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을 무엇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무엇으로>, 정미진 글, 최재훈 그림, atnoonbooks, 2019
우리는 사람의 존재에 대해 물을 때, 무엇(What)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누구도 사람에 대한 본질을 대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직업, 나이, 성격, 살아온 경험 등을 얼버무려 그 사람이 어떠한지에 대한 근삿값을 추정한다. 그렇다고 해도, 역시 사람은 설명되지 않는다.
우리는 사람을 분석하는 많은 툴(tool)을 사용한다. 그리곤 누군가에 대해 아는 척하며 말하기를 좋아한다. 과거에는 혈액형을 가지고 인간을 4종류로 나누더니, 이제는 MBTI, 에니어그램, DISC 등을 사용하여 사람을 유형화시킨다. 이런 검사가 사람을 파악하는데 좋은 접근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그것 자체로 그 사람이 ‘무엇’인지 본질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그러니 속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사람을 모른다’가 정답이다.
속담 중에,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다. 당신은 이 말에 대해 얼마나 공감하고 있는가? 뉴스를 켜면, 이 속담이 얼마나 정확한지 단번에 증명된다. ‘확신이가는 표정’, ‘신뢰가 가는 목소리’, ‘믿을 만한 배경’, ‘앞으로가 기대되는 멋지게 걸어온 지난 길’ 그럴듯한 스펙을 갖춘 사람들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하고 있다. 역시, 사람을 믿어서는 안된다. 사람은 모른다.
사람에 대한 너무 부정적이고, 우울한 감정이 느껴졌다면 사과한다. 그런데 오늘 소개하고픈 책을 덮고 난 후에 느껴진 감정이 딱 그렇다. 책 제목은 “무 엇 으 로”이다. 무엇으로? 이 책은 정미진이 글을 쓰고, 최재훈이 그림을 그렸다. 어른을 위한 그림책이다. 고로, 문자로는 이 책을 설명할 수 없다. 이 글을 마주한 분들은 꼭! 실물을 영접해보기 바란다.
한 마을에 두 사람이 등장한다. 한 사람은 부드럽고, 환한 사람이다. 단정하고, 미소가 멋지다. 그는 푸른 물을 가지고 이 마을에 왔다. 모두가 그를 좋아한다. 아니, 동경한다. 또 한사람이 등장한다. 그는 지저분하고, 차갑고, 부정적인 모습이다. 옷차림은 정돈되지 않았고, 상냥하지 않다. 모두가 그를 싫어하고 피한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앞선 사람은 선을 상징하는 인물로, 뒤의 사람은 악을 상징하는 인물로 기억된다. 선을 대표하는 사람에게는 기대감이 피어오른다. 그를 통하여 이 마을이 새롭게 변할 것만 같다. 악을 대표하는 사람에게는 긴장감이 생겨난다. 그는 무엇인가를 망가트릴 듯 하고, 평화로운 마을을 파괴할 것만 같다. 이 책은 말미에, 모두에게 환대받던 이가 나누어준 물을 먹고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그러나 누군지 알 수 없는 이의 도움으로 마을에 새로운 물줄기가 흘러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죽음과 생명이 교차되는 것이다.
모두가 좋아하던 이 사람은 마을 사람들에게 어떤 물을 먹인 것일까? 그리고 도대체 누가 이 마을에 생명의 물길을 낸 것일까? 책은 세세한 설명에 있어 매우 불친절하다. 해석은 오롯이 독자의 몫이다. 많은 질문들이 피어난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일까?
우리는 겉모습으로 사람을 구분할 수 있을까?
선/악은 고정적인 실체일까?
선은 어떻게 생긴 걸까?
악은 어떻게 생긴 걸까?
모양, 냄새, 감촉, 소리, 맛
우리는 그것을 오감으로 구별할 수 있을까?
이 책은 펜촉 그림의 분명한 이미지 대비를 통해, 흑/백과 선/악을 명확하게 나눈다. 그러나 그 선악은 어떤 사람으로부터 출발한 것인지 알지 못한다. 누가 선을 가지고 있고, 누가 악을 가지고 있을까? 불현듯,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게 된다. 이 사람은 착한 사람인가?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인가? 그럼 나는 어떤 사람인가?
우리는 흔히, 세상에는 선과 악을 구분하는 어떤 기준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도 변하고, 도덕도 변하고, 법도 변한다. 같은 상황과 같은 사건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관점이 달라진다. 멀리서 볼 때와 가까이서 볼 때 느껴지는 것도 다르다. 진실은 어디에 있을까?
이 책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 다만, 우리에게 이런 강렬한 메시지를 남긴다. 보이는 것과 실제는 다를 수 있다는 것! 그러므로 누군가를 너무 믿을 것도 없고, 그렇지 못한 사람을 낙인 찍어서도 안된다는 것! 더 깊이, 더 진실하게, 더 뜨겁게 사람을 마주해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신동훈 목사 (마포 꿈의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