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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123]
 
 
 
     
 
 
 
작성일 : 22-11-11 22:29
   
조선 르네상스
 글쓴이 : dangdang
조회 : 4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8459 [161]


 

조선 르네상스

 

<조선 르네상스>, 하진욱, 호메로스

 

10월은 한글날과 개천절이 국경일로 되어 있어 가을 초입을 우리 국민들이 즐길 수 있다. 특히 올해 개천절은 월요일로 연휴였고, 한글날은 일요일과 겹쳐 대체 공휴일로 연휴가 되었다. 그런 가운데 정부에서 발표한 '대한민국 달라진 국제 위상'에서 보면 세계 10위 경제대국으로 성장하였다고 하였다(https://www.korea.kr/). 10월15일에 열린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 기원 콘서트 BTS 〈Yet To Come〉 in BUSAN에는 전 세계의 아마 팬들을 포함하여 6만 명이 관람하였다. 또 폴란드에 FA-50 경공격기, K2 전차, K9 자주포를 대거 수출하다는 뉴스가 나오기도 했다. 우리의 국격이 올라가는 느낌이 든다. 다른 한편으론 어떤 정치가에 의해 '일본은 조선왕조와 전쟁을 한 적이 없다. 조선은 안에서 썩어 문드러져 망했다는 막말도 나오게 된 10월이었다.  

 

국뽕(국가와 히로뽕(philopon)의 합성어다. 국가에 대한 자부심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국뽕 신드롬이 일면서 국뽕에 반발로 '국까'라는 말도 등장했다. 위키피디아)이란 말이 있다. 10월은 국뽕을 즐겨 볼 필요(?)가 있어 거의 10년 전에 읽었던 '조선 르네상스'라는 책을 다시 한번 읽게 되었다. 저자인 하진욱은 동아대학교 철학과와 동대학원에서 예술학을 전공했다. 2013 서울시민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아 다양한 예술 장르를 접목 시킨 공연을 기획 진행하며 전문미술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철학적 리터러시 연습을 위한 에세이들(공저)>, <미술이 쓴 역사이야기>가 있으며, 동아대학교에 출강 중이다(교보문고). 하진욱은 서문에 당시 한류의 열풍을 언급하면서 단일민족으로 다문화를 받아들여 서양으로부터 온 바람과 견줄 수 있는 역풍으로 한류를 만들어 냈다고 생각하여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비견하여 조선 르네상스라는 말을 만들고 책을 만들게 되었다. 

 

목차는 다음과 같다. 

서문 글로벌리언! '한반도 사람’

전설이 된 한국美

조선 르네상스의 서막

그리스:고조선 ≒ 이탈리아 르네상스: 조선 르네상스

조선 르네상스에는 '이념'이 있었다.

조선 르네상스의 힘은 '대중'이었다

조선 르네상스에는 전형적인 '스타일'이 없었다.

조선 르네상스는 '다음'이 있었다.

르네상스 미술가 열전

*레오나르도 다 빈치 vs 김홍도

*미켈란젤로 vs 신윤복

*라파엘로 vs 장승업

 

저자가 글로벌리언! '한반도 사람’을 언급한 배경부터 살펴보자. 유행이 돌 듯 문화도 역사의 흐름에 따라 돈다고 한다. 문명이 세계 4대 문명 발생지로 움직이는데, 한 반향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중심으로 서쪽으로 또 한 방향은 동쪽으로 한국에까지 이동하게 된다. 그런 문명의 이동 중 최근에 밝혀진 철기문명의 전파 경로인 '아이언로드(Iron road)'라고 하는 것이 있다. 티베트 고원과 만주 벌판을 연결하는 이고리는 재미있게도 한반도를 중앙아시아 너머에 있는 유럽의 문화권으로 이어준다. 뿐만 아니라 시베리아를 관통하면 아메리카 대륙까지 연결된다. 에스키모인들 그리고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생김새가 우리와 비슷한 것은 우연이겠는가? 

