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혼의 자서전’
<영혼의 자서전 상·하>, 니코스 카잔차키스 저, 안정효 역, 열린책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1883~1957)는 그리스인이다. 종종 같은 크레타 출신 화가 엘 그레코의 명성을 언급하는데, 화가의 이름은 그리스 사람이란 뜻이다. 두 사람은 서로 예술적 도구는 다르지만 같은 주제를 중심에 두었다. 그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실은 그리스 사람이면 누구나 삶의 중심이 그리스도이고, 삶의 반경도 그리스정교회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리스인 조르바>, <미할레스 대장>과 함께 카잔차키스의 대표작이며, 동시에 그의 발목을 잡은 작품은 <최후의 유혹>이었다. 이 소설은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의 변으로 찬사를 보냈던 마틴 스콜세이지 감독이 1988년에 영화로 만들었다. 이전에도 프랑스에서 제작된 바 있다.
그리스정교회는 <미할레스 대장>에 나오는 신성모독 혐의로 카잔차키스를 파문하였고, 로마 카톨릭은 <최후의 유혹>에서 다룬 그리스도의 지극히 인간적인 면모에 대해 반발하여 판금 조치를 내렸다. 그는 1951년과 1956년 두 차례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으나, 오히려 그리스에서 반대하고 나섰다. 작가가 중국 여행의 후유증으로 얻은 독감으로 세상을 떠난 1957년 그 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알베르 까뮈는 카잔차키스를 가리켜 “나보다 100배나 수상할 자격이 있다”고 극찬하였다.
카잔차키스는 평생 그리스정교회의 자기장 안에서 살았다. 그를 주인공으로 삼은 실명 영화 속 작가의 방에는 커다란 그리스정교회 십자가가 세워져 있었다. 머리에 가시관이 없고, 휘광을 두른 정교회의 부활하신 그리스도이다. 그는 평생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했으나, 아마 작가의 초현실과 공교회의 현실 사이에서 사랑을 이해하는 방식이 달라 갈등했을 것이다. 작가와 교회는 장례식장에서 겨우 화해하였다.
작가는 구도자였다. 그가 사막고행을 하는 장면이나, 친구인 시인 앙겔로스와 아토스 산을 순례하는 장면은 우스꽝스러울 만큼 현실 너머의 모습이었다.
“나는 평생 위대한 영웅적 인물들의 영향을 받았다. 어쩌다가 영웅성과 성스러움을 겸비한 인물이 나타난다면, 그는 인간의 본보기였다. 영웅이나 성자가 될 능력이 없었던 나는 글을 씀으로써 내 무능함에 대한 위안을 조금이나마 얻으려고 시도했다”(니코스 카잔차키스).
그의 시대에는 영웅이 필요했고, 민중은 성자를 요구하였다. 평생 터키의 지배와 제1차 세계대전 그리고 나치의 침략을 겪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그리스인들은 억압과 학살 그리고 배고픔으로부터 살아남아야 하였다. 특히 크레타는 수난의 섬이었다. 집집마다 담벼락에 그려 놓은 검은 십자가들은 학살당한 남자들의 숫자였다.
터키의 억압에 저항한 아버지 미할레스 대장은 어린 니코스와 성인이 된 카잔차키스에게 억압자로 여겨졌다. 아버지는 목숨처럼 자유를 추구하였으나, 니코스에게는 이 또한 두려움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상처 입은 그리스와 그리스 민중의 희생을 각인시켰고 자주 그 십자가 아래로 내몰았다. 마침내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그는 비로소 내면의 상흔으로부터 자유하게 된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영웅이자 성자였다. 아버지는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던 강인한 존재였다. “죽음은 당나귀와 같다. 나는 당나귀 고삐를 잡고 하나님께로 간다”(미할레스 대장).
비록 카잔차키스는 영웅도, 성자도 못되었지만 위대한 작가로서 성자의 형상을 창조했고, 자기 시대의 영웅을 그려냈다는 평가를 듣는다. 그의 글쓰기 과정 역시 성자와 영웅 사이 투쟁과 다름없었다.
한동안 가장 감동적으로 읽은 책으로 카잔차키스의 소설을 꼽았다. 내가 다니던 신학교 특히 기숙사 풍경은 카잔차키스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지향하였다. 성스러움도 못되고 그렇다고 완전한 속세도 아닌, 그 어디에도 속하기를 머뭇머뭇하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자유를 꿈꾸었다. 그 속박은 저마다 얼굴이 다르듯, 탈출하려던 각자의 ‘애굽’은 전혀 달랐을 것이다.
한때 나만의 독방에서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으며 자유를 호흡하였다. 조르바가 날마다 떠오르는 에게해의 태양을 마치 처음 본듯 놀란 것처럼 그 감격을 연습하곤 하였다. 영화 속 카잔차키스와 엘레나의 웃음 치료 놀이 장면은 마치 조르바를 흉내 내는 것 같았다. 뭐니뭐니 해도 카잔차키스에게서 닮고 싶은 것은 “내가 펜을 드니 신이 쓰시더라”던 그의 초현실적 영감이었다.
<영혼의 자서전>에서 카잔차키스는 그리스정교회의 가르침 안에서 살면서 늘 그들과 씨름하고 있었다. 마치 검은 옷 사제들과 누가 더 그리스도를 사랑하는지 경쟁하는 듯하다. 영화를 먼저 보고나서 자서전을 찾아 읽은 후 내린 결론이다.
“니코스 카찬자키스는 교회로부터 반기독교도로 매도되는 탄압을 받았어도, 평생 자유와 하느님을 사랑한 그리스도인이었다”(위키토피아에서).
송병구 목사 (색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