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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122]
 
 
 
     
 
 
 
작성일 : 22-11-22 00:14
   
풍류신학 백년
 글쓴이 : dangdang
조회 : 4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8524 [128]

 



풍류신학 백년


(<풍류신학 백년>, 이계준 외, 동연, 2022)

<풍류신학 백년>은 만 100세를 맞은 유동식 교수(1922~)의 생애를 기억하고, 학문적 성과를 기념하려는 성과물이다. 눈 여겨 볼 것은 삶의 통과의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흔한 기념문집의 하나가 아니다. 우선 제목만으로 무게감이 대단하다. 100세를 산 인물이 여전히 학문적 과제에 참여하는 경우가 드믄 까닭이다. 게다가 선구를 따르는 후학들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뿌듯한 일이다. 

유동식 교수는 자타가 공인하듯 한국 신학의 토착화에서 ‘풍류신학’이라는 고유한 지분을 갖고 있다. 평생 종교학 전공자로서 한국적 신학의 광맥을 탐구하던 분답다. 평생 20여 권의 책을 썼으며, 미수를 맞아 전집을 묶어낸 보기 드믄 저작가이다. 그동안 가장 오랫동안 팔린 책은 <한국종교와 기독교>이며, <한국신학의 광맥>은 독보적이다. 게다가 평생 그림을 그리며 직접 예술작업에 참여해온 현실의 작가였다.

광맥을 탐구하듯 한국기독교 사상에 접근한 그는 한국 신학의 전개 방향을 ‘한’, ‘멋’, ‘삶’으로 분류하였다. 이러한 세 가지 요소가 흔들리는 민족적 위기에 직면하여 어떻게 그리스도교 신앙의 매개로서 현실에 반응하고, 대응했는가를 자문자답하였다. 유 교수는 이에 따라 한국교회의 신앙 형태와 교회의 사상이 결정되었다고 보았다. 

그가 살아온 100년의 역사는 곧 자신의 학문적 배경이 되었다. <풍류신학 백년>에는 그의 신학적 배경을 이루는 삶을 간추려 놓았다. 청년 유동식은 처음에 연희전문학교 수학물리과에 진학했다. 전공은 다르지만 굳이 헤아리면 윤동주 시인의 2년 후배이다. 중퇴 후에 일본으로 유학하여 신학으로 전과하였다. 그리고 일제 말 학병으로 징용당해 가고시마 전선에서 여러 차례 사선을 넘었다. 죽음은 오끼나와 턱 밑까지 다가왔다. 이러한 체험적 증언을 품고 귀국 후 1947년 감신에 편입하였다. 동급생보다 나이 든 그는 김지길, 박순경, 허혁, 이영빈과 동문수학하였다.

졸업 후 8년 동안 모교 감신에서 가르쳤으나, 목사가 아니란 이유로 연세대학교로 교수직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목사의 길과 멀어진 이유가 있었다. 감신에서 강사로서 강의하는 동안 자연스레 안수 권유를 받았다. 그런데 목사 자격요건 6가지 중에 하나가 그의 목에 걸렸다. 학병 때 술을 배워 평소 반주(飯酒)하는 습관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나는 주초해서 못한다.” 엄격한 자기 검열이 목사의 길을 스스로 막은 셈이다.  

지금 새털처럼 가벼운 100세의 몸이지만, 단호한 분노를 담아내곤 하였다. 77년이 흘렀지만 일제에 대한 감정이 결코 해묵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정시대 못 겪은 사람은 8.15를 몰라!” 그는 자신의 신학적 배경에 일본에서 겪은 식민지 청년의 수모가 배어있다고 하였다. “우리 성씨(性氏)를 바꾼 놈들이야.” 이를 당나라에서 유학하면서 같은 수모를 겪었을 최치원의 분노에 빗대었다. 한국사상의 맥락이 ‘화랑도’와 ‘풍류도’로 이어지는 지점이었다. 유동식의 신학이 지극히 한국적인 까닭이다. 

처음 유 교수를 모시고 밥을 먹고, 말씀을 듣자니 경외감이 들었다. 난생 처음 백수(百壽) 노인을 만나 뵈었기 때문이다. 요즘 100세 시대란 말을 흔히 쓰지만 정작 백년인생은 결코 흔치 않다. 놀라운 일은 낮은 목소리가 논리적이고, 들을 귀 또한 맑고 밝다. 여전히 홀로 지내기에 익숙하고, 주일예배에 성심껏 참석하며, 일기를 쓰는 일을 숙제로 삼고 계신다. 이쯤 되면 초자연영역에 속할 사건이다. 그래서 백세 나이를 ‘상수’(上壽)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유동식 교수는 자신의 호가 소금(素琴)인 이유를 말할 때 가장 진지해 보였다. 도연명 시에 나오는 ‘소금’은 줄이 없는 거문고라고 한다. 당연히 소리를 내지 못하는 악기이다. 그는 자신이 평생 하나님 말씀을 가르친다고 했는데, 돌아보니 줄없는 거문고를 타며 살았다면서 하나님 앞에서 송구스럽다고 했다. 100세란 시간은 인간을 더욱 겸손하게 만드는 모양이다. 

고 유동식 교수님(1922~2022)의 한 세기 동안의 수고와 행적를 회고하며, 이제 하나님의 품 안에서 평화를 누리시길 빕니다.

송병구 목사 (색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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