 등록문화재 268호로 내셔널트러스트 문화 유산기금이 매입해 관리, 운영하고 있다.

 

두 번째의 대안목인 소전 손재형 소개해 보자. 저자는 그에게 '전쟁 중에 일본에 가서 <세한도>를 찾아오다'라는 부제를 붙였다. 추사 김정희의 대표작으로 국보 중에 국보라 할 <세한도>는 1844년, 추사가 제주도 귀양살이 시절 우선 이상적(1804-1865)이 변함없이 사제 간의 의를 지키며 북경에서 책을 구해 보내준 것에 대해 감사하며 "날이 차가워진[세한歲寒] 뒤에야 소나무, 측백나무가 늦도록 지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는 글과 함께 그린 처연한 그림이다. 우선은 이듬해 중국에 가면서 이 작품을 갖고 가 청나라 학자 16인의 찬시를 받아 장대한 두루마리로 표구하여 애장하였다. 우선 이상적이 죽은 뒤 이 작품은 그의 제자였던 김병선이 소장하게 되었고 그 아들 김준학은 이 시를 읽으며 공부했다는 감상기를 두루마리 끝에 적어 놓았다. 이후 <세한도>는 휘문고등학교 설립자인 민영휘의 소유가 되었다가 그의 아들 민규식이 <경성 민씨 소장품 경매전>에 매물로 내놓은 것을 후지쓰카(일본의 김정희 연구가)가 대학 교수로서는 무리한 값이지만 끝내 낙찰 받아 소유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태평양전쟁이 한창인 1943년 여름 어느 날이었다. 서예가이자 당대의 서화 수집가로 추사의 마니아였던 소전 손재형(1902-1981)은 혹시 후지쓰카가 다른 일본인과 마찬가지로 귀국하게 되면 이 <세한도>를 가지고 가게 된다는 생각이 들어 후지쓰카에게 원하는 대로 다 드리겠으니 <세한도>를 '양도해주십사'고 부탁했다. 그러나 후지쓰카는 자신도 평생 추사를 존경하여 고이 간직하고 있노라고 거절했다. 

 

〈세한도〉를 구하기 위해 일본에 간 소전 그리고 1944년 여름이었다. 태평양전쟁이 막바지로 치닫자 후지쓰카는 살림살이와 책은 물론이고 〈세한도>를 비롯한 한중 교류와 관련한 서화, 전적을 모두 갖고 도쿄로 돌아갔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안 소전은 나라의 보물이 일본으로 건너가 버리고 말았다고 크게 걱정하며 마침내 비장한 각오로 부산으로 내려가 관부연락선을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에 있는 후지쓰카의 집에 찾아갔다. 당시는 미군의 도쿄 공습이 한창인 때였고 후지쓰카는 노환으로 누워 있었다. 소전은 후지쓰카를 만나 막무가내로 <세한도>를 넘겨달라고 졸랐다. 그러나 후지쓰카는 단호히 거절했다. 하지만 소전도 뜻을 버리지 않고 무려 두 달간 매일 문안인사를 드리며 부탁했다고 한다. 그러자 마침내 후지쓰카는 소전이야말로 <세한도>를 간직할 자격이 있는 이라며 건네주었다. 그리하여 소전은 <세한도>를 갖고 서울로 돌아왔다. 

 

소전이 <세한도를 가지고 귀국하고 나서 석 달쯤 지난 1945년 3월 10일, 후지쓰카의 연구실이 공습을 받아 많은 서적과 서화 자료들이 불타버렸다. 소전은 〈세한도〉를 갖고 귀국한 사실은 8․15해방 정부 수립이 된 이듬해인 1949년에야 이 사실을 위창 오세창과 당시 부통령으로 서예에도 조예가 깊었던 성재 이시영에게 알리고 축하 발문을 받았다. 위창은 소전을 이렇게 칭찬했다. 전쟁의 기운이 가장 높을 때 소전이 훌쩍 현해탄을 건너가 … 폭탄이 비와 안개처럼 자욱하게 떨어지는 가운데 어려움과 위험을 두루 겪으면서 겨우 뱃머리를 돌려 돌아왔다. 감탄하노라! 만일 생명보다 더 국보를 아끼는 선비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었겠는가. 잘하고도 잘하였도다. 소전은 영원히 잘 간직할지어다. 

 

후지쓰카가 보관하고 있던 한국에 관한 여러 자료를 그의 맏아들인 아키나오이 보관하고 있다가 과천 추사기념관에 기증하였고, 문화재청 청장으로서 저자는 후지쓰카 아키나오에게 문화훈장 목련장 수여를 상신하였고 2006년 5월 18일 아키나오는 병상에서 이 훈장을 받았다. 그리고 두 달 뒤 후지쓰카 아키나오는 향년 94세로 세상을 떠났다. 소전의 안목은 우리나라의 국보 중에 국보를 알아 보고 지켜낸 것이다. 그의 끈질긴 노력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어떤 안목을 갖고 그 안목을 어떻게 실행해 옮기느냐를 보여주는 일화가 아닐 수 없다. 집 근체에 있는 과천 추사기념관을 가보지 못한 것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나는 이 책에서 소개된 대안목을 지닌 분들 중에 혜곡과 소전만을 소개하였다. 별 다른 뜻이 있어 두분을 소개한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친근한 전형필, 최순우, 손재형 중 전형필은 많은 분들이 알고 있고 간송 미술관으로도 알고 있기 때문에 소개하지 않았을 뿐이다. 내가 자주 트래킹하는 코스 중에 백사실 계곡(김정희가 살았다는 이야기가 있음), 석파랑(소천이 말년 작품활동을 하던 곳),  무계원(종로에 있던 요정인 오진암을 이전, 세한도에 대한 설명이 있음) 등이 있어 손재형 선생이 반갑게 느껴진다. 성북동을 걷다보면 '최순우 옛집'을 방문하여 잠깐 쉬었다가기도 해서 역시 최순우 선생도 가까운 느낌이라 두분을 소개하게 되었다. 역시 올해는 꼭 과천 추사기념관을 가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안목이라는 책은 나에게 예술이라는 관점에만 생각하게 하는 것 같지 않다. 예술을 보는 안목은 높아야 하고, 역사를 보는 안목은 깊어야 하고, 현실정치, 경제, 사회를 보는 안목은 넓어야 하고, 미래를 보는 안목은 멀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내 안목을 길러야 겠다는 생각을 새해 시작이라 다짐을 해보게 된다.  

 

김종일 대표 ((주) 비앤에이치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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