 

성경의 창세기에 나오는 홍수사건 이후 노아의 아들들인 셈, 함, 야벳에 관한 이야기가 떠오르는 것은 이 책이 이끌어가는 재미난 스토리텔링 이다. 혹자는 '한반도에 거주하는 우리 민족을 셈족의 후예라고도 한다'라고 저자는 언급하고 있다. (너무 나가지 않았나 생각도 든다) 아무튼 저자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단일국가라는 민족 사관 의식이 잘못되었고 발해와 고조선을 연결해 세계 속의 한국 즉 ‘글로벌리안, 한반도 사람'으로부터 조선의 르네상스 이야기를 끌고 가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한반도 지형이 대륙과 연결되어 있으며 삼면이 바다로 연결되어 끓임 없이 문화를 실어야 하는 나루터 역할을 함과 동시에 문화를 보전시키기에도 유리한 모양이며 이는 마치 지중해를 중심으로 모여있는 유럽의 국가들과 비슷하다고 주장한다. 유럽 국가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바빴고, 그리스문화가 로마에 쉬 몰락 당하고, 중세의 막강한 기독교 세력에 정체성을 내어 주었으며, 르네상스 이 후 야만인으로 불리는 알프스 북부 유럽에게 그 주도권을 넘겨 줄 수밖에 없었던 반면, 수많은 외세의 침략에도 불구하고 한반도가 단일문화권 을 형성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지형적인 특성이 한몫을 했다라고 저자의 기본적 논리의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고미술로부터 우리나라의 조신시대 진경시대(眞景時代)로의 발전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아주 오랜 옛날에 메소포타미아 지역 수메르의 역사로부터 한국의 일곱 神(天 月 水 火 木 金 土) 즉 북두칠성의 상징을 수메르의 일곱 神과 동일화 하고 있다. 아이언로드(Iron road, 기원전 1500년경 튀르키예 히타이트에서 철기문화가 처음 시작된다. 소아시아를 무대로 번성했던 히타이트는 철기문화를 오리엔트 전역에 전파한 뒤 철제 무기와 전차를 이용하여 정복활동을 펼쳐 바빌로니아 왕국을 멸망시켰다. 기원전 5세기 동양과 서양을 이어주던 실크로드로 중국에 철기문화가 전래된다. 중국 제나라 전횡(田橫)과 고조선 마지막 왕 준왕(準王)에 의해 철기문화가 바닷길로 곧장 만경강유역에 전파된다)가 그 매개가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서 발견된 여러 문양이 고도의 문명의 산물로 보이며 시기적으로는 석기 시대이지만 청동기 시대의 문양으로 보여 한반도 문명이 타문명에 결코 늦은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발전했다라고 그 근거를 제시한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의 문양은 영기(靈氣)무늬로서 고구려로 그 정체성을 연결시킨다. 영기무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신의 권능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한국은 시조가 하늘에서 내려온 신령의 나라 선택받은 민족이 되는 것이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형의상학의 세계를 현실에 반영한 것이 고구려를 거쳐, 신라의 왕관, 통일신라의 불상 옷자락으로 고려와 조선의 건축으로 그 명맥이 이어진다. 이것이 조선으로 가면서 진경시대로 발전해 나갔다. 

 

