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 나는 새를 바라보는 대림절
<‘새처럼; 새로 보는 대림절’>, 장석근 지음, 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 기획, 신앙과지성사, 2022
우리는 지금 2022년 대림 절기를 살고 있다. 예수님이 우리의 아름다운 지구에 오신 것을 어떤 마음으로 맞고 있는지 생각해본다. 하나님은 지구상에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신 후 보기 좋다고 하셨다. 아시시의 프란시스는 형제인 태양과 누이인 달과 모든 피조물을 주신 창조주를 찬양했다. 그리고 오늘 주님도 겸손한 모습으로 세상에 오고 계신다.
우리는 세상에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피조물의 하나로서 겸손히 동료 피조물을 돌보는 기쁨을 누리고 있을까. “마므레 상수리나무 아래 장막 어귀에 앉아있는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다. 그는 고개 들어 보니 웬 사람 셋이서 맞은편에 서 있었다. 아브라함은 그들을 보자, 장막 어귀에서 달려나가 땅에 엎드려 절을 하며 그들을 맞이하였듯”(창 18:1~2), 우리도 그들을 맞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은 대림절 묵상집을 “새처럼(장석근 지음, 신앙과지성사)”이란 제목으로 펴내고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한다.
우선은 시간을 내어 잠시 머물다가는 나그네 새를 바라보라 한다. 새들도 우리의 이웃이요, 살아남게 해야 할 생명이니, 새들을 눈여겨보라는 것이다. 주님도 세상에 오셔서 새를 보라 하시며, “공중의 새를 보아라.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곡간에 모아들이지도 않으나,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 그것들을 먹이신다. 너희는 새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 6:26)고 하셨다. 찬찬히 산이나 들, 물가에 나가, 오랜 시간을 두고 책을 정독하듯 자연의 책을 실피며 주님을 기다려보자. 나그네처럼 잠시 머물다 가는 새들을 보면, 나그네로 오시는 주님을 깊이 묵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때때로 자연을 조용히 걸어보라 한다. 자연 안에서 하나님의 숨결을 느껴 보라는 것이다. 걸으면서, 경이롭게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는지, 창조의 아름다움을 보고 있는지, 땅의 울부짖음과 가난한 사람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는지 살펴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하는 선택이 창조물과 가난하고 취약한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게 하는 은총을 구하라 한다. 주께서 만드시고 보시기에 좋았던 이 세상의 만물을 다스리고 정복하려 하지는 않았는지 살피고, 창조물과 이웃을 돌보는 데 부족하지는 않았는지, 정의와 화해를 위한 회개의 은총도 구해보라 청한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상 만물과 화해하고 화목하여 벗이 되도록 생태적 의식 성찰을 하는 기도를 드려보자는 것이다.
또 다른 한 주에는 여름 철새의 지저귐 속에 깃든 하나님의 음성도 떠올려 보라 제안한다. 주님 오셨을 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 8:20)”고 한 것처럼, 오늘날도 도시화와 산업화로 농경지가 줄어들고, 논과 농경지에 뿌려진 농약과 화학비료로 인해 새들의 먹이인 곤충들이 급격히 줄고 있다. 더구나 오염된 먹이로 인한 환경호르몬의 영향으로 알을 낳지 못하고 새끼들은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 주님이 그러셨듯이 새들도 머리 둘 곳 없는 위기의 시대에 새들도 우리도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해보라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겨울 철새들을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시선을 따라가 보라 한다. “사람이 시험을 당하는 것은 각각 자기의 욕심에 이끌려서, 꾐에 빠지기 때문이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죽음을 낳는다” (야 1:14~15) 하였다. "새를 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청둥오리도 흔한 철새가 아니라 천연기념물, 멸종위기종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모름지기 겸손히 오신 주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무엇보다 그들 서식지를 잘 살펴 지키는 일에 힘써야 한다. 무분별한 개발로 새들의 서식처가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고, 남을 배려하지 않는 우리의 삶으로 환경오염이 심각해지고 있다. 그 뒤에는 우리들의 끝없는 탐욕이 숨어 있다. 우리 모두 욕심을 덜어내고 새처럼 가벼이 날개-짓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를 위해, 이번 대림 절기를 마무리할 때쯤 우리 모두 아기 예수님이 오실 구유, 일상의 성소를 마련해보자.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눅 2:12) 하셨다. 주님은 포대기에 싸여 겸손히 우리에게 오셨다. 수만 그루 나무로 베어낸 포장지나 새들의 내장 가득 채워지는 비닐로 싼 구유가 아니라 숲이 고갈되지 않고 새들을 위협하지 않고 기도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보자.
그곳에 지속적으로 오래 머물면,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마 10:31)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텃새 한 마리도 귀히 돌보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며 삶을 새처럼 가볍게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새들은 제 것이라고 소유하거나 쌓아 두지 않고, 거기 있는 대로 그대로 누구든지 배고픈 참새가 와서 먹는다. 아무리 힘센 참새라도 스스로 한 끼 밥만 챙겨 먹고 갈 뿐 더는 싸서 가지고 가지 않는다.
그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의 순리요, 조물주의 질서이니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게 되리라 믿고 기도한다. 이제 우리의 삶을 그 질서 안에 있도록 애써야 한다. 그것이 참새 한 마리도 귀히 여기시며 기르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유미호 (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 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