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서 없이 미래 없다
<용서 없이 미래 없다: 투투 대주교에게 배우는 우분투 정신과 회복적 정의>, 데스몬드 음필로 투투, 홍종락 역, 사자와 어린양, 2022
이 책은 평생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차별 철폐에 헌신한 세계교회협의회 부의장이었던 데스몬드 투투(Archbishop Desmond Tutu) 성공회 대주교가 흑백연합정부 수립 후 설립된 진실화해위원회 의장으로 보복적 정의가 아니라, 회복적 정의로 남아공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한 내용을 오롯이 담고 있다. 번역가 홍종락씨에 의해 2009년에 이어 2022년에 다시 새로운 번역서가 나온 것이다.
“용서 없이 미래 없다”는 책 제목은 마치 피해자에게 용서를 강요하는 것처럼 들린다. 피해자에게 용서를 강요할 수 없는 이유는 정의 없는 용서와 화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투투 대주교는 피해자들에게 자신들의 아픔을 이야기 할 기회를 주었고, 이에 가해자들의 진심 어린 사과와 회개로 이어진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피해자의 명예회복과 용서를 통해 화해가 이루어졌고, 이를 계기로 지속가능한 평화와 민주화를 이루어 낸 진실화해위원회의 노력을 통해 정의와 용서에 대한 투투 대주교의 신학적인 고뇌를 보여준다.
“용서 없이 미래 없다”는 관련 집단 간 원활한 소통과 관계를 중시하는 아프리카 토착 정서인 우분투(ubuntu)에 근거한 것이다. 우분투라는 말은 “다른 사람과 함께 있어야만 사람이 된다”라는 뜻이다. 투투 대주교는 우분투에 기반한 용서는 이타심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책임과 연민의 마음으로 분열을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이다. 상대를 비인간화 하면 틀림없이 나도 비인간화 되고, 상대를 악마화 하면 틀림없이 나도 악마화 된다는 관계의 맥락에서 화해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서로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사회, 우분투를 실천하는 사회, 바로 그 사회에 참된 미래가 있다. 이렇게 우분투는 진실화해위원회의 방향 지침이 되었고, 남아프리카 공화국 헌법에 기록되기도 했다.
“용서 없이 미래 없다”는 인종차별 가해자에 대한 보복적 정의가 아니라, 회복적 정의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진정한 정의는 처벌이 아니라 공동체의 회복이라고 믿는 투투 대주교의 철학과 신학이 담겨있다.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인종차별 정책을 비판하고 이와 관련된 폭력 사건의 전모를 밝히며 사면대상과 아닌 경우를 구분하려 했던 것은 정의를 세우는 일이었다. 정의를 세운다는 것은 과거의 잘못을 교정하고, 화해는 미래 관계를 재설정하는 것이다. 남아공 진실화해위원회의 회복적 정의는 피해자의 명예회복을 통해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가 회복되고, 이를 계기로 사회에 전반적인 변화까지 가져왔다. 회복적 정의에 기반한 진실화해위원회의 활동은 국가 단위에서 경험한 회복적 정의의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용서 없는 미래는 영원히 어두운 과거의 연속이 될 수 밖에 없기에 보복적 정의가 아니라, 회복적 정의를 통해 새로운 밝은 미래를 열수 있다는 투투 대주교의 깊이 있는 화해의 영성을 마주하게 된다.
김진양 목사 (연합감리교회 세계선교사, 세계교회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