조선은 시작부터 백성이 주인인 나라를 표방하고 성리학이 배경이 되어 신의 선택을 받은 민족이다라는 주장을 펼쳐가면서 조선의 르네상스의 서막을 열고 있다고 하였다. 서양의 플라톤, 아리스토델레스 못지않은 오랜 논쟁처럼 조선에서도 二元論과 一元論이 서로 경쟁하며 발전하여 갔다. 이런 논쟁은 자연스럽게 주관과 객관의 절묘한 조화로 실학이 탄생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학은 실사구시(實事求是)를 내세우는 학문이며, 그림에는 형사(形似, 있는 그대로)와 신사(神似, 내면의 참된 모습)가 있어야 좋은 그림이라는 하나의 방향성을 제시해 주었다고 하였다. 드디어 이를 설명하기 위해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를 예를 들었다. 김정희의 세한도는 예술적 가치 외에도 역사적 가치가 매우 큰 한국의 중요 문화재이자 국보 180호이다. 저자는 일본에서 돌아온 사연이 있는 그림으로 조선의 영기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조선 선비의 세련됨과 정제됨이 있다고 하였다. 첨성대의 역사성과 우수성 과 함께 세한도로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동쪽의 해 뜨는 나라 찬란한 문명의 나라 조용한 나라로서 세계 중심에서 누리고 즐기는 최고 신민의 예술적 삶을 실현시킬 한국을 이야기하면서 <한류의 열풍>을 설명하고 있다. 우리 민족에 대한 자긍심이 단일민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최고의 문명을 지닌 한 무리의 후손이라는 점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세계를 향한 자신감으로 세계를 대할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라 주장한다.

 

저자는 그리스와 고조선을 비교하면서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야기한다. 서양의 르네상스에는 국가와 교회가 존재하지만 개인이 없다는 논리이다. 그 예로 미술품에 작가의 서명은 서양의 경우 일프레히트 뒤러(1471 - 1528)라는 독일 화가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한편 고려는 황해도 가마터에서 발견된 청자 순화4년명 항아리(靑磁 淳化四年銘 壺, 순화 4년 고려 성종 12년 993년, ‘淳化四年癸巳太廟第一室享器匠崔吉會造’라는 음각 명문이 있어 제작에 관한 내용을 알 수 있게 됨) (이화여대 박물관, 국보 제326호)는 명문이 있는 청자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그만큼 고려는 서양보다 일찍 개인이라는 표현을 자기 작품에 한 것이다.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국가 교회 그리고 재력가에 의해 움직여졌다면 조선은 다른 계급체계로 이루어져 권력과 재력과 관계없이 예술을 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즉 선비의 자긍심이라 할까! 서양 르네상스의 근간에 기독교가 있다면 고려에는 불교가 있다. 피렌체와 비견될 수 있는 개성(開城)이 있었다. 개성은 매우 미학적인 도시였다. 서양은 1300년부터 르네상스라면 고려는 이보다 훨씬 앞선 시대였다. 고려청자가 나오고, 과감히 고려청자의 화려한 스타일을 버리고 전혀 다른 스타일의 백자를 탄생시켰다. 조선의 경우 고조선을 열망한 진정한 르네상스라고 주장한다. 서양의 르네상스는 매너리즘이라는 형식으로 빠지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 한계를 보여 근대의 인상주의와 표현주의 등으로 변화하게 된다. 이를 저자는 그들의 한계라고 말한다. 조선은 중인들 중심으로 방대한 문화 활동이 전개되었다. 서양은 원근법을 발달시켰지만 그것은 인간보다는 신의 중심으로 전개된 것이다. 반면 조선은 대상이나 사물의 외형 못지않게 그 속에 있는 영혼을 끊임없이 드러나게 하였다. 서양은 사실이냐 추상이냐의 반복적 혼란 속에 있었지만 조선은 둘 다를 외쳤다. 

 

결국 조선은 둘 다를 살려냈고 불교든 유교든 기독교든 상관없이, 왕이든 귀족이든 성직자이든 서민이든 차등 없는 예술을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이런 조선의 르네상스에는 성리학이라는 이념이 있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진경산수화라는 장르를 만들어 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에는 원근법이 있었다면 조선에는 진경이 있었다. 우리 것을 사실대로 그리되 혼이 들어있는 그런 그림말이다. 겸재의 화법을 소개한다. 정양사 (정선 18세기 국립중앙박물관) 또 조선에는 대중의 힘이 있다고 한다. 서양은 권력과 자본에 의해 회화가 움직였다면 (예외적으로 카라바지오의 의심하는 성 도마를 소개) 조선은 민본주의적 성향을 보여 생산자이기도 하면서 감상자 이기도한 회화문화를 꽃 피웠다고 주장한다.

