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문하는 이들을 손님으로 대하고 싶고, 그들도 손님처럼 행동하길 바란다.”
<지속가능한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홀리 터펜, 배지혜 옮김, 출판한스미디어, 2021
“이론적으로 확실한 경제적 이득을 주면서 경이로운 자연경관과 매력적인 문화를 보호할 수 있는 산업은 관광산업뿐이다.”(188)
일상 속에서 자기 역량을 발휘하면서 산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지만, 반복되는 일상에 신물을 느낄 때가 있다. 특히,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지 못할 때, 점점 소진된다. 개인적으로 일주일에 두어 번 격한 운동을 하지 않으면 정신적으로 심란해지고 예민해진다. 고단한 세상살이에서 틈을 내야만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스스로를 착취하는 것만으로도 고달픈데, 감염병 시절을 겪으면서 정서적으로 더 피폐해졌다.
비일상의 틈을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는 여행이다. 이국적인 분위기를 체험하는 것은 생기를 되찾는데 큰 역할을 한다. 평소에는 아무 생각 없이 길거리를 걷지만, 여행길에 올랐을 때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세상을 두리번거리게 된다. 여행자는 곧 관찰자, 순례자이다. 낯선 것들을 향해 주의를 기울이고, 소소한 것들에서 의미를 발견하고자 애를 쓴다. 이런 시선과 태도가 설렘과 울림이라는 감정을 일으키며, 이는 내면의 허기증을 달래주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경제대국 10위의 대한민국이기에, 해외여행을 떠나는 국민들의 풍경들이 퍽 익숙하다.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에서 대기하는 순간부터 가슴이 두근거린다. 여행이 자신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면 좋겠지만,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비행기만큼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이동수단이 없기 때문에, 몇몇 언어권에서는 비행기를 타는 것이 수치스러운 일임을 나타내는 신조어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관광객들로 인해 현지인들은 삶의 터전을 잃기도 하고, 생태계가 파괴되기도 한다. 불평등과 오염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여행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불러일으켰다. 공정여행, 리스펀서블 트래블, 그린 트래블, 리와일딩 익스피리언스 등등이 그것이다.
“베네치아의 매년 관광객은 2400만명 … 15만 명이 거주할 수 있도록 건설된 도시에 현재 남아 있는 주민은 5,300명뿐이다. 에어비앤비와 같은 사이트에 휴가철 숙소로 내놓은 방들 때문에 임대료가 전반적으로 너무 비싸지면서 현지인들이 뿌리를 내리고 살기 불가능한 도시가 되었다.”(66)
홀리 터펜의 <지속가능한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는 좋은 여행이 무엇인지, 또 구체적으로 어떤 사례들이 있는지 수집해둔 책이다. “여행자는 요구하고 순례자는 감사한다”는 명제가 종종 회자되지 않는가. 불만투성이의 얼굴을 한 관광객이 아니라 순례자 혹은 손님으로서 여행한다는 것의 의미를 깊이 숙고하는 데 도움이 되는 양서이다. 친환경 관광은 가능한지, 자본주의의 유입으로 망가진 청정 무공해 마을들을 어떻게 복원시킬 수 있는지 등등에 대한 밀도 있는 고민들이 담겨 있다.
사이클, 도보 배낭여행, 대중교통과 하이킹, 전기차 등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는 이동방식은 크게 고려해 봄직 하다. 오로라 같은 자연경관이나 야생동물을 구경할 것인지, 특정 민속체험을 할 것인지, 여행의 내용도 주요하다. 관광객이 소비한 돈이 인권남용이나 대량학살, 혐오 범죄에 쓰이기도 하기에, 어떤 여행지를 선택하는지도 중요하다. 또한 어느 관광산업을 이용할지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플라스틱 사용을 금지하며 탄소배출을 줄이려 힘쓰거나, 지역 내 소외 계층의 역량을 키우도록 돕는 회사들이 있는 까닭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원시부족민들이 주체적으로 운영하는 여행상품이었다.
“원시부족 5% [남짓의] 이들은 전 세계 생물다양성의 80%를 보호하고 있다. [관광산업은] 재정적인 지원을 하거나 이들이 대지권을 보호할 수 있도록 지지하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어하는 원주민들과 여행자를 연결하기도 한다.”(181)
여행의 참 맛은 어디에 있을까. 소비로 자기존재를 증명해내려는 이들은 그 맛을 보지 못할 게 분명하다. 불평할 준비를 하고 있는, 일방적으로 대접 받고자만 하는 마음으로는 여행의 진수를 경험하지 못할 것이다. 대화하고자 하는 마음, 경탄하고자 하는 시선이어야 가능하다. 관광이라는 낱말은 ‘관국지광’에서 파생되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태도가 사람을 만든다. 삶은 향연이다. 우아한 손님으로 살아가자.
“언어 장벽을 초월하는 가슴 벅찬 미소, 이방인과의 식사, 전통 부족의 제사 의식처럼, 여행자의 인생을 바꾸는 경험은 주로 사람과의 따듯한 상호작용 속에서 일어난다.”(145)
김민호 목사 (지음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