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파커 J. 파머, 한문화, 2015)
이 땅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생의 명을 받고 태어날 때에는 신이 부여하신 거룩한 소명을 안고 태어난다. 살아있음 자체가 소명의 증거이다. 처음 맑고 순수한 영혼을 간직한 영혼은 자라면서 자신을 둘러싼 환경(사회)에 점차 길들여져 간다. 즉 사회화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 중에 사람들은 점차 내면에서 드려오는 음성보다는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 기울이게 된다. 이 과정이 심화되면 결국 내면의 소리는 잊혀지고, 소명의식도 사라지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겪게 되는 것이 우울감이다. 본래의 나와 지금의 나, 즉 사회에서 길들여진 나 사이의 간극이 벌어지면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되는 것이다. 집을 잃어 방황하는 것이랄까? 길이 막힌 것이다. 소명을 잃어버리고, 내면의 소리를 듣는 영혼의 청각을 잃어 결국 삶의 방향도 잃어버리게 된 형국인 것이다. 누구나 정도의 차이만 있지만 우울감을 경험한다. 이는 단순히 병리학적인 문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근원적으로 소명에 관한 문제, 자기 정체성에 관한 문제를 말한다. 우리 인생에 막다른 골목에 서 있는 듯할 때 과연 우린 어떻게 이 문제를 극복해나갈 것인가? 참 쉽지만은 않은 문제이다.
위대한 스승이라 불리는 미국의 저명한 교육지도자이자 사회운동가(나는 영성가라고 말하고 싶다. 확실히 그는 기독교영성가이다)인 파머 J. 파머의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는 사람의 소명을 잃고 비틀거리는 이들을 위한 좋은 안내서이다. 책 제목이 말하듯 삶의 막다른 골목에 섰을 때, 아무런 생각도, 행동도 할 수 없을 때 삶은 진지하게 우리에게 말을 건네 온다고 파머는 말한다. 이 책은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자신을 부족할 것 없다 여기는 이들에게 있어서 전혀 흥미롭지 못한 책이다. 대신 삶에 있어 절박함이 있는 이들에게 있어서는 더없이 좋은 위로를 전해준다. 그는 책머리에 이 책을 “한밤중에 깨어나 ‘지금 내 삶이 정말 내가 원하던 것일까?’ 물으며 잠을 설쳐본 적이 있는 사람들에게” 헌정한다. 그가 이런 이들을 위한 특별한 관심이 있는 것은 그의 경험 때문이다. 그도 한 때를 우울과 절망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가 이를 극복해가는 일련의 과정에서 우울과 절망에 빠진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기까지 그도 숱한 고민을 가지고 수많은 밤을 지새웠을 것이다. 그런 고민과 그로부터 점차 해방되어 가는 과정을 이 책은 곳곳에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파머는 우울과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져 어찌할 바 모르는 이들에게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설득력 있게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이 책은 삶의 문제에 봉착했을 때 이를 어떻게 해결해나가야 하는지를 이론적으로 기술한 기능적인 해설서가 아니다. 자신의 본질을 향해 떠나게 하는 여행 안내서이다. 인생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다 경험하는 긴 여행의 안내서. 파머는 먼저 자신의 의지를 멈추어 가만히 내면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에서부터 여행을 시작하라 한다.
“네 인생의 목소리를 들어보아라”(Let your life speak)
이 소리가 우리에게 소명이다. 파머는 말한다.
“나는 한때 소명을 자기 인생이 원하든 원치 않든 따라야만 하는 단호한 의지의 행동이자 인생의 방향을 선택하는 엄숙한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 하지만 내가 믿고 있는 것처럼 진정한 우리의 자아가 추구하는 것이 완전함이라면, 마음에도 없는 소명을 추구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폭력이다. 아무리 숭고한 비전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내부에서 길러진 것이 아니라 밖에서부터 부여된 강제의 것이라면 그것은 심각한 폭력이다” (그의 책, 18).
그러면서 “소명은 의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듣는데서 출발한다”고 말한다. 인생의 방향을 잃었을 때, 그것을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며 무언가를 하기 보다는 먼저 마음의 귀를 열어 내면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무엇인지 경청해야 한다.
우리가 처한 환경은 내면의 소리를 왜곡시킨다. 사회가 요구하는 사람이 되라 등 떠민다. 이 과정은 우리의 정체성에 심각한 갈등을 유발시킨다. 그러면서 좌절하고 절망하며 우울해지는 것이다. 어둠으로의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어둠을 경험하는 것은 우리들 인생의 일부를 경험하는 것이라고 파머는 조언한다. 이 어둠의 순간이야말로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기회인 셈이다. 우리가 빛에 머문다는 사실은 어둠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빛과 어둠은 상호보완적인 셈이다. 우린 인생의 어두운 시간을 걸을 때 얼른 벗어나야할 시간으로 여기지만 그 어둠마저 품어 안을 때 새로운 길이 열리게 됨을 이 책은 말하고 있다.
특히 파머는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려 힘겨웠던 자신의 인생 경험들을 이야기하며 영혼의 고통에 다가섬으로 자신을 사랑할 줄도 알게 되고, 그 사랑의 빛으로 고통 받고 있는 이들에게도 다가설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결국 빛만을 경험하는 사람(그런 사람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도 자아가 왜곡될 수 있고, 어둠만을 경험하는 사람도 똑같이 자아가 왜곡될 수 있다. 빛과 어둠을 경험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인생의 과정이며, 특히 어둠 속을 걷고 있을 때의 자신의 모습도 사랑할 줄 알아야 함을 이 책을 통해 배우게 된다.
우리 인생은 이렇듯 봄, 여름, 가을, 겨울 모두가 다 담겨 있는 셈이다. 어느 누군가가 나에게 이야기해줬다. 아름다움은 ‘앓음 다음’이라고...
이 혁(의성서문교회)