 

성리학을 배경으로 한 조선의 예술은 특정한 스타일이 없다고 한다.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원근법을 대상을 보다 객관적인으로 재현한다는 자유를 가져다주는 방식이었다. 3차원의 공간과 그 공간에 놓여 있는 사물은 2차원인 평면에 옮겨 실제감 있게 제안할 수 있느냐 문제이기도 했다. 서양 르네상스 좁게는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결국은 실제를 재현하는데 그 목표가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원근법으로 사실을 설명 수 없게 된다. 원근법의해서 사실 설명할 수 있는 어찌 보면 거짓이고 속임수가 된 것이다. 그래서 그 후에는 세잔느에 의한 다초점 방식의 그림이 생겨나게 된다. 이른바 쌩 비트와 루 산(폴 세잔느, 미국 필라델피아 미술관)이다. 이것이 더욱 발전하여 큐비즘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큐비즘 즉 입체파는 그런 단순한 눈속임으로 그럴싸하게 사물을 제한하는 것보다 사물의 진정한 내면과 본질을 나타내는 것이 예술가의 임무라고 생각한 것이다. 

 

반면 우리 선조들은 서양의 방식으로 제작된 조각들은 진짜를 복사한 가짜라는 논리가 성립된다 하여,  오히려 그런 공간에 탑을 놓고 건축물을 조형적 장식함으로써 현실 공간에 관련 세계를 구현하여 공존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진짜를 베낀다는 조선 르네상스 원칙은 '진짜처럼' '사실적으로' '객관적으로'가 아니다. 진짜를 복사해 놓음으로써 복사된 것에는 원본이 지닌 진짜 모습이 있는 것이다. '~ 처럼', '~적으로'라는 그 말을 빼 버려야 조선 르네상스의 방식에 가깝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들에게(조선의 화가)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그리움을 그린다는 것이 된다. 우리말로 어떤 대상에 대한 그리움의 준말이 '그림'이다. 그것은 그 대상에 대한 피안적 실체를 그림으로 나타낸다는 의미가 된다. 단순히 대상의 외형만을 담게 그린 것으로는 이룰 수 없는 경지가 바로 우리말 그림이 지는 본래의 의미인 것이다. 그들은 이상과 이념 그리고 지식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시를 지었으며 그림이 지닌 의미를 글씨체로 반영하는 서예를 남겼다. 이렇게 남겨진 작품들은 특정인들의 예술 행위 이상의 의미와 역할을 해왔다. 그것은 하나의 트렌드를 형성했으며 문화가 되었다. 조선 르네상스인 들의 예술 활동은 조선 사회 전체로 이어진 하나의 문화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문화로 형성되어 그 시대 전체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차이를 보인다.

 

조선 르네상스는 '다음'이 있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라파엘로라는 거장 이후 매너리즘에 빠지게 된다. 이에 북유럽으로 이동하면서 바로크라는 미술 사조를 만든다. 바로크는 찌그러진 진주라는 뜻이다. 찌그러짐에 빈정됨이 들어 있다. 스스로 르네상스와 다음 간에 연결에 칼을 대고 단절시킨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1300년 말 조선은 건국된다. 서양의 르네상스가 시작될 때 건국이 되고, 매너리즘 시기에 영 정조 시대라는 가장 번창한 시기가 시작된다. 이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김홍도 신윤복이 등장한다. 중인들이 활약한다. 신윤복의 유곽쟁웅(遊廓爭雄, 간송미술관)을 보면 성리학 시대에 방탕한 시대상을 엿 볼 수 있다. 조선의 르네상스는 대중을 바탕으로 하여 끊김이 없었다. 그리고 성리학을 기본으로 하는 선비화가 들이 있었다. 문인화인 것이다. 

