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틀러를 선택한 나라
<히틀러를 선택한 나라>, 벤저민 카터 헷, 이선주 옮김, 눌와, 2022
얼마 전 교보문고에 갔다가 눈에 들어온 책이 있었다. 집에 돌아와 검색해 보니 마침 동네 도서관 비치 도서라 얼른 대출해 왔다. 뉴욕시립대학 역사학 교수 벤저민 카터 헷의 <히틀러를 선택한 나라>로 바인상 역사 부문 수상작이라고 한다. 헷은 역사학과 법학 박사 학위를 지녔을 뿐 아니라 변호사로도 활동한 경험을 살려 특히 사법적 관점에서, 독일의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탐구한 여러 권의 책을 출판했다. 독일제국 전환기 베를린에서 일어난 형사사건·재판을 통해 당시의 사회변화를 조망한 첫 저서 <티어가르텐에서의 죽음>, 용감한 반나치 변호사 한스 리텐의 전기 <히틀러와 맞서며>, 1933년 독일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의 미스터리를 탐구한 <국회의사당 불태우기> 등이 그것이다.
본서 원제는 <민주주의의 죽음, The Death Of Democracy>이다. 헷에게 그날은 구체적으로 1933년 2월 27일 월요일, 바이마르 공화국의 마지막 밤이자 독일 민주주의의 마지막 밤이었다. 1918년 독일은 혁명에 성공하고 황제를 몰아냈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탄생이다. 공화국은 분명 인류 문명의 한 진보를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1919년 제정된 바이마르 헌법은 당시로서는 최첨단의 민주주의를 보장하고 있었다. 비례대표 선거제, 남녀평등을 포함 인권과 자유에 대한 조항을 잘 갖추고 있었다. 그 결과 독일은 동성애자 권리운동이 세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벌어지는 곳이었고, 급진 페미니즘의 본고장이었다. 여성들은 낙태의 자유를 얻기 위해 투쟁하고 있었고, 실질적으로 사형제가 폐지됐다. 8시간 노동은 이미 공화국 초기에 얻어냈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이곳으로부터 출발한다. 어떻게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히틀러와 나치가 자라났는지, 어떻게 드높은 문명에서 인류 최악의 끔찍한 야만성이 나올 수 있었는지를 밝혀간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왜곡된 집단기억, 주류 정치권의 실책, 경제 위기, 진영 갈등 등 국민이 분노하고 혼란에 빠져 제대로 판단할 수 없었던 다양한 요인이 있었다. 무엇보다 히틀러를 ‘간판’으로 앞세워 권력을 유지하려 한 기성 정치인의 오판이 없었다면 나치는 결코 집권하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과정이 정당하고 공식적이었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민주주의는 민주적으로 무너지고 만 것이다.
헷 교수는 세계적으로 극우 포퓰리즘이 득세하는 지금, 히틀러의 집권은 많은 역사적 교훈을 담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혼란했던 당시를 최신 자료와 방대한 문헌으로 추적하며, 바이마르 공화국의 민주주의 붕괴 과정을 복기한다. 현실에 분노한 사람, 이를 이용해 이득을 챙기려는 사람, 정치적 환멸과 위기감에 신음하는 사람, 그 모두의 목소리와 선택이 생생히 담긴 <히틀러를 선택한 나라>는 민주주의라는 제도와 이를 움직이는 주체들에 대한 이해를 심화한다. 특별히 그 무렵 독일 개신교회의 '국민교회론'(Volkskirche)과 나치의 '민족공동체론'(Volksgemeinshaft)를 비교분석하면서 유사성과 차이를 논하는 부분은 매우 흥미롭다.
<히틀러를 선택한 나라>를 편하게 볼 수 없는 우리 현실이 안타깝다. 우리 현대사에 있어서도 4.19 혁명으로 등장한 장면의 민주당 정권이 곧바로 박정희 군사 쿠데타로 뒤집혔고, 1980년 ‘서울의 봄’이 결국 전두환 쿠데타로 무너진 경험, 1987년 ‘6월항쟁’이 ‘6.29 선언’으로 기만당했던 과정, 2016년 촛불 시민저항으로 등장하며 스스로 ‘촛불정권’을 자처했던 문재인 정권의 몰락과 이어 등장한 윤석열 정권의 퇴행을 바라보며 ‘당사자’ 심정으로 본서를 독서했다.
“사람들은 이성에 지쳤다. 생각하고 성찰하는 일에 지쳤다. 지난 몇 년 동안 이성이 무슨 역할을 했는지, 통찰력과 지식이 우리에게 무슨 도움이 되었는지 의문스러워 했다” (301쪽)
진광수 목사 (바나바평화선교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