 

이탈리아 3대 유명 예술가 있다면 조선엔 3원3재(三園三齋)가 있었다. 공재 윤두서, 겸재 정선, 현재 심사정,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오원 장승업이 그들이다. 대중성을 바탕으로 계속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한류로. 한류라고 하는 말이 현재 대한민국의 대중문화가 만든 유행이라고만 하면, 그냥 지나가는 유행이 되고 만다. 그러나 그 유행이 만들어지기까지 어떤 대중성을 형성해 왔는지, 그 시대정신을 살펴보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조선 르네상스의 흐름 속에서 대중문화의 코드를 찾고, 한류로 이어지는 대중적 취미의 연결고리를 발견하는 기쁨은, 잃어버린 족보를 찾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라고 조선 르네상스의 미래가 있다고 끝을 맺는다. 

 

이어서 르네상스 미술가 열전을 통해 6명의 예술가를 비교하며 조선의 르네상스에 디테일을 첨가해가고 있다.*레오나르도 다 빈치 vs 김홍도*미켈란젤로 vs 신윤복*라파엘로 vs 장승업

 

이 책에서 저자는 한껏 우리의 회화나 예술품을 서양과 비교하여 자랑하고 있다. 그의 논지는 한국의 미술 좁게는 조선의 진경산수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서양의 르네상스 거장들의 예술과 비교할 수 있는 시각을 준다는 측면에서 좋은 점이 있다. 또 지금의 한류의 배경적 바탕을 설명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 책을 읽은 독자로서 다른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문화적 바탕이 다른 예술품을 다르다는 측면에서 설명하는 것은 좋지만 어느 것이 좋다 나쁘다 라는 해석은 옳지 못하다고 본다. 독자로서 나는 오히려 우리 한반도의 특성에 맞는 우리 예술은 우리의 삶에 맞추어 발달되었고 서양의 르네상스시대 예술품 역시 그들의 삶이 반영되었다고 생각한다. 즉 우리나 그들의 삶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우월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한류는 우리나라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모든 면이 반영되어 나타난 현상이다. 

 

본격적으로 한류 드라마의 시작은 ‘사랑이 뭐길래’(1991, 김수현 작가, 정을영 연출)로부터 라는 의견도 있다. ‘사랑의 뭐길래’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에도 알려지게 되었다. 중국과 외교채널이 없는 관계로 이드라마를 보려는 중국인을 위해 홍콩을 통해 대사관 행랑으로 전달된 비디오 필름이 중국으로 퍼지게 되었고 수많은 중국인들이 보게 되어 한류, K-drama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 이후 1990년 말 IMF가 터져 환율이 급격하게 올라 거의 2000원까지 되었다. 외국에 간 유학생들이 한국으로 들어오게 되고 그들이 외국에서 배운 서양 문화를 한국 대중문화와 버무려 K-music이 시작되었다. 결국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 권의 대중들에게 좋은 것 같지만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던 서양 음악을 한국으로 귀환한 젊은이의 감성으로 씹어 아시아권의 젊은이가 쉽게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K-pop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K-pop은 인터넷의 발달과 그리고 한국의 경제 발전과 더불어 싸이, BTS, 블랙핑크 등으로 연결지게 된 것이다. 여기서 확인하고 가야할 것은 K-culture는 고급문화가 하급 문화라는 것이다.(여기서 고급과 하류를 이야기하는 것은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고급은 조금 제한적이고, 하류는 보다 대중적). 특히 이 부분은 싸이의 젠틀맨이라는 노래의 춤에서 볼 수 있다. 상체는 팔짱을 끼고 흔들지 않으나 하체는 마구 흔드는 춤이다. 이런 방식은 한국인의 남의 시선에 신경을 많이 쓰는 행태를 꼬집는 모습일 것이다. 이렇듯 우리에겐 대중문화에 강점이 있다. 지금 많이 알려지는 K-culture는 K-대중문화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이에 경제력 등이 같이 따라 주면 K-고급문화로 발전될 수 있다고 본다.(마치 전에 일본, 중국의 고급문화가 전달되듯)

 

외국에 가면 한글을 문양으로 한 옷을 가끔 볼 수 있다. 영국인들이 '한글' 덕질하는 이유 (2022.11.01 시사IN)라는 기사가 오늘 나왔다. -영국에서 예전이라면 한글을 포스터에 적는 모험은 안 했을 거다. 사람들의 인지도가 낮았기 때문에. 그런데 지금은 사람들이 한글을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관심을 갖는다. '이게 한류와 관련된 거긴 한데 무슨 뜻이지?' 하고. 영화 〈기생충〉으로 아카데미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이 '1인치 장벽'을 이야기했지만, 사실 그 장벽이 문화적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한다. 관심은 있는데 모르니까 더 궁금한 거다. 런던 시내에는 이미 한글로 된 간판이 많다. 이렇듯 한국의 문화는 거침없이 뻗어 나가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한류의 근원을 조선 르네상스로 보았다. 독자인 나는 조금 다른 생각이다. Korea(고려) 르네상스라고 하고 싶다. 지금의 한국인은 조선 시대의 삶과 맞지 않다. 조선에 비해 사료는 적어 고려에 대하여 조선보다 자세히 연구되지 못하였지만, 현대의 한국은 고려 시대와 더 맞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현재의 한국은 dynamic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해서 국뽕에 빠질 일은 아니다. 미국은 세계의 리더로서의 위치를 포기하고 미국 우선주의로 나가고 있고, 중국은 중국 굴기라는 명목으로 미국과 겨루고 있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중국의 힘이 커지면 우리나라는 약해지고 중국이 힘이 약해지면 우리나라의 힘이 강해진다는 경험이 있다. 중국의 힘이 강해지고 있다. 미국은 이번 코로나를 거치면서 3가지가 부족한 것을 알았다. 반도체 배터리 백신의 생산이다. 중국을 제외하면 가장 잘 할 수 있는 나라는 한국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어떤 포지셔닝을 해야 좋을지 K-culture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본다. 너무 국뽕에 빠져 있으면 안될 것이다. 

 

조선 르네상스 든 고려 르네상스 등 더 알 찬 한반도 르네상스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2022년10월29일에 일어 난 이태원 참사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 사회문화적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사회문화적 자존감을 우리 국민이 가져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가 전세계 성형 비율이 가장 높다는 방송 내용(TVN 티전드, 허태균 교수)을 들었다. 자신에 대한 내재적 가치가 없어 겉으로 보여지는 것에 신경을 많이 써서 그렇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한국의 발전은 fast follower로서 역할을 충실히 했기 때문에 만들어진 결과다. 이제 중국 등 우리 대신 fast follower가 되고 있다. 중국과 fast follower로는 이제 경쟁이 안된다. 단순한 기술의 발전은 곧바로 다른 fast follower에 추월 당할 것이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의 르네상스를 더 업그래드하기 위해서는 내재적 가치를 지닌 한민족 그리고 한국으로 변모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first mover로서 새로운 르네상스를 맞이하는 국가와 국민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번에는 한류가 조선의 르네상스에서 비롯되고 조선의 르네상스는 하나의 만족이 아닌 다문화의 산물이고, 상류 계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민을 위한 것이고 대중을 위한 것이 서양 특히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차별화 된다고 저자의 주장하는 것에 동의도 하면서 다른 생각도 있어 이를 피력하였다. 한국인으로 외국인이 한국에 와서 즐기고 한국인이 외국에 가서 즐길 때 한국 것을 본다는 것은 무척 즐거운 일이다. 아무쪼록 이런 희망찬 미래가 오길 바라며 이태원 사건이 다시는 발생이 되지 않는 Korea-르네상스가 오길 바라며 독후감을 끝낸다. 

 

김종일 대표 ((주) 비앤에이치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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